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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6- 속마음

2023년 4월 28일 금요일


 며칠 동안 쉬느라 미뤄놓은 일기는 나에게 마음의 숙제가 되었다. 쌓아놓은 것들 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픈 기분이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글을 써내려 나갔다.


 생각해 보면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간병 기록용으로 일기를 쓸 수밖에 없다. 조금이나마 일기 속에 나만의 글을 녹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그 미흡함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내 일기장은 정리가 안 되고 투박한 글이지만 진심이 담겨있다. 똑같은 일상을 담아내야 할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점이다.



 낮에는 사색을 즐기다가 저녁에는 유흥을 즐겼다. 참으로 대조되는 일과라고 느껴지겠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좋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다. 나는 정적임과 동적임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중간을 유지하는 내가 마음에 든다.


 외향적인 무리에 속하기에는 내향적이고, 내향적인 무리에 속하기에는 외향적인 나는 그 어디에도 끼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민함과 둔함의 그 어느 경계에 서있었고, 심지어 태어난 곳조차 광역시 사이에 끼여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지역에 살았다. 색깔로 치자면 검정과 흰색 사이에 있는 회색정도로 취급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그런 모호함이 내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뭐 하나 특출 나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그 애매함이 너무나도 싫었는데 이제는 그 중간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중간에 있었기에 남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힘을 쏟을 필요가 없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세상이 나를 극단적이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심을 잡고 살도록 꾸민 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닌 아집을 알았기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면서까지 중간을 향해가도록 호되게 세상살이를 시켰나 보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들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우리 동네는 마땅히 놀만한 곳이 없어서 놀러 가려면 부산까지 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녁에 모이기만 하면 술을 마셨다. 옛날에 어른들을 보면 왜 항상 친구랑 만나면 술만 마시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이제는 왜 그랬는지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지역은 놀거리가 없다.  흔한 보드카페도 영화관도 없다가   전에 생겨났지만  마저도 폐업을 해버리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문을  카페도 거의 없다 보니 만나면  한잔 하는  함께 즐길  있는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우리가 수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원인에는 동네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지금이야 다양한 문화공간이 들어서는 중이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렇게 술을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하는 일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데 이렇게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인 곳 같다. 어쩌면 여전히 같은 동네 안에서 서로 다를 것 없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변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다 보면 어느새 나 또한 거기에 물들면서 예전에 함께하던 친구랑은 멀어지게 된다는데 이상하게 그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고 있을 것 같다.


 친구들과 놀다가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친구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 보니 술을 마시다가도 항상 통금 시간에 맞춰 집을 갔었는데 오늘따라 그게 아쉬운지 자기 집으로 가서 먹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 놀 수 있게 되어서 신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갑자기 변해버린 친구가 걱정이 되었다.


 친구의 집에 가서는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친구의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20대 초에는 같이 놀자고 나오라는 제안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노는 건 좋지만 통금 때문에 부모님과 다투는 것이 싫어서 우리가 불러도 나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며 실토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친구들을 불러내던 내가 서울에 올라가 버린 후로는 시끄러웠던 단톡방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자기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새 보니 무리 중에서도 자주 만났던 애들끼리만 따로 보는 게 느껴져서 왠지 모르게 벽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다 같이 있을 때는 어색하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는 게 어색해졌고 술을 마시고 싶은 날에도 마음 편히 부를 수가 없어서 집에서 혼자서 술을 들이켰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껏 9명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내 역할이 컸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먼저 하지 않더라도 잊지 않고 매번 꾸준히 연락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면서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 준 친구한테 더 고마움을 느꼈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무리 중에 더 친한 사람은 따로 있기 마련이고 만나자고 불러냈을 때 흔쾌히 나오는 친구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거절을 당해도 다음번에 또 연락을 시도했고 한 번은 나오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강요가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 또한 항상 만나는 친구들만 부르게 되었다.


 모두들 각자 맡고 있는 포지션이 달랐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행동 대장이었다. 나말고는 주도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애들이 없었기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올 때마다 단톡으로 연락을 했고 오늘 만나는 것 또한 내가 먼저 제안을 했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되면 좋다고 생각해서 나는 모두를 쉽게 불러냈는데 친구는 거절당할까 봐 마음 편히 불러내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해서 속상했다.


 오히려 자주 참석을 안 하던 친구가 부르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신나게 달려갔을 텐데 혼자서 얼마나 생각이 많았을지 마음이 안 좋았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도 다음부터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 말고 부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부르면 나가겠다며 친구를 토닥였다. 그러면서 내 양옆에서 눈물을 글썽거리길래 나는 또 그 둘을 토닥거려줘야 했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면서 속은 한 없이 여린 이 친구들이 내 친구라 다행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직접 만나지 못하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그대로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대하게 된다. 오늘은 친구들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서 한층 더 끈끈해지는 날이었다.


 


 

 


 



 놀고 싶은 날 부르면 바로 나오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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