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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0-새로운 시작

2023년 5월 2일 화요일


 날짜를 보니 정확히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됐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렇게 꾸준히 한 적이나 있을까. 작심 3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 달 정도는 버틸 만했다. 그런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해본 건 처음이다. 간병을 하면서 새로운 나를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오전 6시쯤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조금 있다가 소변줄을 제거할 예정이라 소변 주머니를 비워달라고 하였다. 불 꺼진 병실에서 새벽부터 소변을 비우고 있으니 처량하다는 감정보다는 잠을 더 못 잤다는 사실이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다. 소변줄을 빼는 것을 지켜보다가 20분이라도 더 자려고 누웠는데 주변이 신경 쓰여서 잠이 안 왔다. 주변에서는 이른 시간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왠지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아서 누워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억지로 10분가량 눈을 붙이고 있다가 도저히 잠이  와서 일어났다. 혹시나 싶어서 일어나자마자 기저귀를 확인해 봤더니 소변으로 젖어있. 제일 먼저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적신 수건으로 몸부터 닦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씻기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커튼을 걷어서 동생에게 인사를 했다. 동생을 예뻐하는  좋지만 벌거벗은 상태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커튼을 치는  너무 불편한 상황이었다. 사생활 침해를 당하는  같아서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다시 생각해도 의식이 돌아온다 수치스러울  . 동생도 분명 의식이 조금만  있는 상태였다면 불쾌함을 표현했을 것이다.  


 병원에 있다 보면 여러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을  있다. 오전 재활을 가기 몇 분을 남겨두고  또다시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대변이 나왔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하게 배출되는 과정을 직관해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동생한테 내가 지금 똥 싸는 것까지 봐야겠냐고 하니 자기도 어이없는  마찬가지인지 웃기만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낫. 몸을 옆으로 눕힌 상태에서 대변이 나온 거라 뭉개지지 않아서 쉽게 처리할  있었다.


 어제 간병인이 나에게 해준 말이 무슨 뜻인지 경험으로 깨달았다. 대변을 볼 때 옆으로 돌려 눕히면 잘 나온다고 했었는데 그 말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팁은 여분의 병원복과 베갯잇과 침대 시트 미리 쟁여 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돌발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교체를 할 수가 있다. 당장 오늘 오전만 해도 바지를 3번 넘게 갈아입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새겨듣는다고 해서 손해 보는 건 없는 듯하다.


 재활을 가서도 불안한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바지에 소변이 샜었는데 기저귀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소변줄을 없앴으니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바지 젖어버려서 재활을 하던 도중 3번이나 병실을 올라왔다. 하루동안 기저귀만 갈다가 끝날 판이다. 어떻게 하면 바지에    있는지 병실 사람들에게 요령 물었다. 그랬더니 모두들 손수 시범을 모여주면서까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선은 지금 사용하는 일자패드를 보더니 크기가 작다고 말하며 의료기상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보여주었다. 동생은 키가 크기도 하고 성인 남성이라 양이 많다며 패드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더니 깔개매트까지도 필요 없다며 전부 다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병실생활을 할 텐데 비싼 제품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저렴하고 자주 애용하는 제품들도 알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보호자는 깔개매트를 대변처리를 할 때 4등분으로 잘라서 쓴다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많은 것 같다. 이송 담당자분도 재활을 받다가 여러 번 올라오는 모습을 보더니 안 되겠는지 기저귀 가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손을 걷어 부쳤다. 기저귀 차는 법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말해준 방식과 또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은 여자 버전으로 기저귀를 간 것이라고 남자 버전은 다르다고 했다. 방법을 보니 일자패드로 우선 성기를 감싼 뒤 그 위에 다시 한번 고환까지 일자패드를 하나 더 이용해서 감싸준다. 그 이후에 기저귀를 차면 소변이 나오더라도 일자 패드만 갈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남녀 구조가 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었는데 알려준 방식 덕분에 오후 재활은 바지를 적시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래서 어른들의 지혜를 본받으라고 하나보다.


 마음 편히 오후 재활을 하는 동안 병실에 올라와서 뒤처리를 하였다. 심지어 기저귀 무게까지 재야 한다고 해서 바로 버릴 수도 없었다. 오늘은 기저귀만 7번을 넘게 갈았고 상의 2번, 하의 4번을 갈아입히며 신기록을 경신했다. 심지어 침대에 눕혀놓고 통풍을 위해 기저귀를 느슨하게 풀어둔 찰나에 소변을 눠서 기껏 새로 간 기저귀를 몇 분 만에 다시 갈아야 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기저귀와 패드를 몇 개씩 사용한 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종일 기저귀만 갈다가 재활시간을 틈 타 잠시 쉬고 있는데 병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의 혈압이 약간 상승하고 자꾸 울먹거리는데 재활을 계속 진행시켜도 될지 물었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몇 분 뒤에 전화가 다시 걸려와서 산소 포화도도 낮아지고 식은땀도 흘리고 있다며 병실로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둘러 내려갔다. 동생의 상태를 살펴보니 인상을 찌푸리며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소변줄도 제거했고 고통을 줄 만한 것이 딱히 없는데 앓는 소리를 내길래 의아했다.


 일단 힘들어 보이니 병실로 데리고 올라와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간호사가 혈압과 산소 포화도를 재보니 정상이었다. 침대에 눕혔을 때부터 재활실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꾀병을 부린 거냐고 물으니 피식하고 웃기만 한다. 간호사는 간혹 가다 이런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재활실에서는 상태가 안 좋아서 병실로 왔더니 막상 침대에 누우면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쩌면 대변이나 소변 문제 때문에 이럴 수도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어쨌든 동생의 컨디션 악화로 마지막 재활은 물 건너가 버렸다.


 웃긴 건 특수 작업 치료를 할 때 누나가 무섭냐, 엄마가 무섭냐고 질문을 했더니 누나가 더 무섭다고 대답했단다. 치료사분에게 그 얘기를 듣고 황당해서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때린다고 오해한다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으니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만만하게 대했으면서 이제 와서 무섭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겼다. 도대체 동생의 눈에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질 때 제일 먼저 물어봐야겠다.


 내 일과는 오로지 동생을 위해서만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를 보살필 시간은 없었다. 동생이 재활을 가는 시간을 활용해서 틈틈이 작업을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처럼 늘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시작해 볼 예정이다. 30분마다 재활 치료가 바뀌어서 동생을 이동시키려면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돼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 했다. 물론 편히 누워서 쉴 틈 따위는 없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이패드를 끄적끄적 매만지며 계획을 그려나갔다.


 2주의 휴가 동안 느꼈다. 어차피 나란 사람은 시간을 줘도 천하태평하게 흘려보낼 것이라는 걸 말이다. 여유를 주면 너무 안일해진다. 오히려 바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무언가를 더 열정적으로 하는 것 같다. 어쩌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환경적으로는 지금이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이자 스트레스인 상황은 맞다. 내가 제일 선호하지 않는 환경이다. 나는 자유가 보장되는 곳에서 느긋하게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주어진 시간에 빠르게 처리해야 되는 일을 굉장히 버거워한다. 그래서 시간제한이 주는 압박감과 조급함이 싫어서 그런 부류의 게임도 안 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 그러니깐 지금도 이 상황을 벗어나려다 보니 나를 위한 일을 더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시련을 주는 것이라면 한번 맞서 싸워봐야지 뭐 어쩌겠는가. 다시 새롭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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