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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7-USB의 행방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아침에 깨어났다. 일어나 보니 같이 왔던 친구 하나는 오늘 템플 스테이를 가야 한다며 이른 새벽에 집을 가버린 후였다. 속세를 벗어나기 전 그 누구보다 세속적인 생활을 즐기다가 가버린 친구를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슬슬 집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일 엄마와 교대를 하려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돼서 일단 병원을 찾아보고 나갈 준비를 했다. 친구는 우산을 가지고 가라며 나에게 건네주었고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다.


 바깥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쌀쌀했다. 친구집 근처에 있는 내과에 들려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음성이었고 확인서를 받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도 변한 것들이 많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는 미용학원이 하나도 없어서 학원을 다니려면 버스로 50분을 타고 가야 했다. 심지어 배차 간격은 1시간이었고 학원 근처로 가는 버스는 단 두대밖에 없었다. 그렇게 2년을 고생하면서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나면서 왠지 모를 억울함과 아쉬움이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학원 하나를 차릴 걸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지만 그랬다면 서울에 갈 수 없었을 테니 그냥 이런 현실에 빠르게 순응했다. 그랬지만 버스를 타고 집을 가는 동안에도 만약이라는 상상의 나래가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집으로 가서는 해장을 하기 위해 돼지국밥을 시켰다. 몇 년이 지나도 술을 먹고 나서 국밥으로 해장을 하는 습관은 그대로다. 이상하게도 어제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너무나도 괜찮았다. 원래라면 숙취에 허덕이면서 하루를 날렸을 텐데 마지막 날을 멀쩡하게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일 병원에 가려면 짐을 챙겨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저녁이 되어서야 가방을 쌌다. 그런데 USB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집안에 있는 건 분명한데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소파부터 시작해서 USB가 있을만한 장소는 샅샅이 살펴봤는데도 구경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안에 넣은 자료는 없었지만 구매한 지 얼마 안 돼서 잃어버린 게 억울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내 방부터 엄마방, 동생방까지 다 찬찬히 살펴나갔다. 그런데 전혀 안 보인다.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집념이 생겼다. 내가 놓치고 있는 곳이 있나 싶어서 냉장고 바닥 틈 사이부터 다용도실 화장실 안까지 찾아봤다. 서랍장도 다 열어보고 캣타워까지 확인해 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USB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늦은 새벽까지 나는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을 쫓았지만 끝끝내 발 견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은연중에 어디다가 둔 것일까. 정말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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