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계문학기행: 시간을 걷는 문장4

-해외 작가 13인의 삶과 흔적을 찾아서-

by 박숲

루르마랭의 이방인, 카뮈를 만나다

- 문학의 숨결을 찾아 ④


2275_3092_3316.jpg

알베르 카뮈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를 모를 리 없다. 특히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벌어진 살인을 다룬 『이방인』은 더욱 그렇다. 카뮈는 내게도 유난히 특별한 작가다. 박사과정 면접에서 게릴라식 질문에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카뮈의 부조리 개념을 설명했을 만큼 그의 작품에 깊이 빠져 있었다. 2년 전에는 계간 《시와산문》에서 『이방인』의 모티프를 가져온 시 「네 번째 계단에 앉아」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실제로 카뮈를 만나기 위해 루르마랭으로 향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루르마랭으로 향하는 길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순례에 가까웠다. 루르마랭에 도착하자, 이번 여정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오래도록 품어온 문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임이 분명해졌다. 여름의 루르마랭은 골목마다 관광객으로 북적였고, 작은 카페와 상점은 아기자기한 활기로 생동감이 넘쳤다. 곳곳에서 풍기는 라벤더 향은 여행의 기분을 부풀렸고, 석조 건물 위에서 금빛으로 반사되는 햇빛이 거리마다 어우러져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이곳에 집을 산 이유를 이해할 듯했다. 파리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소박한 남프랑스의 햇빛 속에서 그는 알제의 태양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서 배운 고독과 사유의 감각을 이어가기에, 루르마랭은 적당히 고요한 공간이었으리라.


카뮈의 생가는 그의 큰딸 카트린의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뜻에 따라 내부가 공개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집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지만, 굳게 닫힌 대문과 문패 하나 없는 담벼락은 침묵을 고집하는 듯했다. 성벽처럼 빈틈없이 이뤄진 구조여서 안쪽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집 안쪽에서 느껴지는 침묵의 결이 깊게 전해졌다.


2275_3093_3418.jpg


카뮈의 생가를 방문한 필자



나는 네 번째 계단에 앉아 뜨거운 햇빛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내 시의 제목이자, 나를 그 먼 곳까지 이끈 상징적 장소였다. 생각보다 낮고 평범한 돌계단이었지만, 그 위에 앉자 카뮈의 문장에서 느껴지던 세계의 부조리가 묘하게 현실로 밀려왔다.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가 바위를 올리고 내려보내는 그 짧은 순간에 삶의 의미를 바라보았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나 역시 어떤 반성의 순간 속에 있는 듯했다.


루르마랭의 태양은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무자비했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태양 때문이었다”라며 혼란에 휩싸이던 감각이 실제로 피부 위에서 재현되는 듯했다. 카뮈에게 태양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드러내고 때로는 압도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알제에서 경험했던 ‘태양의 진실’을 이곳에서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카뮈의 집을 뒤로하고 묘지를 찾아갔을 때는 태양이 가장 뜨거운 정오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표지판 하나 제대로 없는 묘지에서 그의 묘를 찾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몇 바퀴나 헤맨 끝에 구글맵을 켜고서야 작고 소박한 비석을 발견했다. 기쁨도 잠시, 숨 막힐 듯 덮치는 태양의 열기로 탈진 증세를 일으켰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현기증마저 일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묘를 마주했다.


카뮈의 묘는 너무나 소박하고 단순했다. 이름과 생몰년이 적힌 작은 돌비석. 세계적인 작가의 묘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검소했지만, 동시에 카뮈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처럼 장식 없이 투명한 묘였다. 비석 앞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독자들이 남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한 책들과 펜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 역시 준비해 간 『여행일기』 한국어판에 짧은 메모를 남긴 뒤 지퍼팩에 넣어 비석 앞에 놓았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을 받아 녹아내릴 듯 비석 아래 쌓인 많은 펜들과 책들은 묘하게 가슴을 울렸다. 그가 여전히 많은 이방인들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실감했다.


2275_3094_3458.jpg


카뮈의 묘지



비석 뒤편에서 그의 두 번째 아내 비석을 발견했을 땐 마음이 저릿했다. 그는 아내 이외에 오랜 연인 마리아와의 관계를 공적으로 드러냈고, 사고 당시에도 오랜 연인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사후에도 나란히 눕지 못한 그의 아내에 대한 연민이 일었다. 연인과 오랜 관계를 이어가는 그를 조용히 지켜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비석에 새긴 카뮈의 이름을 손바닥으로 쓸어냈다. 손을 데일 듯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 순간, “이게 바로 이방인의 태양의 맛이야.”라고 장난스럽게 웃는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한낮의 열기와 카뮈의 문장이 뒤섞이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카뮈와 좀더 긴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태양과 맞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탈진상태로 묘지를 빠져나왔고, 간신히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루르마랭을 떠나오며 생각했다. 그 먼 길을 찾아가 태양을 견디며 얻은 깨달음은 결국 하나였다. 글을 쓰는 삶을 계속 반성하고, 반항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카뮈가 말했듯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반항”임을 떠올리며, 오늘도 진지한 자세로 글쓰기를 대하려 노력한다. 그는 마흔일곱의 나이에 루르마랭의 태양 아래 묻혀 있지만, 그의 위대한 작가세계는 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KakaoTalk_20251120_060216522_01.jpg

루르마랭 팻말을 뒤로 하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계 문학기행:시간을 걷는 문장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