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작가 13인의 삶과 흔적을 찾아서 ―
헤밍웨이 생가 앞에서
-문학의 숨결을 찾아①
어린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오크파크를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시카고를 경유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 나를 이곳으로 이끈 건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유년 시절을 보낸 오크파크는 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진 아름답고 고요한 동네였다. 그의 생가는 흰 나무 패널로 둘러싸인 작은 이층집으로, 의외로 소박하고 단정했다.
유리창에 스며든 햇살이 오래된 나무의 결을 따라 흐르고, 정원에는 묵묵히 계절을 견뎌낸 잔디가 짙게 깔려 있었다. 초록빛 입간판에 새겨진 ‘Ernest Hemingway’라는 이름이 물결처럼 가슴을 뒤흔들었다. 마침 박물관은 휴관이라 닫혀 있었지만, 이미 한 번 둘러본 적 있었기에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설렘이 찾아왔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의 문학을 곱씹으며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계단 위 테라스 벤치에 앉아 레이스 커튼으로 가려진 기다란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세계 문학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한 작가의 출발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다 보면, 잔디밭을 뛰놀던 어린 소년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사냥과 낚시를 함께 다니며 모험심을 일깨워주었고, 음악 교사인 어머니는 엄격하면서도 예술적 감수성을 심어주었다. 훗날 거친 문체 속에 깃든 섬세함은 바로 그 양가적 교육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햇살이 목조건물 곳곳으로 잔잔하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과는 달리 그 집안이 짊어진 비극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깊은 우울이 마치 보이지 않는 유전처럼 자식들에게 스며들었던 걸까.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궤적을 따라 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정리했다. 말년의 헤밍웨이는 더 이상 세계를 횡단하던 모험가도, 전쟁터의 냉정한 기록자도 아니었다. 다만 내면의 어둠과 싸우다 서서히 잠식당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어두운 계보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이어져 결국 몇몇은 같은 길을 택했다.
생가의 목조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나는 묘한 숙명 같은 것을 떠올렸다. 마치 이 집이 천재성과 절망을 동시에 길러낸 토양이었고, 그 두 힘은 헤밍웨이 일가의 삶을 찬란히 빛내는 동시에 깊은 상처의 흔적을 남긴 것처럼, 내 귓전에 이 집안의 비극적 서사가 음울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신문기자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곧이어 전쟁에 뛰어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적십자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했고, 큰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동료 병사를 업고 뛰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경험은 『무기여 잘 있거라』의 밑바탕이 되었고, 인간의 비극과 존엄을 동시에 담아낸 세계적인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전쟁에서 언어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죽음 앞에서 화려한 수식은 거짓처럼 들렸고, 그때부터 그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문체를 익혔다.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퇴고했다는 그 유명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그는 문장의 버리고 덜어내는 고통 속에서 진실에 닿는 언어를 추구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는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며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과 파리 해방을 목격한 그의 글에는 인간의 파괴와 존엄이 동시에 담겼다. 빙산 이론이라 불린 그의 문체는, 드러난 문장의 표면 아래 더 많은 진실이 잠겨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진짜로 좋은 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독자가 느끼게 한다. 글에는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가 남긴 말처럼, 빙산의 일각만이 수면 위에 드러날 뿐, 진짜 무게는 드러나지 않은 채 잠겨 있다. 그의 문장도 그의 생도 그렇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극히 일부일 뿐, 나머지 부분들은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그를 잠식했을 것이다.
생가의 적막 속에서 풀벌레 소리만 점점 커져갔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 그림자가 테라스에 일렁였다. 고독을 마주했던 그의 삶처럼, 고요 속에도 묵직한 떨림이 깃들어 있었다. 전쟁, 사랑, 모험, 그리고 스스로 겨눈 총성까지. 그의 삶은 극단으로 치달았지만, 끝내 그는 글을 놓지 않았다. 생가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작가란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세계의 무게를 문장으로 바꾸는 사람이라고.
생가를 나와 10분 거리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유년기의 집을 찾았다. 이전 생가와는 달리 이미 누군가 거주를 하고 있었다. 노란 불빛이 실내를 밝히고 간간이 아이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집에서 헤밍웨이 역시 아직 절망이 시작되기 전, 유년기의 빛과 웃음이 머물렀을 것이다. 두 집 사이의 대비는 그의 삶을 압축한 은유처럼 다가왔다. 빛과 어둠 또는 천진한 시작과 비극적 결말. 나는 두 장소를 거치며 결국 헤밍웨이의 글과 삶을 지탱한 것은 그 모순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그의 또 다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용기란 압박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걸 깨닫는 요즘,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내 글쓰기의 무력함을 극복하고픈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또한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고 현재를 증언하려는 열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쓰는 자는 언제나 고통 앞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무게를 끝내 견뎌내고 문장으로 남길 때, 비로소 글은 삶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헤밍웨이가 그랬듯, 나 역시 내가 마주한 세계의 진실을 문장 속에 새겨 넣는 작업을 멈추지 않기를.
<박 숲>
2012년 월간문학 단편소설 등단
2021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23년 현대경제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
2023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시 당선
소설 『굿바이, 라 메탈』,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