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작가 13인의 삶과 흔적을 찾아서 ―
롱펠로우의 시간을 걷다
-문학의 숨결을 찾아③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다만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인생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인생 예찬〉 中
8월의 어느 오후,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를 만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설레었다. 오래전 그의 시 〈인생 예찬〉을 필사하며 비장한 결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훈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시는 첫 행부터 강렬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또한 ‘인생은 진지하다’는 의미의 단어 ‘earnest’가 내게 별처럼 깊이 박혔다. 삶이란 결국 허무와 싸우는 일이며, 슬픔을 껴안은 채 하루를 견디는 일이라고 그는 시에서 보여준다. 나는 새삼 그가 남긴 문장들을 떠올리며 내 안의 언어를 더듬었다.
롱펠로우는 180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언어에 재능이 뛰어나, 스무 살 무렵 이미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826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 등을 익히며 문학의 토대를 다졌다. 귀국 후 하버드대학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지금의 롱펠로우 하우스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명성과는 달리 잇따른 상실로 얼룩져 있었다. 첫 번째 아내는 유럽 여행 중 유산으로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 아내는 드레스에 불이 붙는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은 뒤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그는 얼굴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를 통해 고통을 견디며, 상실의 자리에 새로운 의미를 새겨 넣었다. 그 결과 태어난 시가 〈잃고 얻은 것〉이다.
구름이 낀 하늘, 비 오는 날,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인생은 늘 슬픈 날들로 가득하지만,
바람이 그치면 해가 다시 비추리라.
- <잃고 얻은 것>
짧은 시 안에 인생의 진실이 담겨 있다. 잃은 것과 얻은 것, 떠나간 것과 남은 것, 그 사이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롱펠로우의 시가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단지 고통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품은 채 계속 살아내는 태도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롱펠로우 하우스를 찾은 날은 하필 휴관이었다. 정원을 따라 외관을 돌며 그의 삶을 떠올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 검색 이미지만으로도 닫힌 문 안쪽의 상상은 오히려 풍부했다. 커다란 규모의 집에는 창문이 유난히 많았다. 각각의 창문이 그가 보낸 계절처럼 느껴졌다. 유리창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오래된 시간의 잔광처럼 은은한 빛을 냈다. 정원에는 해시계가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해그림자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먼 곳에서 흘러온 시간들이 이 정원 안에 모여드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이 집에서 하버드의 강단으로 향했을 것이고, 밤이면 책과 잉크 냄새 속에서 원고를 썼을 것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상실의 고통 속에서 번역한 단테의 『신곡』은, 단지 한 시대의 번역이 아닌 인간의 고통을 언어로 구원하고자 한 기록이었다. 단테의 세계를 읽으며 그는, 지옥을 “끝나지 않는 어둠이 아니라, 언어를 잃은 상태”로 느꼈을 것이다. 그는 어떤 고통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해시계 앞에 서서 그가 말한 ‘earnest’의 태도를 나는 얼마나 지니고 있을까 떠올렸다. 성실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존재를 다해 진심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의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문학은 찰나의 빛을 잡아내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그 빛을 빛나게 하는 건 결국 진심이 담긴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롱펠로우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인간을 완성한 예술가였다.
문득 롱펠로우 하우스에 오기 전 지나왔던 찰스강이 떠올랐다. 그는 종종 롱펠로우 브리지를 건너 학교로 향했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강을 건너며 시의 첫 문장을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질 무렵, 강물 위에 반짝이는 노을빛 속에서 자신이 잃은 것들과 화해했을 것이다. 잔잔한 강 물결처럼 그의 시에 담긴 영혼의 목소리는 오래오래 빛을 내며 또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집 외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 마치 내게 인사라도 건네듯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짧다!”
그 문장이 그토록 명징하게 다가왔던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의 허망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끝없이 치열하게 써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길다는 건, 우리의 생이 짧더라도 예술에 담긴 진심은 언젠가 별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반짝일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저녁노을이 롱펠로우 하우스의 창문마다 황금빛 물결을 흩뿌려놓았다. 나는 한동안 눈부신 황금빛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저토록 반짝이는 빛이 그를 증명하는 듯했다. 모든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언어는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언어 속에서 나는 오래된 시간을 걸으며 생각했다.
삶은 earnest해야 한다는 것,
비가 내려도, 해가 비춰도,
우리는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것.
<박숲>
2012 월간문학 단편소설 등단
2021 전남매일 단편소설 당선
2023 현대경제 장편소설 당선
2023 계간 「시와산문」시 등단
소설 『굿바이, 라 메탈』,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