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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3 - 동생이 잠든 사이에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어김없이 금요일 아침이 되면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얼마나 좋아졌을까, 교수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는지에 대한 기대 반 두려움 반과 함께 거리를 나선다. 이제는 용인까지 가는 길이 제법 익숙해졌다. 병원 가는 길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중환자실에서 동생의 얼굴을 보고 나온 엄마의 표정은 항상 좋지 않다. 아들이 호전이 되고 있다는 말에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을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오늘은 나의 눈을 맞추고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중환자실을 들어가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아직까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금요일은 엄마가 면회하는 날이다. 오늘은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전이랑 똑같다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엄마와 나는 동생이 조금 더 쉬고 싶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담당 교수님은 수술 중이셔서 1-2시간을 기다려야 면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했고 병원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기로 했다.


 입맛은 없지만 체력을 유지하려면 먹어야 한다. 나는 막국수 엄마는 들깨옹심이를 시켰다. 그런데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우리가 앉아있는 옆 테이블에 일행과 함께 자리 잡았다. 병원복을 입고 있는 것 보니 입원한 환자였다. 애석하게도 그 사람들은 식당 안에서 먹지 못하게 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식당에서는 취식이 불가능하고 포장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포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어쩌면 내 동생도 일어나면 이 식당에서는 함께 못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같이 못 먹어도 포장하면 되니까 건강하게 일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한 30분 뒤면 교수님의 수술이 끝날 것 같단다. 그 말을 듣고 조금 더 여유롭게 먹고 있었는데 2분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서 교수님 수술이 끝났다며 지금 올라올 수 있냐고 물었다. 뭐 어쩌겠나 남은 만두 2개를 재빠르게 입안으로 우걱우걱 쑤셔 넣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면담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 보니 교수님은 또 다른 보호자랑 이야기 중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한 수술 환자의 보호자들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모를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문 밖에서 우리 차례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면담이 벌써 끝났는지 문 밖을 나왔다.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어 엄마와 나는 조심스럽게 면담실로 들어갔다. 이 순간이 제일 긴장된다. 의자에 앉아있는 교수님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려야 하는 그 짧은 순간은 시험 합격 발표보다 나를 더 떨리게 만들었다.


  동생의 상태를 들어보니 다행히 내시경을 했을 때 출혈 부위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폐도 깨끗하고 CT상으론 뇌 손상 부위도 호전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찍히지 않은 손상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추후에 검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겨버렸다. 동생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오늘부로 정확히 3주가 되었고 동생의 기관지에는  20cm짜리 튜브가 연결되어 있다. 원래 2주 정도가 되면 튜브를 제거하고 목을 절개하여 호스를 꽂는다고 한다. 그런데 동생은 젊기도 하고 자가호흡이 돌아오고 있어서 웬만하면 목에 구멍을 뚫지 않고 자가호흡이 완전히 돌아오기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가호흡이 더뎌져서 불가피하게 기관절개술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3주간 식도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대로 계속 두면 기관지가 헐게 되므로 더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교수님은 딱 일주일정도만 더 경과를 지켜보다가 그때도 자가호흡이 힘들면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환자 입장에서는 절개를 해서 목에 호스를 바로 연결하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20대라 목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조금 욕심을 냈다고 말을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이것저것 물었다. 자가호흡이 완전히 돌아와 목에 연결한 호스를 빼게 되면 상처는 조금 남을 수 있지만 목소리는 돌아온다고 하였다. 제발 목에 구멍이 나기 전에 자가호흡이 돌아왔으면 했다. 잘하고 있는데 조금만 더 빠르게 회복을 하면 좋겠다. 머리에도 상처를 냈는데 목까지 상처를 내면 안 되지 않은가. 우선 다음 주 금요일에는 수술이 있어 면담이 불가능하니 화요일에 CT를 한번 더 찍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고 하였다. 나중에 동생이 일어나서 자기 몸에 있는 수술자국을 본다면 싫어할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 상상을 하니 심란해졌다. 아무리 더 쉬고 싶어도 그렇지 폐도 건강하고 뇌도 회복하고 있는데 자가호흡은 왜 이렇게 안 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다음 면회 때 만나면 당장 숨부터 잘 쉬어야 한다고 말해야겠다. 일주일 안에 숨을 안 쉬면 네 목에 호스가 연결될 거라고 겁을 줘야겠다.


 4시간 밖에 못 자서 그런지 버스 안에서 열심히 졸았다. 애매하게 자니깐 더 피곤하다. 수원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버스 안에서 졸아서 그런지 잠은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하기에는 지쳤다. 면회 날이 되면 사람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됐냐는 연락이 온다. 이제는 그 연락에 대답을 하기가 곤란해진다. 동생이 처음보다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뚜렷한 변화라고 말할 무언가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나는 동생이 예전보다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답밖에 하지 못했다. 당장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항상 똑같다는 말을 전하는 게 슬슬 부담이 됐다. 하루하루가 늘어갈수록 속은 타들어 가는데 여전히 나는 같은 대답 밖에 하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주변에 누군가가 다치게 되어 그에 따른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당사자에게 너무 무심하게 대하는 건 서운하고 너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적당한 중간지점을 찾는 게 참으로 어렵다. 엄마랑 나는 각자에게 오는 부담감을 견디면서 지금 이 상황을 버터내야 한다. 우리 모녀만의 농담이 있다.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반백살이 되기도 전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냐며 농담조로 하소연을 시작한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그러게 말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내 나이 겨우 반 오십을 넘었는데 이게 뭐냐면서 되받아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한번 해보자는 거냐며 나는 결혼하고 애를 낳았는데 남편도 잃고, 자식은 아파서 이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엄마가 20대에 아빠를 잃어봤냐, 형제가 아파서 이러고 있어 봤냐며 이야기한다. 나는 결혼을 안 해봐서 남편이 죽고, 자식이 아픈 것까진 아직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이라는 생각도 하기 싫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 나는 견딜 수가 있을까. 더 이상은 누군가를 잃거나,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 이런 상황이 되니 또 다른 슬픔을 겪지 않으려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아 인간관계가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모른 채 외롭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나를 두렵게 할 만한 발단의 여지조차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에게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확신이 서지 않아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래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처럼 다소 방해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죽음이 두려워서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가는 행복과 추억까지 포기하기엔 인생이 너무 많이 남았다. 혼자 외로워하면 살아가기엔 너무 아깝다. 어찌 됐든 세상에 태어났기에 사람들과 떨어져서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속세를 벗어나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한번 끝까지 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20대가 참 파란만장하다. 세상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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