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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3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2-새로운 시작

2023년 5월 4일 목요일


 그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의욕이 불타올랐다. 최근 들어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온몸을 씻긴다. 용인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몸을 맨날 닦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생이 의식이 안 돌아왔을 때는 미동조차 없었지만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온 지금은 그래도 스스로 움직이려고 한다. 옷을 입힐 때면 팔, 다리를 들어주려고 한다거나 기저귀를 갈려고 돌아 눕힐 때면 자기도 힘을 줘서 예전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병실은 야구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우리 병실은 특이한 게 아주머니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전부 야구 광팬이다. 보통 아주머니들이 환장한다는 드라마를 트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야구를 할 때면 티비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 대기실로 나가보면 드라마를 본다고 항상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병실만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벌써 이곳으로 온 지도 3주가 넘었다. 이제는 병실 사람들과의 생활도 익숙해졌다. 여기는 확실히 공동체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여기에서 제일 오래 있었던 간병인 아주머니의 진두지휘 아래에 빨래가 해결되었다. 손빨래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세탁기를 사용할 예정이라서 빨래할 사람들은 같이 돌리자며 세탁 바구니에 두라고 했다. 나도 스리슬쩍 끼여서 빨래거리를 내놓았는데 어느새 보니 빨래까지 다 널려 있었다. 심지어 점심에는 직접 요리를 해서 병실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나눠주었다. 확실히 터줏대감은 남다른 것 같다.


 동생이 재활을 할 동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해야 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는 취미활동을 즐겼다. 늘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것을 실현시킬 순간이 온 듯하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시작할지 장담을 못하겠다. 그전까지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중단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하였다. 내가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는 알 수가 없지만 글과 그림은 취미로라도 평생 나와 함께 할 듯하다. 동생 덕분에 글은 이미 시작했고 이제는 그림이다.


 늘 동생에게만 얽매여만 있다가 내가 원하던 것을 하니 숨통이 트였다. 이제는 그만큼 나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옆에서 지켜야 할 것 같아서 재활 시간 내내 붙어있었고 병실에 있더라도 시선은 항상 동생에게서 뗄 수가 없었다. 동생은 자고 있더라도 항상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휴대폰을 했다. 동생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는 시간을 못 견뎠던 것 같다. 여유가 주어졌을 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죄책감과 불안이 몰려왔다. 동생이 자거나 재활을 받는 게 아니라면 마음 편히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동생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화를 걸고, 음악을 들려주고, 스트레칭을 해주고 뭐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괜히 아무것도 안 하고 옆에만 있으면 간병을 제대로 안 한다고 할까 봐 눈치가 보였다. 따지고 보면 아무도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망가져가는 걸 알면서도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한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 책임감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벗어나는 연습 중이다. 원래 모든 일은 3개월만 지나면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간병을 한지도 슬슬 2개월 차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게 더 쉬워질 일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늘은 재활시간에 기저귀가 샌 적이 없어서 너무 기뻤다. 그렇지만 오전 재활이 끝나고 나서 기저귀를 확인하기가 무섭기는 했다. 열어보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참담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심지어 재활을 받느라 9시부터 11시 40분까지는 기저귀를 갈 수가 없다 보니 묵혀놨던 소변과 배변량이 상당했다. 기저귀를 열어보니 역시나 어디서부터 닦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이불시트에 묻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닦았다. 무게를 재보니 기저귀까지 합쳐서 1킬로가 넘어갔다. 분명 먹는 건 똑같은데 배변량은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 인체의 신비는 놀랍다.


 동생은 요즘 의식이 점차 돌아오면서 감정기복이 심해진 것 같다. 어제는 사랑노래를 듣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재활을 잘 받다가도 갑자기 울먹이거나 나랑 잘 놀고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보이려고 한다. 나는 그런 순간일 때마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괜히 한 번 더 장난을 치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굴면 울음이 곧 터질 것 같다가도 다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제일 큰 변화는 콧줄을 만지다가 내가 보고 있는 게 느껴지면 눈치껏 손을 내린다. 빼면 손을 깨물어줄 거라고 협박을 했더니 말을 잘 듣는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는 게 체감이 되었다.


 저녁에는 동생의 복수전이 시작되었다. 동생이 슬며시  손을 잡더니 검지 하나만을 두고 다른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내려 갔다. 혹시나 싶어서 자기 입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설마  손가락을 깨물 거냐고 물으니 그저 웃기만 했다. 혹시 그전에 내가 깨물었다고 복수하는 거냐고 하니 모른 척하면서 자기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이건 아니 않냐면서 호들갑을 떠니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소리까지 내면서 웃어 보였다. 이제는 나랑 장난을  정도까지 되었다. 이제는 동생이 나를 괴롭히는  같다. 질문을 하면 대답정도는 해줄  있으면서 자꾸만 말을 아낀다. 그럴 때마다 굉장히 갑갑해하면서 대답을 듣기 위해  달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자기만   있는 무기를 자꾸 꺼내는  보니 상당히 지능적인 놈인  같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빠르게 퇴원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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