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작가 13인의 삶과 흔적을 찾아서-
알퐁스 도데마을 팻말 ⓒ박숲
산책길, 유난히 빛을 내는 별을 보며 걸었다. 겨울철 별자리인 베텔게우스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별자리를 몰라도 상관없다. 광해가 심한 도심의 밤하늘에서조차 또렷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는 그 자체로 충분히 신비롭다.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밤하늘 가득 별빛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면 시공을 건너온 듯한 아득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알퐁스 도데 역시 프로방스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무리를 바라보며 문장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문득 지금 이 순간, 프로방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와 같은 별을 올려다보며 어떤 꿈을 꾸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한여름, 프로방스에서 알퐁스 도데를 만났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곳에 가기 전엔 프로방스는 고흐의 색채를 먼저 떠올렸었다. 강렬한 노랑, 별이 빛나는 푸른 밤, 아를의 태양등. 그러나 도데의 마을을 방문한 뒤부터 풍경은 전혀 다른 결로 다가왔다. 과장되지 않은 들판과 낮은 집들,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햇볕과 바람을 닮은 이야기들. 프로방스는 고흐의 색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데의 목소리가 낮게 울리는 공간이 되었다.
작품의 배경으로 오르는 길 ⓒ박숲
알퐁스 도데의 「별」과 「마지막 수업」은 많은 이들이 학창 시절 한 번쯤 접해본 작품일 것이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 말해지기 전의 마음. 도데는 늘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끝나기 직전의 침묵을 오래 바라보는 작가였다. 그의 문장에는 언제나 시간이 잠시 멈춰 서 있다.
도데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별」의 배경이 된 산으로 갔다. 작품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산은 낮아서 언덕처럼 보였다. 작품 배경인 공간에 오르자 시야는 단숨에 열렸다. 커다란 풍차가 서 있는 언덕, 발아래로 펼쳐진 평원과 멀리 이어진 산맥.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그곳의 바닥엔 조약돌이 가득했다. 밤마다 목동이 양 떼와 함께 별을 올려다보기에 더없이 어울릴 법한 장소였다. 문학 속 배경을 찾아가 인물들의 사연과 동선을 상상하는 일이란 특별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마치 허구와 현실을 잇는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반짝이는 별 그 자체보다, 별을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들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데는 언제나 말해진 사랑보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작품마다 문장 안에서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풍차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작품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한여름 햇볕에 달궈진 조약돌이 발밑에서 계절의 열을 전달했고, 나뭇잎과 풀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낮은 소리를 냈다. 하늘에는 동화처럼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문득 목동과 스테파네트가 이 길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을 것처럼 느껴졌다. 목동처럼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문학이 만들어내는 이 기묘한 현존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풍차 기둥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결국 별을 보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별이 흐르는 은하수를 직접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별은 나의 친구였어요.”
「별」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작품 속 목동에게 별은 사랑의 증인이자, 혼자 견뎌야 했던 밤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산 위에서도, 누군가는 오래전 같은 별을 바라보며 같은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별이 나타나기 전의 하늘은 왠지 말이 나오기 전의 침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반짝이는 별 그 자체보다, 별을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들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데는 언제나 말해진 사랑보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작품마다 문장 안에서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작품 배경의 풍차 ⓒ박숲
알퐁스 도데마을 전경 ⓒ박숲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섰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해야 할 일과 돌아가야 할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지금 이곳에 머무는 감각. 그것은 도데의 문장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닮아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거창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살아가고, 일하고, 사랑하다가 때로는 무언가를 잃는다. 그러한 평범한 삶 속에서 비로소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태어나는 게 아닐까.
식사를 마친 뒤 마을 곳곳을 천천히 걸었다. 낮의 소란이 가라앉고, 돌로 쌓은 집들 사이로 낮은 조명이 켜졌다. 벽에서는 아직 식지 않은 열기가 은근히 전해졌고, 창문 너머에서는 접시 부딪히는 소리와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관광객들로 붐비던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자,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조용한 골목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마지막 수업」이 떠올랐다. 작품 속 교실이 실제로 이 마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낮은 창문, 오래된 벽, 골목을 가로지르는 나무 그림자. 이 건물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마지막 말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데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언어를 잃어가는 순간의 침묵은 특정한 교실에만 머무르지 않다는 것을. 그것은 마을의 공기 속에도,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도 스며든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문득 깨달았다. 알퐁스 도데를 따라 이 마을을 걷는다는 것은, 한 작가의 흔적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라는 것을. 「아를의 여인」 속에서 끝내 삶을 견디지 못한 큰아들은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탓에 무너졌을 것이다. 도데는 이 비극조차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마지막 수업」에서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침묵과도 닮아 있다.
다음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로방스를 떠나야 했지만, 도데의 문장들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서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다. 별이 떠오르기 전, 산 위에서 목동이 견뎌냈을 그 긴 기다림처럼. 아직 다 쓰이지 않은 문장들이 어딘가에서 별빛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을, 미래의 시간처럼.
글 박숲 | 시인·소설가
2021년 《전남매일신문》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23년 《현대경제신문》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
2023년 《시와산문》시 당선.
소설집 『굿바이, 라 메탈』, 장편소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