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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3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1 - 슬기롭고 싶은 병실생활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새벽에는 동생의 잠꼬대인지 신음인지   없는 소리에  이나 일어나 확인해야 했다. 분명 눈을 감고 자는  같은데 자꾸 소리를 낸다. 동생의 소리에 남들이 깰까 봐 걱정이 되었다. 눈치가 보이지만 보조등을 켜고 기저귀를 확인했더니 소변으로 젖어있었다. 아무래도 자다가 찝찝함을 견디지 못하고 불편함을 표현한  같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내가 잠을 자면 동생을 케어할 사람이 없어지니 자면서도 신경을 항상 곤두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알람이 울리기도 에 불안감으로 눈이 떠졌다.


 오전에 일어나서 서둘러 준비를 한다고 해도 여유는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혔다. 문제는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 옆으로 눕혔는데 그대로 소변을 눠버리는 바람에 침대시트가  젖어버렸다. 심지어 소변의 양도 많았다. 눈앞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수습을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절망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힌 직후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눈에땀이 났을  같다.


 병실 사람들은 침대시트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보고 아침부터 우리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직감했다. 이런 걸 그냥 지나칠 리가 없는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고 물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기저귀를 가는 도중 소변이 나왔다고 말하니 다들 누나를 그만 힘들게 하고 일어나라며 동생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럴 땐 참아야 한다며 말을 해주는데 정말이지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동생이 재활 치료를 받으려 내려가 있는 동안 침대 시트를 갈고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했다. 사소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전부 해야 돼서 가만히 있고 싶어도  수가 없었다. 만약 동생의 몸을 닦였다면  이후에는 수건을 세탁하고 말려야 한다. 기저귀를 갈았으면 무게를 측정하고 작성을 해야 한다. 밥시간이 끝나면 항상 주사기와 약통을 세척해야 했고 네블라이저를 사용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외에도 이동할  신발을 신기고 휠체어를 옮기는 일까지 매일 사소한 잡일들로 하루를 채웠다. 동생이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어 스스로 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일상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아직까지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가야 할 것도 많은  같다. 다들 하다 보면 요령이 늘 거라며 격려를 해주었지만 숙련자를 따라가려면  길이 멀다. 특히나 간병을 하면서도 음식을  챙겨 먹는 아주머니들을 경이로울 지경이었. 어떻게 전자레인지밖에 없는 병원 탕비실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하는 건지 놀라웠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제육볶음과 나물 반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역시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생활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병원을  집처럼 이용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나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생활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옥상에서 돗자리를 깔고 햇살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는   목표였다.


 오늘은 다행히 기저귀가 새지 않아서 어제처럼 병실을 들락날락거릴 일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마음 놓고 재활을 보낼 수 있어서 숨 돌릴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생의 재활시간을 활용해서 조금씩 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동생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온 신경을 간병에만 쏟아부어서 늘 긴장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집중을 할 일이 생기니 그 순간만큼은 긴장감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을 힘겹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병원에 있는 동안 자투리 시간에는 내가 즐기면서 할 일들을 찾으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몰라서 오전 재활을 끝내고 기저귀를 확인해 봤는데 대변과 소변이 뒤엉켜서 바지에 새기 직전이었다. 내가  이래로 양이 너무 많았다.  정도면 재활을 받을  무거웠겠다는 생각이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양에 경악을 하면서 닦고  닦아냈다. 냄새어찌나 독한지 병실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화장실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며 혀를 내두르시길래 기저귀를 갈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직까지는 감각이 둔하고 조절이 안 돼서 기저귀를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저귀의 지옥에서 벗어나게  것이라고 믿는다.


 저녁이 되어서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어찌나  웃던지 오늘 하루  가장 크게 웃은 시간인  같다.  덕분에 전화를 끊을 수가 없어서  팔만  빠질 뻔했다. 통화를 30분간 하는데 너무 즐거워 보여서 끊으라고  수가 없었다.  정도면 거치대를 하나 사던지 해야겠다.   만에 얼굴을 보는데 인사라도 해주라고 했더니 동생이 말을 기 위해 안간힘 썼다. 배에 힘을 주게 하고 누르면서 ‘안녕 시켰더니 내가 들은  중에서 가장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했다. 동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 간병인 아주머니가 커튼 사이로 튀어나와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며칠 전부터 병실 사람들끼리 동생이 아줌마라고 먼저 부를지, 이모라고 부를지 치킨내기를 하고 있었다. 동생을 볼 때마다 애타게 자기를 먼저 불러 보라며 애원을 했는데 그때는 입도 뻥긋 안 하더니 친구 앞에서는 입을 열었다. 확실히 자기 의지로 노력을 하려고 하니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도 열심히 말을 걸면서 입이 트이도록 만들고 있는데 조금 더 자극을 줘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동생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머리까지  받쳐주는 경추 휠체어에  태워서 다녔는데 이제는 머리 받침대를 빼고 다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티는 힘이 부족하기에 언제든 부착할  있게 받침대를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동생 스스로 목을 가누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받침대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을  같다. 두 발로 서서 버티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그전 같았으면 누군가 붙잡고 있어도 서있지를 못하고 주저앉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한 걸음씩 발을 움직일 정도로 버티고 있다. 고개를 정중앙 두는 시간도 늘어가고 눈빛도  또렷해지고 있다. 확실히 젊으니깐 회복속도가 빠른  같다.


 일상으로의 정상적인 복귀를 결정하는 시간이 이제는 3개월 정도 남았다. 뇌출혈 환자의 재활시기 골든 타임이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했으니 절반 정도 왔다. 3개월 안에 의식을 차리면 예후가 좋다고 말했는데 다행히 동생도 어느 정도 해당이 되었다.  기간 동안은 재활 훈련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회복이 될수록 재활의 횟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지금도 동생이 혼자 서있는 모습과 걸어 다니는 모습,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스스로 이를 닦는 모습을 항상 머릿속으로 그린다. 나의 상상이 실현이  때까지 슬기로운 병실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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