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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3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1 - 분노의 봄

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오늘은 엄마가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며 나가자고 했다. 엄마 입에서 어딘가를 가자고 하는 말은 오랜만에 들은 것 같다. 그만큼 속이 갑갑하다는 뜻일 것이다. 잠을 얼마 못 자서 귀찮은 마음에 한참을 뭉그적거리며 외출 준비를 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와 길을 걷다가 동생 면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일반병동에는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고 PCR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72시간 내로 나온 결과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동생을 돌봐줄 간병인이 따로 있기에 가족이 면회를 하려면 간병인과 교대를 해서 병실로 들어가야 했다. 심지어 상주하는 보호자는 외출을 하면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고 들어와야 해서 병원 밖을 나갈 수도 없다. 면회를 하기 위해서 PCR 검사를 하는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주말에는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월요일에는 면회를 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리고 유효기간은 3일. 동생을 만나려면 병원에 갈 때마다 매번 검사를 받고 가야 했다. 하물며 신속항원키트로 나온 음성 결과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건 뭐 중환자실 면회보다 더 까다롭다. 생각보다 번거로운 절차에 짜증이 올라왔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지금 당장은 검사를 받을 수가 없어서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엄마와 식당을 찾기 위해 한참을 걸었는데 마땅한 곳이 안 보인다. 동생 집 근처에 원래 밥집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우리가 못 찾는 건지 먹을만한 게 없다. 그렇게 겨우 찾아낸 식당마저 웨이팅을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우선 만약을 대비해 연락처는 남겨놓고 다른 곳을 둘러봤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보았다. 입구를 보니 어두컴컴한 게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 휴무란다. 또 다른 곳을 검색해 보니 걸어서 20분이 걸린다. 이것도 딱히 좋은 대안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아서 엄마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어보니 참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길거리를 하염없이 떠돌다 식당 찾기를 포기하고 처음에 갔던 곳에서 40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건 한 팀이었지만 대기자가 몇 팀이나 더 있을지 모른다. 사장님이 대기 명단자들에게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대기를 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취소를 하여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더 오래 기다린 것 같다. 주문이 밀려서 우리가 시킨 메뉴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주문하 음식이 나오기 전에 엄마와 면회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면서 감정이 상했다. 어제 간호사에게 면회에 대한 설명을 들은 건 엄마면서 자꾸 나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병원 사이트를 찾아봤는데 인터넷에 공지되어 있는 정보와 엄마에게 들은 내용이 달라서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계속 같은 질문은 여러 번 하면서 나에게 한번 찾아보라고 재촉을 하길래 엄마가 병원에 전화를 해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짜증을 냈다. 본인이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일도 나에게 시키는 것이 화가 났다. 요즘에는 보건소에서 입원 확인서가 없거나 우선 대상자가 아니어도 검사를 무료로 해주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답답했다. 이쯤 되니 금요일에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 미리 검사를 받거나 입원확인서를 발급했어야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이래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하나보다. 나는 그것까지 고려하지 못하고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났다. 나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화부터 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서로 아무 말없이 밥만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밥을 먹고 병원에 전화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더 화를 내고 있으면 나만 손해란 생각에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가 엄마랑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다 황당해하며 웃었다. 나도 거기에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면서 엄마와의 다툼은 1시간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언제 다퉜냐는 듯 자연스럽게 풀어지며 다시 머리를 맞댔다.


 밥을 먹고 나오니 식당 근처에 조그마한 공원이 보였다. 일단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엄마한테는 메모를 부탁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매뉴얼의 통일이 제대로 안 이루어졌는지 부서별로 다른 말을 한다. 갑자기 면회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에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어제 엄마가 들었을 때는 가족은 시간 상관없이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전화를 하니 코로나라서 면회가 안 된다고 말한다. 어제 간호사에게 들었던 말과 다르다고 하니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새로 연결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코로나 검사를 받은 보호자에 한해서 1명씩만 간병하는 보호자와 교대를 통해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의문점이 많아서 이것저것 물었다. 당일 하루만 교대가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가족간병으로 변경할 때만 교대가 가능한 것인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면회시간의 사실여부와 코로나 음성 확인서에 대한 질문을 하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또 다른 담당자를 연결해 주었다. 전화를 했는데도 제대로 된 확답을 주지 않아서 열이 올라왔다.


 결론은 검사를 한 날부터 3일 이내인 코로나 음성 확인지가 있어야 하고, 병실에는 1명만 들어갈 수 있으니 만약 면회를 하게 된다면 간병인과 잠시 교대를 하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간병인도 병원 밖으로 나가면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기에 병원 내부에만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면 8시간 후에 결과가 나오고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직원이 아마도 오후 3시까지라고 말하면서 확신은 하지 못했다. 이건 뭐 그냥 면회를 오지 말란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차라리 중환자실로 다시 가는 게 면회가 더 수월할 것 같다. 물론 동생이 위급해져서 중환자실로 다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가는 거로 말이다. 오히려 일반병동으로 옮기니 동생을 만나기가 더 번거로워졌다. 만나러 갈 때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간병인과 교대를 해야 한다. 1명만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가족이면 부모님을 시작으로 최소 2명까지는 들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병원에 있는 모든 의료진도 출퇴근을 하면서 병원 밖을 나갔다 들어오는데 보호자는 올 때마다 코로나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조심해야 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화를 삭이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걷고 또 걷고 화성 성곽을 열심히 걸었다.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아직도 겨울인 줄 알았는데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나뭇가지에 꽃이 피어 있었다. 동생한테 봄이 왔다는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나중에 만나면 보여줘야겠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저녁에 먹을 반찬과 국, 딸기를 사들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괜히 애꿎은 넷플릭스만 들락날락거렸다. 엄마가 희망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뒤적거리다가 ‘천국에 다녀온 소년’을 보게 되었다. 아마 내 동생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새로운 세상을 여행 중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니?


영화가 끝나고 잠시 잠이 들었다. 엄마는 또 자냐며 이러니깐 밤낮이 바뀌는 거 아니냐고 한마디를 했다. 하지만 피곤한 나머지 엄마의 말소리가 귓등으로도 안 들렸다. 잠에서 깨니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한다. 밥 먹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배는 안 고팠지만 말 그대로 의무적으로 먹었다. 엄마는 요즘 다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빠진 것 같다. 벌써 3번째 시청 중이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드냐고 물으니 따뜻하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하였다. 드라마만 보고 있는 엄마에게 어차피 나랑 놀지도 않을 거면서 아까는 왜 깨웠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고 있으면 외롭다고 했다. 혼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내가 동생을 간병하러 들어가면 서울에 엄마 혼자 있다가 찾아가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막막하다며 투정을 부렸다. 엄마의 불안을 알지만 공감해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엄마의 투정까지 받아주자니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그저 이겨내야만 하는 문제라고 하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 예쁘게 말해야 되는 걸 알면서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안 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말이다. 짜증을 내고 나서는 항상 죄책감이 느껴져서 더 괴로웠다. 항상 짜증만 내는 못된 딸이라 엄마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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