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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Sep 1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1 - 아이스크림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오늘은 한 달에 한번 소변 검사가 있는 날이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그전보다 실수가 덜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 전에 소변을 받기 위해서 끼워놓은 비닐 주머니를 보니 무사히 성공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무리 없이 소변 검사통에 옮겨 담고서 주어진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요즘 문제가 하나 있다면 병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시끄럽게 한다는 것이다. 자고 있는데 소란스러워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전 5시 30분이었다. 새벽에는 ‘아야’ 소리와 함께 앓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에는 수다를 떠는 말소리가 들린다. 진심으로 미칠 것 같지만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그저 참기만 할 뿐이다. 어르신들은 일찍 주무시고 기상을 하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계속 이러다가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첫 시간에 하는 재활에는 끝날 때쯤 걷기 연습을 시킨다. 옆에서 동생이 잘 걷는지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는 오른쪽 다리도 한 발자국씩 움직인다. 오른쪽 팔, 다리에 마비가 있어서 언제쯤 정상적으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조금이나마 움직이니 안심이 되었다. 지금보다 근육이 더 생기기 시작하면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전 재활이 끝나고는 쉬는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길을 걷다 보니 건너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보이길래 동생한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지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하니 딸기, 바나나, 초코맛이 섞인 토네이도를 말했다. 하지만 단종이 되었는지 아이스크림이 보이지 않길래 빵빠레로 타협을 봤다. 계산을 하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 주니 입가에 묻혀가면서 열심히 먹는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재활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치료사가 한참을 찾았다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알고 보니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서 쉬는 시간에 작업 치료 평가가 있는  깜박한 것이다. 평가는 여유가 있을  다시 받기로 해서 문제는 없었지만 평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랐다.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


 동생은 우려했던 것보다 죽도 잘 먹고 대변도 원활하게 나온다. 혹여나 먹는 게 바뀌면서 배변활동에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 중에는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관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상황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터라 더 불안했다. 동생은 관장을 안 해도 돼서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병실 안에서 관장을 하다 보니 맡기 싫어도 냄새가 난다. 그래서 병실 공기는 항상 탁하고 꿉꿉하다.


저녁에는 적으로 여유로워서 동생과 노닥거리면서 논다.  하고 놀고 싶은지 물었더니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동생이 아주 어렸을  했던 것들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에 기저귀를 벗어던진 이야기라던지 모르는 사람들의 다리를 만지고 있던 사건 같은 것들을 말이다. 정말 이렇게 보니 동생도 육아 난이도 최상이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집 밖을 나가면 기저귀의 위치로 쉽게 추적이 가능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길거리에 뿌려놓은 빵가루 마냥 거리 한복판에는 동생이 벗어던진 기저귀 바지가 놓여있었으니 말이다. 그걸 쫓아가면 짧은 다리로 멀리까지는 가지 못한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얘기를 들려주니 기억이 나는 건지 어이없는 건지 그저 웃기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3살 정도였던 동생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그건 바로 모르는 사람들의 다리를 만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리라고 해서 무조건 만지는 게 아니다. 맨다리나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만지는데 보통은 전부 젊은 언니들이었다. 동생이 다리만 봤다고 하면 갑자기 쏜살같이 달려가서 매미처럼 찰싹 붙는다. 그러면 갑작스러운 터치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웬 땅콩 같은 꼬마애가 다리를 만지고 있으니 황당해하면서도 웃으며 넘어간다. 그러면 엄마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리에서 동생을 떼어놓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이상한 애다.


 또한 잭과 콩나무, 신데렐라, 백설공주, 흥부와 놀부, 피노키오와 같은 우솝 동화를 들려주면서 내용을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인 것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아주머니들이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주인 없는 수제 요거트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처리를 할지 의논을 한다. 결론은 버리기 아까우니 나눠 먹자며 종이컵에 배분을 하면서 나눠주는데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냉장고에 언제부터 들어있었는지도 모를뿐더러 찝찝해서 먹기 싫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아주 잘 드시는 걸 보니 그저 신기했다.


 이렇게 평온한 듯 시끌벅적한 듯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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