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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4 -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요즘에는 밤낮 수면 패턴이 뒤바뀌어 버렸다. 나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눈을 떠있고, 남들이 눈을 뜨는 시간에 눈을 감는다. 어젯밤 나보다 일찍이 잠에 들었던 엄마는 오전에 일어나서 자고 있는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다 점심쯤이 되면 엄마는 슬슬 언제까지 잘 거냐라는 말을 하며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어차피 여기서 할 것도 없고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내 눈치 보지 말고 엄마 할 일을 하라고 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투정을 부렸다. 엄마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지만 막상 그 말을 듣고 눈을 떠도 할 게 없었다. 사실 찾아보면 할 건 많지만 모든 게 귀찮아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동생집에 머무를 때마다 해야 할 것들을 챙겨 와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할 만큼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다.  


 솔직히 지금은 무엇을 하더라도 호기심과 의욕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건 동생인데 나 또한 마찬가지로 동생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누워서 지낸다. 밖을 나가지도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엄마와 단둘이 영화만 주야장천 볼뿐이었다. 현실의 도피처로는 영화만 한 게 없다. 영화 몇 편에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우리의 현실이 이러니 너무 슬픈 것도, 울적해지는 것도 제외하고 갖가지의 이유를 붙이며 이 장르 저 장르를 다 빼다 보니 잔잔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주는 영화들만 남게 되었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을 다시 봤다. 나는 보통 봤던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는다. 항상 새로운 영화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또 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봤던 영화를 또 볼 때면 문득 아빠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봤던 영화를 또 보는 아빠한테 이미 봤던 건데 왜 계속 같은 것만 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말에 아빠는 영화가 참 신기한 게 같은 걸 봐도 늘 새롭게 보인다고 했다. 1편, 2편을 보고 여러 편을 다시 보다 보면 같은 장면이라도 그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게 되는 재미가 있다고 했었다. 그때는 아는 내용을 또 보는 건 지루하다고만 생각했었기에 아빠의 말이 이해되지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 꽂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하는 말들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말도 아니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한 말이 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잠시 접어두고 영화에 집중했다 거의 14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인 것 같다. 희망적인 교훈을 주는 영화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이 영화를 보며 의지를 다졌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나도 한 때는 찬란한 미래를 그렸었는데 지금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잘하고 있는지 흔들리기만 했다. 자신감을 잃어가던 이 순간 옛날에 봤던 영화를 보며 꺼져가던 희망을 건져 올렸다. 그렇다고 믿었다. 어쩌면 아빠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 같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들이 올라왔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추억회상도 가지고 조그마한 희망을 얻긴 했지만 감동만 받고 끝내면 제자리걸음일 것 같았다. 말이 영화감상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언가를 안 하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아서 허구의 이야기 속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현실에서 써 내려가고 있는 이야기는 내팽개친 채로 말이다.


 영화만 보다 보니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낭비하는 것 같아서 동생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들었다. 정유정 소설은 듣기만 했었지 직접 읽는 건 처음이었다. '완전한 행복' 내 용도 모르고 책을 펼쳤다. 그냥 제목에 이끌렸다. 그런데 도입부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떤 사건도 떠오르면서 또 한 가지가 생각났다. 동생의 전공이 범죄심리학 과목과 연관된 거였다는 것을 말이다.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읽었다. 몇 장을 읽다 보니 고유정 사건을 어떤 식의 허구로 풀어냈는지 궁금했다. 내 성격상 재미있든 재미없든 한번 보면 끝을 내야 한다. 다행히 흥미로워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나도 행복하기 위해선 불행의 요소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는데. 아, 물론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건 아니다. 나에게 불행을 초래할 것들을 애초에 선택 사항에서부터 배제했을 뿐 그 불행 자체를 부정하면서 없애야 할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꺼내든 책이었는데 찝찝함만 남았다. 완전한 행복이라 그게 존재를 하긴 할까 싶다. 행복이란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모호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주관적인 해석이 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 중 지금 이 감정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지금은 행복을 느끼기엔 현실이 너무 버겁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리란 것을 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그게 잘못은 아니니깐 더 큰 행복을 찾기 위해 잠시 방황기를 거쳐 가는 중이라고 생각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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