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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못소 Oct 27. 2017

철강 다이어터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 이 글은 제2회 글 못 쓰는 소설가의 날에 적은 단편 소설입니다.

다른 글못소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은 도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24035

근육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_철강 다이어터


 문밖을 나서자 마자, 온몸에 땀이 쭉 난다. 여름인 건 이해하지만, 햇빛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데 벌써 땀이 이렇게 나다니. 밤에 비가온다는 예보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습할 줄은 몰랐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신발에 껌이 붙은 것처럼 쫙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이지수는 하필 약속을 잡아도 이런날로 잡나. 옆에 사람과 살짝이라도 닿을까 조심하고, 가만히있어도 불쾌지수만 상승하는 이런 날씨에는 집에서 TV 보는 게 최고인데 말이다. 자주 보는 친구였다면 단칼에 다음에 만나자고 했을 텐데, 이지수는오랜만에 연락 온거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지수와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다. 만나면 어색한 건 아니지만, 친한 것도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연락하고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동창생 대부분은 이지수와는 연락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유학을 갔나, 재수해서 그런가 등등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지만, 소문은 오래가지 않고 사라졌다. 스스로 뚱뚱하고 못생긴 것에 콤플렉스가있는지, 자신감이 없고 소심해서 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진 이지수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도 얼마 안 가 지워졌었다. 


 그래서 처음 전화가 왔을때는 잘못 온 전화인 줄 알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학창시절 이지수의 우울하고 소심한 목소리가 아닌자신감 넘치고 활기찬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신종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무시하려고 했더니, 바로 동창회 총무인 문희정이 전화해서 대신 해명했다. 자신도 처음에는믿지 않았는데, 이지수가 맞았다고 말이다. 문희정은 이미개인적으로 이지수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기겁할 소식이 있으니, 이번동창회에 꼭 나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었다.


“야! 권하늘, 여기야!”


 나보고 무조건 나오라고했던 장본인 문희정이 손을 흔들었다. 분명 장소는 카페이고, 테이블위에 놓인 음료도 커피 같은데, 문희정은 알코올이 들어간 사람처럼 목소리 톤이 높아져 있었다. 


“너는 낮술 마셨어? 왜 이렇게업됐어?”

“너도 곧 나처럼 흥분할걸?”


 문희정은 나를 빈자리에앉혔다. 약속시간을 좀 넘겨서 도착했더니, 빈자리가 별로없었다. 


“자. 왔으니까 미션! 여기서 이지수 찾아봐~”


 문희정은 목축일 시간도주지 않고, 다짜고짜 미션을 주었다. 문희정은 분명 커피에술을 탔을 것이다. 내가 옆에 얘에게 ‘얘 왜 이래?’라고 눈으로 말하자, “너도 좀 있으면 그렇게 될걸”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야, 딴짓하지 말고! 빨리 찾아보라니까.”

 

 뭘 얼마나 달라졌길래 찾으라고하는 걸까. 이런 패턴은 뻔했다. 이지수의 목소리의 변화와같이 외형의 변화가 큰가 보다. 학창 시절 때 이지수는 키는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덩치는 3배는 컸던 거 같다. 본인도 살쪘다는 인식은 있었는지, 졸업하고 다이어트를 했나 보다. 나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쭉 훑었다. 대부분은 아는 얼굴이었지만유일하게 낯선 얼굴이 한 명 있었다. 


“으응, 설마 쟤야?”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나와버렸다. 얘들은 자지러지면서, 대박이지 않냐며 난리였다. 솔직히 살이 빠져도 미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지수는 뚱뚱한얼굴에 뾰루지가 있었고, 큰 잠자리 안경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래서살 빠져도 보통 얼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지수는 모델처럼 보일 정도였다. 몸매가 드러나게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웨이브 진 머리에, 안경이 사라진 얼굴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제야 당당하게전화해서 동창을 모은 이유가 이해되었다. 나라도 이렇게 변했다면, 자랑하고싶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하늘아 오랜만이지? 참고로성형은 안 했고, 치아 교정도 안 했어. 지방흡입도 아니고.”


 나 오기 전에 같은 질문을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대답을 앵무새처럼 몇 번이나 하는 중이고 말이다. 너무나 달라진 외형은 수술의 의심이 많이 들었지만, 본인이 아니라고하니 다시 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이어트약은 먹었지. 이게신약이라서 아직은 잘 모르는데, 효과가 대박이야.”


 사람 사이로 전달된 약은평범한 흰 알약이었다. 


“이게 먹으면 근육통을 못 느끼게 하는 거야. 솔직히 운동하면 힘들어서 오래 못 하잖아? 그런데 이 약 먹으면통증이 안 느껴져서 운동을 오래 할 수 있어. 내가 이 약 먹고 운동해서 이렇게 뺀 거라니까.”

“나 아까 이거 먹었잖아. 지금좀 약효가 도는지, 감각이 둔해 진 거 같아.”

“근육통과 비슷한 통증도 같이 마비되긴 하는데, 일시적이니까 걱정 안해도 돼. 내가 이 약을 1년 동안 먹고, 운동해서 다이어트 했거든? 그런데 딱히 부작용이 없더라고. 나는 지금도 운동하기 전에 약 먹어. 그럼 운동 많이 해도 근육통이 없어서 좋더라고.”

“이거 어디서 샀다고 했지? 오늘바로 살 수 있어?”


 여기저기서 산다고 난리였다. 이지수는 바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택배로 바로 보내준다면서 말이다. 다단계인가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모두 다이어트 신약의 효능에 홀렸다. 


“야, 그 번호 나도 알려줘.”


 홀린 사람 중에는 당연히나도 포함이었다.


 약은 정말 효과가 좋았다. 약을 먹고 30분 뒤부터 감각이 무뎌지면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는30분만 줄넘기해도 힘들어서 못 했는데, 이 약을 먹으면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몸이 아프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피로가 그대로누적이 되기 때문에, 과도하게 운동한 다음 날에 극심한 피로에 시달린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과도한 정도를 잘 몰라서 몇 번 앓아누웠지만, 한 달이지난 지금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해서 운동할 수 있었다.

 약을 안 먹었을 때보다는 2배로 운동할 수 있어서, 몸의 변화는 금방 나타났다. 지방이 빠지고 근육량이 증가했다. 전신 거울 속 나를 볼 때마다, 다른 사람 같다. 원래 퉁퉁한 편은 아니었지만, 팔뚝, 복부, 허벅지에는항상 살이 있어서 옷맵시가 영 별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도 살이 탄력 있고, 매끈해졌다. 과거의 노력에 비해서 지금은 별로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효과는 훨씬 좋았다. 단지 근육통을 느끼지 않고, 운동할뿐인 말이다. 약 덕분에 운동이 상쾌하고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약을 먹지 않고 운동을 하진 않지만 말이다. 


 이걸 부작용이라고 하긴그렇지만, 약을 안 먹으면 전보다 근육통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이는나 말고 이지수도 겪었다고 했다. 감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심리적으로 안 느끼던 통증을 느끼다 보니, 예전보다 과하게 인지하는 것 같았다. 뭐 그런 문제도 약 먹고 운동하면 되기에, 크게 걱정은 안 되었다.


“하늘이 요즘 운동 열심히 하나 보다?”


 한 달이 지나고 몸매가달라지자, 주변에서 슬슬 반응이 왔다.


“건강하면 좋잖아요. 어릴때 열심히 해야죠.”


 이지수가 준 약은 아직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판매된 뒤에 파장이 클 수 있기에, 정식인가가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주변에 약의 존재는 숨겼다.솔직히 약이 공개되어도 말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약발(?)로운동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내 노력을 낮게 평가할 게 뻔했다. 약덕분에 근육통 없이 편하게 운동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노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매일 헬스장에 가고, 2시간 동안 운동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내 노력을 무시당하고 싶진 않았다. 


 “운동하는 거 힘들지 않아? 어떻게매일 2시간씩 할 수가 있지?”


남자 선배의 칭찬을 시작으로모두 나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여자들 눈 속에는 시기 질투도 있지만,그 속에 부러움이 있다는 걸 안다.


 “저도 힘들었는데, 하고 나면보람도 있어서,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주변의 칭찬에 적당히 겸손하게대답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콧대가 높아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제야이지수가 연락 두절했던 동창에게 연락한 심정이 백 퍼센트 이해되었다.

 

 나의 높아졌던 콧대는 오래지않아 다시 낮아졌다. 약이 시중에 공개된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에는약이 소개되었고, 이지수는 사례로 같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공개된약은 ‘제로통증’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시중에 공개되자마자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헬스장에는 오래 운동해도헐떡이지도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목격되었다. 언론에서는통증 느끼지 않고 다이어트 하는 사람을 ‘철강 다이어터’라고부르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그 약은 왜 이렇게빨리 공개된 거야.”


 문희정은 가볍게 투덜거렸다. 문희정도 몸매가 연예인급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나 눈 돌린 몸매였지만, 이런 몸매는 이젠 희귀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 둘이 있는 카페만봐도, 모두 연예인처럼 날씬하니 말이다. 


“그러게. 이젠 운동 열심히해도 대단하게 보지도 않더라.”


 ‘제로통증’이 공개되기 전에는모두 나를 대단하게 보았었다. 자기관리를 잘한다며 남자에게도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인기는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으레‘제로통증 먹으면서 하는 구나’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심한 사람은 불법으로 약 먹고 운동하는 의지박약한 사람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날씬해져서 좋았는데, 지금은개나 소나 날씬하니까, 별로 메리트를 못 느끼겠어.”

“맞아. 몸매는 기본이고 이젠패션으로 승부하는 것 같던데?”

“제로통증 사느라 매달 나가는 돈이 얼만인데. 여기서 옷까지 신경 써서 사야 해? 어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문희정은 용돈을 많이 받는편인데, 그래도 부족한가 보다. 하긴 제로통증은 수요가 많다고, 가격이 저렴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에서 만연하게 퍼지는 것을막기 위해서, 가격을 고가로 책정해버렸다. 


 문희정과 신세 한탄 하고돌아오는 길은 기분을 더 최악으로 만들었다. 길거리 대부분 사람은 날씬했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탄탄하기 까지 했다. 나는 여전히 매일 운동하고는있었다. 주변 사람들보다 몸매가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이 노력으로 일군 것이 기껏 평범한 몸매라는 것뿐 이었다. 


“야, 이번 화보 봤어? 대박이야. 솔직히 요즘은 모두 말라서, 생긴 게 비슷한데. 이다는 확실히 다르더라. 이번 화보보면 완전 매력있어.”


남자 선배들은 스마트폰화면에서 시선을 못 뗐다. 


“그게 왜 매력적이에요? 뚱뚱하기만하던데.”

 

문희정의 말에는 나도 동감. 남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날씬한 사람만 보면 눈이 뒤집히더니, 요즘에는 뚱뚱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나 보다. 살집 있는 여자중에서도 이다가 요즘 핫 이슈였다. 이다는 아이돌 가수인데, 제로통증이나오기 전부터 통통한 거로 유명했다. 아이돌인데 다이어트도 안하냐며 욕을 많이 먹었지만, 최근에는 건강한 섹시미가 있다며 새로운 미인상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너도 이제 운동 그만하고 살 좀 찌워.적당히 통통해야 건강해 보이고, 더 매력적인 법이야.”


저 선배는 몇 달 전만해도날씬해진 나를 보며 칭찬했던 사람이다. 사람 마음은 갈대라고 하지만,이렇게 취향이 금방 바뀔 줄이야. 


“매력은 무슨. 그냥 유행이바뀌니까 따라 하는 거면서.”


이 말 역시 동감. 사실 이다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트렌드 리더로 불리는 연예인의 SNS 글때문이었다. 


[제로통증으로 획일화된 사람보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한이다가 내 눈에는 더 매력적이다.]


이 글과 더불어 SNS에는 이다의 과거와 현재 사진을 올렸다. 이 글은 바로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 사회에 퍼진 미인상을 바꾸어 버렸다. 이다는 그 날로 대스타가 되었고, 자신의 스타일을 꾸준히 고집한진정한 트렌드 세터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볼 때는 귀찮아서 운동을 안 한 것 같지만, 남자들이 볼 때는 아닌가 보다. 


“야, 우리 기분 전환하러가자.”


문희정은 냉담한 선배들의반응에 불쾌한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왜 어디 가게?”

“흥. 당근 내 매력 발산할곳으로 가야지. 아직 초저녁이니까, 둘이 술 마시면서 시간좀 때우다가 클럽 가자.”


술 마시기에는 아직도 해가떠 있는데. 문희정은 내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무작정 끌고 갔다. 뭐 기분이 꿀꿀한 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강하게 뿌리치지 않은 내의지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초저녁부터 여자 둘이서술을 퍼부었다. 


“솔직히 제로통증 나온 지가 얼마나 됐냐? 1년도 안 됐어. 그런데 날씬한 사람 좋아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이다 같은 뚱뚱한 여자 좋아하는 남자들만 남았어? 이게말이 돼?”


“그니까. 남자들 속은 알다가도모르겠어. 이제는 흔한 몸매라서 싫다는 거잖아? 제로통증만있으면 다이어트하기 엄청 쉬운 줄 아는데, 그것도 힘들어. 매일 2시간씩 운동하는 게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건데. 완전 사람들이약에 의존하는 약쟁이처럼 본다니까?”

“다이어트 자체가 얼마나 힘든데. 약쟁이라고말하는 것들은 입을 다 꿰매버려야 돼.”


그동안 울분이 쌓였던 우리는하소연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여자로 태어나고 예쁘다는 평가를 받기 싫은 여자는 없다. 모두 예뻐지고 싶고, 미인 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여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 해야 된다. 나는 제로통증이전에 날씬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뚱뚱해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었다.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바로 식이요법에 들어갔다. 운동도꾸준히 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기초체력이 없는 나에게는 꾸준히 운동하는 건 하늘에있는 별 따기였다. 오래 운동하기에는 숨이 차고, 몸이 아팠다. 근육통이 오면 생활하기가 힘들고, 끙끙 앓기 일수였다. 그래도 비만처럼 안 보이려고, 평균치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은건 아니다. 


제로통증으로 이제야 못했던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었는데, 되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평범했던 때보다 인기가 없어진 것이다. 인생 최소로 미인 소리 듣고,도도하게 여왕처럼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은 시작도 전에 허물어졌다.


“흥. 내 몸매가 어때서! 야 클럽 가자. 이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찾아야겠어!”


문희정은 투지를 세우며벌떡 일어났다. 아직 제로통증이 공개되기 전에 우리만 날씬했던 때, 우리는클럽에서 인기인이었다. 우리 둘이 클럽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의시선이 꽂히는 짜릿함이란. 지금은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렇다고소 닭 보듯 우리를 보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각 소리 내며, 도도하게 걸어 들어갔다. 몸을 울리는 음악 틈으로 꽂히는 시선을날라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은 무참히 깨졌다. 다들힐끔 보고는 자기들 춤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문희정과 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춤을 추면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30분 넘게 가운데서 몸을 흔들었지만, 반응은없었다. 기껏 온 클럽인데 자존심이 더 뭉개졌다.


“야. 다른 곳으로 가자.”


여기가 특이한 경우일 것이다. 이대로 집에 가면 비참할 것 같아서, 다른 클럽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희정은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야, 가자니까!”


귀 바로 옆에서 소리쳤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문희정 표정이 이상했다. 


“저쪽 뚱뚱한 여자 혹시 이지수 닮지 않았어?”


문희정이 가리킨 방향에는남자들 한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남자가 많아서, 잘보이지는 않지만, 이다처럼 통통한 몸매의 여자였다.


“사람이 많아서 잘 안 보이는데? 그런데이지수가 저렇게 뚱뚱하다고? 아니겠지.”

“아닌데? 자세히 봐봐. 이지수 맞는 거 같은데?”


나는 여자 얼굴을 확인하려고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들은 여왕벌에게 간택 받고 싶어서, 별별추파를 다 던지고 있었다. 사람 틈 사이로 어떻게든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문희정 말을 듣고 봐서인지, 확실히 얼굴이 이지수 같았다. 


‘이렇게 뚱뚱한 게 이지수라고?’


어이가 없어서 틈 사이로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 남자들의 짜증이 들렸지만, 사뿐히무시해주었다. 바로 눈앞에 여자가 보였고, 이지수가 맞았다.


“야. 이지수! 너……”


나도 모르게 눈으로 몸매를훑었다.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스스로 그런 행동 하고 있다는자각도 없었다. 우리에게 제로통증을 나눠주며 다이어트 하라던 이지수가.제로통증 홍보대사로 TV에 나오던 이지수가. 눈앞에뚱뚱한 사람이 이지수라고?


“어? 권하늘! 여기서 다 만나네!”


이지수의 바뀐 몸은 이다와비슷했다. 사실 과거라면 평균 체중이라고 말하는 몸이었다. 살집이있지만,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탄력적으로 축 늘어지는 몸매는 아니었다.단지 평균 몸매가 날씬해진 만큼 이제는 이 정도로 살집이 있어도 뚱뚱해 보였다.


“나 친구 만나서. 오늘은친구랑 놀게요!”


이지수는 둘러싼 남자들이게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나와 같이 테이블에 앉았다. 


“맞지? 이지수! 야 너 몸이 왜 이래?”


우리가 이동하는 걸 보고는문희정도 금세 자리에 앉았다. 


“맞아. 뭘 그렇게 놀라?”


눈앞에 본인이 앉아있지만, 믿기지 않았다. 마치 동창회 때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을때처럼 말이다. 


“너 요요야? 요즘은 다이어트안 해?”


내 질문에 이지수는 어이없다는표정이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냐는 듯이 말이다.


“너네야말로 요즘 다이어트 안 해? 왜아직도 말라깽이야. 설마 그 몸을 계속 유지 할 생각은 아니지?”

“말라깽이? 야! 네가 뚱뚱한 거지! 내가 이 몸 만들려고 운동 얼마나 열심히 하는줄 알아?”

“야, 시대가 변한 게 언젠데. 아직도 그 몸을 위해서 운동을 해? 너네 이다 못봤어? 이젠 시대가 바뀌었어. 시대의 흐름을 타야지.”


이지수는 우리 둘을 안타깝다는듯 바라봤다. 같은 여자 특히 우리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이지수가 그렇게 보니 울컥했다. 차라리 남자 선배에게 무시당했을 때가 덜 기분 나빴다.


“시대는 무슨. 몸매 관리안 하고 있는데, 쪽팔려서 말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기분이 상했으니 말도 곱게나가지 않았다. 한껏 감정을 담아서 말했지만, 이지수는 멀쩡했다. 그게 더 얄미웠다.


“너네처럼 무작정 운동해서 살 빼는 것보다 이 몸 만드는 게 더 힘들어. 적당히 살을 유지해야 하고, 그렇다고 비만까지 가면 안 되니까 적당히운동하고. 그렇다고 온 몸에 살이 붙으면 못생겨 보이는 거 알지? 허벅지만탄탄하게. 종아리는 얇게. 신체 부분마다 신경 써야 한다고~ 이게 얼마나 힘든데.”


이지수 말에 둘 다 동시에몸매를 쭉 스캔했다. 확실히 보기 좋게 살이 쪘다. 보기좋게. 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몸이었다. 그냥 마른 사람처럼약해 보이지 않고, 탄탄하게 건강해 보였다. 나와 문희정은순간 할 말을 잃었다.


“쯧쯧. 그리고 너희 사람들심리를 몰라? 몇 달 전까지는 마른 사람이 희귀했으니까, 마른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였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길거리 다녀와대부분이 말랐어. 뻔한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겠어? 그러니이다처럼 통통한 사람이 주목을 받는 거야. 지금은 통통한 사람이 희귀하잖아? 

너네도 이제는 운동법 바꿔. 식이요법도 새로운 방법으로 하고. 뭐 처음이니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면, 내가 한 운동법 알려줄 수도 있고.”


나와 문희정은 시선을 교환했다. 술에 취했다고 해서 이지수가 한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지수가한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고, 희귀한 것에더 매력을 느끼는 심리도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기껏 한 내 노력을 무시당했다는 억울함에 귀를 닫고남의 말을 안 듣고 있었을 뿐이다. 

나와 문희정은 이지수의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둘이 싫다고 해서, 시대의흐름을 바꿀 수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동시에 운동법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이지수는 그렇게 말할 줄알았다는 듯이 일정 연설을 늘려놓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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