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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Apr 17. 2023

내가 모르는 채널,

그림자 밟기!



나는 아무도 모르는 데미안이었다.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을 밟은 것처럼 가슴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이름 모를 어떤 채널, 내가 모르는 장소. 이곳... 

긴 시간 빈집에 웅크리고 나를 기다렸을 데미안.

나의 데미안.     


'자기만의 방'은 수시로 꿈속에 등장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내가 모르는 사이 마련해 놓았던 방들. 그 방은 간혹 아주 먼 곳에 있거나 혹은 집 근처에도 있었다. 꿈을 꾸고 나면 나는 '나만의 방'을 그토록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꿈속 곳곳에 포진한 방들이 아닌, 저절로 만들어진 방 같았다. 

내가 원하던 방이 이곳에서 나를 집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이곳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방인지 전혀 기억에 없다. 우연히 들어온 방에서 데미안을 만났고, 익숙한 얼굴의 사진을 대했다. 기이한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 내 모습과 똑같은 사진?? 어떻게 나랑 똑같을 수가 있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확대하여 프로필 사진을 살펴보았다. 화질이 희미하게 번져보인 탓에 내 모습인지 나와 비슷한 포즈의 다른 누군가인지 헛갈렸고, 점점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들었다.


'그럼 그렇지. 나 아닌데? 그런데 이상하게 나랑 참 많이 닮았네. 신기하다...' 


누군가 내 사진을 몰래 도용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봐도 나와 비슷한 모습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고 텅빈 공간에 갇힌 듯 한참을 하얀 방을 주시했다. 입술에 힘을 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 동안 프로필 사진과 카메라에 확대한 사진을 비교했다. 프로필 사진 아래 '데미안'이라는 닉네임을 보며 언젠가 꾸었던 꿈의 한 장면을 도둑 맞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안경을 낀 뒤 다시 살폈다. 그러다 아이디를 발견했다. 

아니 이런일이! 내 아이디가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브런치 채널이 있었다고? 

내게 이런 숨은 공간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피식피식 웃음이 터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계단 아래 숨은 고양이를 본 기분이었다. 

반갑고 안타깝고 기뻤다. 


이제 꿈속이 아닌 현실 안에서 나만의 방을 찾은 셈인가.

오래 외로웠을 데미안을 슬그머니 서랍 안에 밀어넣었다. 외로움을 벗고 편히 쉬길 바라며.

프로필의 빈 공간에 '숲'을 입력했다. 


숨어서 글쓰기 좋은 공간..


언젠가 나는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할 이런 공간을 내게 선물했다니.

멋진 선물을 앞에 두고 자꾸 벌어지는 입안의 웃음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곳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커튼 사이로 밀려드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고 일상의 그늘을 산책하고 밤이면 자꾸만 멀어지는 달빛을 바라보아도 좋겠다. 


아침이면 동박새 노래소리 가득한 숲,

한낮엔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로 가득한 숲,

햇살의 조각들이 그림자로 일렁이는 풀숲,

오후 내내 푸른 향 솔솔 풍기는 숲,

밤이면 모든 나무를 끌어안고 고요히 잠든 숲,


초록 무성한 숲 앞에서 아직은, 좋은 영향 아래 숨겨진 이면은 떠올리지 않다.


아무도 모르는 채널 안에 숨어...! 

비밀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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