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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9-이상한 하루

2023년 5월 1일 월요일


 오늘은 오월의 첫날이다. 병원에서 가정의 달을 맞이하니 새롭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다른 날처럼 느꼈다. 그 느낌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혹여나 밤낮이 바뀌어서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쩌나 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알람소리에 맞춰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래도 보살펴야 할 대상이 있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져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러기엔 잠을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밤에 시끄러워서 잠을 설치지 않았는지 물어왔다.


 병실에서 가장 늦게 잠드는 나로서 관찰해 본 결과 우선 오후 8시 30분쯤 소등을 하면 9시까지는 고요하다. 그때는 숨 쉬는 소리조차 크게 들려서 혼자 부스럭거리고 있으면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9시 이후가 되면 여기저기서 코를 골기 시작한다. 때로는 섬망이 있는 환자들은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으면 코골이, 잠꼬대, 기침, 가래 끓는 소리 4 대장이 모여 합주를 펼친다. 거기에다 소변통을 비우는 소리와 간호사가 들락날락거리는 소리까지 환장의 콜라보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잘 자는 걸 보면 분명 둔한 사람인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예민하기도 했다. 한번 잠이 들었을 때는 그 어떤 소음이 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천둥번개가 내리쳐도 나 홀로 평온하게 잘 정도로 둔한 대신 알람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음량을 최소로 맞춰놓고 최대한 잔잔한 알람음으로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무조건 한 번만 맞춰둔다. 다시 알림은 내 사전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나를 보면서 항상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작은 알람소리를 듣고 어떻게 한 번에 일어나는지 신기해했다. 생각해 보면 자면서도 소리에 깨기는 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시 잠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일어나면 기억을 못 할 뿐이었다. 그런데 알람은 일어날 이유가 있어서 맞춰놓은 거라 그런지 첫 음이 울리기만 해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내가 책임져야 할 상황에는 더욱 그랬다.


 일어나자마자 동생의 몸을 닦이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혔다. 나는 1시간이나 걸리는 이 작업을 엄마는 어떻게 순식간에 끝냈는지 신기했다. 물론 내가 느긋하게 하는 것도 있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첫 재활이 10시 40분부터라서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네블라이저를 하고 나서 바나나 반 개를 먹이고 경관유동식을 진행했다. 재활을 가기 전에 대변을 눠서 한번 더 기저귀를 갈아줄 여유도 있었다.


 그리고 2주 만에 와보니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소변줄을 빼기 위해서는 소변을 어느 정도 모아서 배출하는 연습을 필요로 했다. 정해진 시간마다 소변줄을 열어 주고 그 외의 시간에는 바로 배출하지 못하게 닫고 있어야 한다. 6시, 10시, 2시, 6시에만 소변줄을 열어주면 된다고 했는데 문제는 동생이 적은 양도 참지를 못했다. 소변감이 느껴진다 싶으면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마비된 쪽에 힘이 들어간다. 만일 그때 소변줄을 열지 않으면 폭발적으로 소변이 나오면서 기저귀에 샌다. 오늘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었는데 몇 번은 타이밍이 잘 맞았지만 몇 번은 놓쳐서 기저귀와 바지만 오늘 하루 3번을 넘게 갈아입혀야 했다. 공휴일이라 재활이 많이 없어서 망정이지 평일이었으면 식은땀이 흐르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오전 재활 시간에 맞춰 엄마가 찾아왔다. 분명 몸살이 나서    같다고 했는데 전화와서 받아보니 동생과 같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활이 끝났는데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시간표는 분명 10 40분부터 11 10 까지였고 치료사는 2, 15분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명당 15분씩 한다는 뜻이 아니었냐고 하니 그게 아니란다. 15분만 진행하는 거고 나머지 15분은 보호자가 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처럼 이렇게 해석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시간표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뭣도 모르고 병실에서 시트를 갈고 있다가 한소리를 들으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만 봐도 엄마가 다음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여놓고 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툴툴거렸다. 엄마가 잘못 주문한 이불을 개서 가져오라는 것도, 기저귀 속 패드와 햇반이 다 떨어져 가니 주문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간병을 하고 있을 때 미리 시키면 되지 않았냐고 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불만을 말했더니 첫날부터 난리라면서 기막혀했지만 대화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갔다.


 엄마가 재활시간 동안 동생의 옆을 지켜줘서 나는 소파 구석에 앉아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평소에 8시간 이상을 자다가 6시간 정도 자니 피곤할 만도 했다. 물론 편하게 잠들지는 못했다. 5분 간격으로 깨면서 선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했다. 모든 재활이 끝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고 가고 싶다며 병실로 함께 올라갔다. 엄마가 음식을 줄 때는 잘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주니깐 잘 먹는다. 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 잘 받아먹어서 놀란 것 같았다. 이게 바로 세뇌 학습의 힘인 것 같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 밥 먹는 시간마다 잔소리를 한 보람이 있다. 아마 내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먹어주는 것일 테지만 어쨌든 잘 먹으니 다행이다.


 점심이 끝나고서는 한숨 돌릴 틈이 찾아왔다. 그런데 분명 스케줄이 없어서 한가할 줄 알았는데 나는 분주했다. 소변줄을 닫고 있으니 동생이 언제 반응을 보이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체위변경도 해주어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까워서 동생과 계속 무언가를 했다. 대화를 걸거나 영상을 보여주고 음악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4시 이후에 동생 친구들이 면회를 온다고 해서 잠시 재우고 나는 옆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


 그렇게 남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나 혼자 깨어있었다. 피곤해서 같이 자고 싶었지만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서 동생 친구들에게 언제 연락이 올 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동생을 깨워서 머리를 깎이러 샤워실로 들어갔다. 머리도 감길 겸 어느새 자라난 머리를 빡빡 밀었다. 엄마는 영상통화로 무자비하게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기함을 했다. 입대를 하는 군인처럼 삭발을 하고 있으니 왜 그렇게 짧게 깎이냐고 경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병을 할 때 자신이 깎였어야 한다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동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만을 보였다.


 애꿎게도 한창 머리를 깎이고 머리를 감을 때쯤 동생 친구들이 도착했다. 일단은 면회실에서 기다리라고 한 다음 재빨리 머리를 감겼다. 잘라나간 머리카락들이 얼굴과 목덜미에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급하게 털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보니 뒤처리를 할 생각에 막막해졌지만 동생이라도 먼저 면회실로 보내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처리했다. 동생 친구를 불러 동생부터 우선 데리고 가라고 한 뒤 나는 어질러진 것들을 마무리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치곤 나름 잘한 것 같다.


 뒷정리를 다하고 면회실로 가보니 커다란 사내 무리가 모여 있었다. 같이 논 적이 몇 번 있어서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몇몇은 낯선 얼굴도 보였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애들이었는데 어느새 훌쩍 커서 병문안을 왔다고 선물까지 사들고 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필 면회를 하러 온 시간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긴 했지만 와줘서 고맙기도 했고 동생도 친구들과 더 있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내버려 두었다.


 동생 친구들도 내 친구들 못지않게 수다쟁이들이라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을 있다가 사라졌다. 7시쯤이 돼서야 면회가 끝나서 병실에 오자마자 밥부터 먹였다. 휠체어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힘들어하긴 했지만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은 병실 아주머니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았다. 저녁을 먹고 있으니 이제야 먹이냐며 배가 고팠겠다면서 동생과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항상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커튼을 치고 동생 옆에 꼭 붙어서 말을 건다. 우중충하게 노인만 있는 병실에 젊은 사람이 있으니 병실 분위기가 살아난다면서 동생을 치켜세워줬다. 잘 생겼다는 말도 계속해주고 예뻐해 주고 동생도 기분이 좋은지 씩 하고 웃었다. 처음에는 여기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동생이 모두에게 이쁨을 받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어딜 가나 모두의 호의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 동생이었다. 밖에서도 그랬는데 병원에서도 어김없이 그 인기를 누린다. 참으로 귀찮겠다 싶으면서도 어쨌거나 실보단 득이 된다. 그 덕에 나에게도 약간의 이득이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우리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간병인도 이제는 친절함을 보인다. 오지랖이라고만 생각했던 관심이 지속되니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역시 사람이 익숙함이 무섭다고 나도 정과 오지랖 사이의 관심에 물들었나 보다. 그전에는 참견이 그저 불편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여기서 또 한 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다. 나도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되돌아보게 된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고 이상했던 날, 더욱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조회수가 많아봤자 100명 후반 대였던 내 글이 오늘은 조회수 2000회가 돌파했다는 알림이 떴다.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알람을 대충 보고 누적 조회가 2000회일 것이라고 착각했는데 갑자기 급상승한 그래프를 보고 얼떨떨하였다. 5월의 첫 시작이 너무도 좋다. 앞으로도 더 좋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잘 달려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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