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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8

2023년 4월 30일 일요일


 4월의 마지막 날, 나는 오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2주 동안 많은 일을 겪은 듯하다. 이렇게 보니 내 인생이 정말 다사다난하다는 것이 실감이 된다. 오늘부터 다시 간병이 시작된다는 압박감에 아침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오후에 교대를 하자고 했으니 느긋하게 준비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화장을 하는 동안 빨래를 돌렸다. 어차피 병원으로 가면 색조 화장품도 쓸 일이 없다. 병원에서는 예쁜 옷들도 무용지물이다. 그저 편한 옷이 최고다. 나를 꾸며 주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두고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챙겼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챙겨가고 싶었지만 내려두었다.  마지막으로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이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지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를 몰라서 흔쾌히 들리겠다고 했다. 주차장으로 가서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운전자석에 홀로 오늘은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를 끌고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경찰서였다. 피해자 측에서 고소취하서에 동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원래라면 진술서를 작성하러 방문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진술서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였다. 또한 상대방이 고소를 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벌금 4만 원, 벌점 15점이 부과된다고 하였다. 사건이 이 정도로만 끝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앞으로 운전할 일이 있으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집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할머니는 이걸로 되겠냐며 탕수육도 시키려고 했지만 충분하다며 만류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입맛도 없었다. 짜장면이 병원 밖에서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생각하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분명 내 자유의지로 결정한 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강제 징집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제 발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어찌 됐던 병원으로 가면 내 자유가 사라지니깐 말이다. 어릴 적부터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박탈감이 상당했다. 그래도 분명 웃을 날이 오지 않겠냐는 할머니 말에 수긍을 했다.


 오늘따라 날씨도 너무나 화창했다. 딱 병원으로 들어가기 좋은 날씨다. 할머니는 은행에 볼 일이 있다며 사거리에 내려주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볼일이 있는 거 아니면 은행에 갔다가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거절을 했다. 은행 주차장으로 도착하니 할머니는 금방 오겠다며 나를 멈춰 세웠다. 잠시동안 기다리니 할머니는 나에게 현금 10만 원을 건넸다. 괜찮다고 사양을 했는데도 자신의 마음이라며 돈을 내 손에 꼭 쥐어 주며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버스가 언제 오는지 물었더니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며 차를 타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대로 그냥 가면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아서 집까지 태워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냐며 강경하게 나왔더니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서도 나보고 힘들어서 어쩌냐며 걱정을 하면서 집 앞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 마음이 무엇인지는 안다. 괜히 본인 때문에 고생할까 봐 부담주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데 오히려 그게 더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결국은 할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뭘 걷냐며 집 앞까지 태워주는 게 내 힘을 들이는 일도 아닌데 오히려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겠다고 말하며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이럴 때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결국은 집까지 가서 할아버지와도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고생할 나를 위해 한번 안아주라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애정표현에 서툴다. 그럴 때는 내가 하면 된다. 할아버지를 힘차게 끌어안고 갔다 오겠다며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도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지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마주친 할머니의 눈동자는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걱정하지 말라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병원으로 가기 전 친구집 앞에 들려 어제 빌린 우산을 돌려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되었고 나는 진짜 출발을 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 노래를 틀어놓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니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1시간 뒤면 사라질 자유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나 보다. 원래라면 짜증이 났을 법한 상황들조차 오늘만큼은 고맙게 느껴졌다. 빨간 신호등, 정체된 도로 이 모든 것들이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천천히 달려가면서 마지막으로 이 순간을 만끽했다. 반대로 평소라면 좋았을 상황에 처연해졌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분명 느리게 왔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도착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결국은 내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만족한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니 얼굴빛이 많이 좋아졌다. 엄마가 맨날 씻긴 덕분인지 두피도 깨끗해지고 피부 각질도 많이 사라졌다. 나도 나름 한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엄마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절대로 못 한다며 단호하게 잘라냈다. 엄마는 2주만 하니깐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몇 달을 돌봐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 짧은 하루동안 어떻게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긴 했다. 동작이 느린 나로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동생에게 진지하게 나는 엄마처럼은 해줄 수 없다며 그동안 좋았겠지만 앞으론 나의 방식에 맞춰야 한다고 말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아들이 나를 보기만 해도 웃는 모습을 보며 질투를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재활시간에 치료사가 엄마와 있는 게 편한지, 누나랑 있는 게 편한지 물었다는데 동생의 선택은 엄마였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할머니와 짜장면을 먹으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면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도 의지를 보이지 않을까 봐 강하게 대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동생에게 앞으로 나와의 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며 협박을 했더니 웃기만 한다. 안 봐도 엄마가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 보살폈을지 눈에 선했다. 아무래도 내가 동생한테 느끼는 감정과 엄마가 자식한테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애틋한 감정으로 돌봤을 텐데 나는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신 나는 동생이 심심하지 않게 재미를 주는 담당이었다. 내가 입만 열었다 하면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걸 인정하니 동생한테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웃긴 건 엄마와 함께 하는 게 더 편하다고 해놓고는 나를 애타게 찾았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나가 있던 어느 날 모두들 잠이 들었는데 동생이 누나를 계속 불렀다고 했다. 옆 칸에 있던 간병인이 그 부름을 듣고 혹시나 불편한 게 있나 싶어서 동생을 살펴봤는데 그냥 잠꼬대였다고 말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자고 있었다고 했는데 무슨 꿈을 꿨길래 나를 그렇게 찾았나 모르겠다. 평상시에는 누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얼떨떨하긴 했지만 누나라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오다니 기분이 좋긴 하다. 죽기 전까지 절대로 못 들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5월에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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