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작가 13인의 삶과 흔적을 찾아서 ―
한여름의 보스턴, 작은 아씨들
-문학의 숨결을 찾아②
‘루이자 메이 올컷’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낯설다. 그러나 『작은 아씨들』의 작가라고 하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작품의 제목이 작가의 이름보다 훨씬 더 알려진 까닭일 것이다. 원작이 두 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점도 크게 작용했다.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은 보스턴 근교 콩코드에서 성장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 시절부터 재봉사와 가정부, 가정교사 등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도왔다. 그 경험은 훗날 『작은 아씨들』 속 현실감 있는 생활 묘사의 바탕이 되었고, 무엇보다 그녀를 독립적이고 강인한 성격으로 성장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루이자는 글쓰기를 놓지 않았고, 작품 속 둘째 딸 ‘조 마치’에게 자신의 열정과 고집을 투영했다.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초록이 무성한 숲길을 따라 들어서자 회색빛 목조 건물이 나타났다. 입구에 ‘오차드 하우스(Orchard House)’라는 팻말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 속의 이름이 현실 공간과 겹쳐질 때의 설렘은 묘하게도 숙연함을 동반했다. 그러나 바로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예약 시간이 정해진 탓에 우리는 한동안 마당을 서성이며 기다려야 했다. 30분 정도 지난 뒤, 우리는 ‘리틀 스쿨(Little School)’이라는 건물로 안내되었고, 마치 학생들처럼 나란히 앉아 루이자의 생애와 가족사, 작품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루이자의 아버지 브론슨 올컷은 이상주의적 교육자이자 노예제 폐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인물이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어머니 애비메일 올컷은 강인한 정신력과 독립적 사고를 자녀들에게 심어준 인물이다. 루이자는 네 자매 중 둘째로,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써서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었다.
루이자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창밖으로 의자를 던져 부서뜨렸다고 했다. 이는 루이자의 예민하고 격렬한 성격을 잘 보여준 일화이다. 또한 보스턴 파티에 참석해야 하는데 폭설로 마차가 가지 못하자, 드레스 차림으로 보스턴까지 걸어갔다는 일화는 그녀의 저돌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일화들은 가이드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은 없다. 다만 루이자가 연애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 건물로 이동할 때는 세 팀으로 나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공간을 탐색하며 작은 아씨들의 흔적을 따라 상상을 펼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이동할 땐 작은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 위로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그 풍경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는 환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오래된 가구와 책장 안에 쌓인 낡은 책들. 작은 책상과 침대 위에 놓인 드레스와 벽에 걸린 낡은 액자들은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책상이었다. 창가에 놓인 책상 앞에 앉아 루이자는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 글을 썼다고 했다. 손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글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햇살 가득한 여름날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로서는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극심한 추위에도 글을 향한 집념이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행들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나는 한참 동안 원고지와 펜이 놓인 루이자의 책상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마치 좀 전까지 루이자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한 착각이 들자,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작은 공간을 여러 개로 쪼개어 놓은 듯 집안 곳곳에 공간이 많았다. 작고 소박한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동화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낡은 피아노, 단정한 거실, 자매들의 초상화와 조각상은 그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가이드들은 19세기 풍 드레스를 입고 안내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소설 속 자매들이 현실로 걸어 나온 듯했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순간, 나는 작은 아씨들의 세계가 이 집을 떠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루이자는 문학만이 아니라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고, 여성 참정권과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해 글과 강연으로 목소리를 냈다. 산업화가 노동자를 옥죄던 시대에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캠페인에 참여했던 점은, 그녀가 단지 글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루이자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염병에 걸려 결국 집으로 돌아와 긴 병을 앓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매일 나의 종이를 적시는 것으로 하루를 견딘다.”
루이자가 말했듯, 그녀는 사망 직전까지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자는 쉰여섯 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대표작 『작은 아씨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네 자매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단순히 가정소설을 넘어 한 여성의 자립과 성숙,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작품 속 조 마치가 “나는 어떤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아니면 적어도 글을 쓰고 싶어.”라고 했던 말은, 루이자 자신의 열망을 그대로 투영한 문장이 아니었을까. 루이자 메이 올컷은 예민하고 격정적인 성격을 지녔으나, 동시에 치열하게 글을 쓰고 사회의 개혁에도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집은 단순히 한 작가의 흔적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이들에게 건네는 메시지이자 묵묵한 격려가 아닐까. 나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며 깨어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기념품 샵에 들러 『작은 아씨들』 영문판 책과 엽서를 고르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방금 경험한 시간과 공간의 감각들이 손에 쥔 책과 엽서 안에 고스란히 녹아든 듯 소중하게 다가왔다. 나는 2층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루이자가 창가에 서서 마주 손을 흔드는 것처럼.
<박숲>
2012 월간문학 단편소설 등단
2021 전남매일 단편소설 당선
2023 현대경제 장편소설 당선
2023 시와산문 시 당선
소설 『굿바이, 라 메탈』,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