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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5-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하루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피해자 측에서 연락이 와있었다. 내용은 그 후로 내가 연락이 없었기에 경찰서에 사고 접수를 한다는 문자였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상대방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은 아저씨의 목소리 상당히 화가 묻어나 있었다. 보험사에서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아서 기다리느라 연락을  드렸다고 설명하니 그럼 상황이라도 알려줬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아직 확정된 게 없어서 제대로 결정이 되면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실수였나 보다. 전화를 해서 애매하게 말을 하는 것보단 정확한 말을 해줄 수 있을 때 연락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말한 뒤 보험사에 다시 연락을 하고 12시 안으로 확답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당장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보험처리가 된다며 알려주었다. 오늘 중으로 보험사에서 연락을 할 거라는 말을 듣고 아저씨에게 바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문자로도 다시 한번 보냈더니 언짢았던 기분이 풀리셨는지 알겠다며 답이 왔다.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아침부터 신고 접수를 한다는 문자를 받고는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잠시 자책을 했다.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번 경험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처음이라 실수했지만 다음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그때는 더 현명하게 대처를 해야겠다. 앞으로는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할 것이다. 이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법칙을 마음깊이 새겨둬야겠다. 사고 난 사람도 사고를 낸 사람도 어쨌든 인간인데 때론 내가 내린 이성적 판단이 상대방의 감성을 달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니 넋이 빠져 버렸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만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해결이 잘 되어서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그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최악의 경우까지 간 적은 없지만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문제가 발생한다고 느껴지기는 했다. 타이어가 새끼발가락으로부터 1cm만 비껴나갔어도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오늘은 밖으로 나갈 의욕이 사라져서 집에만 있었다. 할머니가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며 전화가 왔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후로 큰 숙모에게 한번 더 전화가 와서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라며 짜장면을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며칠 전에 할머니 생신을 앞당겨서 외식을 했었는데 오늘이 진짜 할머니 생신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리 만나고 같이 밥도 먹었기에 오늘은 나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날짜가 언제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막상 나가지 않았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가 너무 불효를 저지르는 기분이고 정말 이게 잘한 선택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삶의 1순위를 나로 둬야 하는가, 가족과 함께 하는 걸로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대한 정답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괜히 마음만 심란해져서 할머니께 축하한다는 전화를 다시 드렸다. 할머니는 나랑 못 먹은 게 아쉬웠는지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오늘은 정말이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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