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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1 - 연애에 대한 의문

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오늘은 잠시 동생 생각을 접어둔 날


 남자친구랑 2주 만에 만나는 날이다. 원래도 만나는 날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엔 더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화, 금에는 면회가 있고 토, 일은 엄마와 함께 주말을 보낸다. 만난다면 평일 월, 수, 목 정도에 가능한데 그것조차 각자의 스케줄이 있어서 함께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만나고는 있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헤어질 순 없지 않은가. 오늘은 혜화로 가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연극 시간은 3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닭꼬치집이 보였다. 오빠는 거기에 꽂혔는지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렸다. 결국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연극 티켓을 미리 발권한 후 닭꼬치를 사 먹으러 갔다. 칠칠맞은 나는 먹으면서 양념을 몇 번이나 옷에 흘렸는지 모르겠다. 내 모습을 보더니 왜 이렇게 흘리냐며 무심한 듯하면서도 다정하게 닦아주었다. 평소엔 전화도 안 하고 같은 동네에 있으면서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또 이렇게 챙겨주는 걸 보면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옷에 묻은 양념을 신경 쓰고 있으니 근처 카페로 가서 음료를 주문시켜 주며 얼른 화장실로 가라고 했다. 뭐 흔히 연인들끼리 하는 데이트를 하고 있으니 연극 시간이 다가왔다. 연극은 ‘한 뼘 사이’. 한 뼘이면 엄지손가락 끝에서부터 새끼손가락 끝까지의 거리라고 하는데 지금 남자친구와 마음의 거리는 그것보다 멀게 느껴졌다. 공연 장소는 협소하고 우리는 무대에서 3번째 줄에 위치했다. 좁은 공간이기도 했는데 심지어 출입문 바로 앞이라 좌석이 굉장히 불편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자세는 불편했지만 그래도 서로 맞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우리가 맞닿은 거리는 한 뼘보다 가까운 게 분명한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연극에 나오는 저 주인공들이 우리보다 더 친밀한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씁쓸했다. 서로가 끌려서 못 놓고 있는 건 맞는데 이상하게도 진심이 잘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해야 하나.


 연극이 끝나고 국숫집을 찾아 같이 걷는 거리. 불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뒤늦게 사춘기라도 찾아온 건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또 한 번 겪고 있다. 깊은 대화가 아니라 피상적인 대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키되 선을 넘지 않으려는 태도 딱 거기까지다. 가까운 사이끼리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나 행동까지도 남자친구 앞에서는 편하게 나오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닥친 힘든 상황으로 상대방에게 의지도 하고 싶고 투정도 부리고 싶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터놓을 수가 없다.


 나랑 모든 것이 정반대라고 느껴지는 사람. 그래서 시작 전부터 이 연애가 힘들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서로의 연애관이 너무나도 달라서 난관에 봉착하였지만 그래도 맞춰보려고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 상황만으로도 벅찬데 연애까지 어렵게 하고 싶지 않다. 둘 중에 하나는 조금 쉽게 가도 되지 않을까. 둘 다 어려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같이 있으면서 손을 잡고 있어도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식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은 나와 그 사람. 정확하게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생각해서 하는 배려들이 정작 상대방에게는 배려로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들이 하나같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바꿀 수 없는 것들, 서로에게 기대지도 못하는 관계. 도대체 언제쯤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만났을 때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거고 만나지 않을 때도 사소한 관심정도는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평소에는 같은 동네에 살지만 마치 장거리 연애처럼 약속을 잡아야만 만날 수 있고 상대방이 전화하는 것을 싫어해서 연락도 잘 안 되는데 막상 만나면 잘해주는 상황이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받아들이기가 버겁다. 이 관계를 유지하려면 나는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않고 외롭지 않은 척, 서운하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을 하며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친구를 향한 감정까지 무뎌지며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을 못하고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연락을 애써 참아가며 연애를 하는 중이다. 원래라면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전화하고 싶을 때 연락하고 마음만큼은 앞 뒤 상황 안 따지고 드러내는 게 사랑 아닌가.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랑은 이런 것이다. 연애가 원래 이렇게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나.


 상대방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나는 정작 그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나는 말보다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말뿐인 사랑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좋아하면 행동으로, 그 사람은 좋아하면 말로. 이렇듯 표현 방식조차 다른데 과연 서로의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는 게 맞을까. 연락을 하면서 마음을 서서히 키워가는 나와 연락이 없어도 마음만으로 충분하다는 그 사람과의 간극은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과제와도 같다. 제대로 된 표현을 하지 않는데 마음만으로 어떻게 사랑이 느껴지는 건지 그 의문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데이트가 끝날 때마다 우리의 관계를 고민해 본다. 내 머릿속은 복잡한데 내일은 시험이 있다. 마음껏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이러한 잡념을 떠올리지 않게 위해 노력했다. 시험을 치고 나서 고민해 봐도 될 문제니 깐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억지로 밀어놓고 지금은 당장 급한 일부터 했다. 원래 시험 전날 밖에 안 나가는데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늘 밖에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데이트를 했다. 논다고 하루를 날렸으니 밤을 새워서라도 벼락치기를 해야 한다. 책을 펼치니 아직 풀지 않는 기출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였는데 요즘따라 안 하던 짓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사실 나의 이런 변화된 모습이 달갑지 만은 않다. 그래도 일단 생각을 접어두고 남은 시간동안 할 수 있을 만큼만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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