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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0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2 - 마음의 준비

2023년 3월 5일 일요일


 이제는 수원역으로 가는 길이 익숙해졌다. 저번주와 똑같이 역에서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내 생활 패턴은 단조롭다. 화요일에는 면회하러 병원에 가고, 목요일 저녁에는 서울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간다. 금요일에는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가서 면회를 기다렸다가 수원에 있는 동생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엄마와 수원역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 인생을 살면서 기차역을 이 정도로 자주 간 건 처음이지 싶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점차 이러한 생활이 익숙해져 갈 때쯤 내 미래에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것을 예고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멍하니 앉아 고민했다. 2주 후면 내가 동생 간병을 하게 된다. 일단 간병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과연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동생한테 노래를 들려줄까, 이야기를 해줄까, 영상을 보여줄까. 체위 변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대변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서 눈앞이 막막해졌다. 태교 하는 것처럼 해주면 될까, 신생아를 돌보듯이 대하면 될까.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겠다. 미리 예행 연습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물론 몸집이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몇 년 전에 할머니 간병을 일주일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할머니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동생의 경우는 아예 움직일 수 없는 경우라서 더 난감했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간병을 하기엔 완전히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12시가 조금 넘어서 서울에 도착했다. 우선은 집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며칠간 집을 비워놨다고 아주 엉망이다. 일단 밥을 먹으며 친구와 전화를 했다. 친구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수시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오늘은 내 목소리를 듣고 저번주는 다 죽어가더니 오늘은 괜찮아 보인다며 안심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더 좋을 테지만 자주 보기가 쉽지 않아 전화로나마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중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제야 내가 해야 할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나의 현실이다.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었다. 먹고 나면 바로 치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꼼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누워있으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대로 자면 그대로 다음 날까지 잘 것 같아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해는 져있었다. 그때부터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집이 좁아서 생각보다 금방 치울 수 있었다. 청소를 하다 보니 내 눈에 제일 크게 거슬리는 게 행거였다. 그놈의 행거.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집주인이 배관 문제 때문에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그때 행거를 건드렸다가 내가 걸어놨던 옷 순서와 다르게 해 놓아서 다시 정리하겠다고 한 게 벌써 한 달짼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물론 가만히 내버려 둬도 문제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 든다. 간병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정리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내일의 나에게 또 미뤘다.    

 나머지 집 정리를 끝내놓고 간병에 필요한 것을 숙지했다. 유튜브로 가래 석션하는 법과 체위를 변경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자세를 바꾸다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생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영상에 집중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찾아봤다. 체위 변경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고 한다. 2시간마다 자세를 바꾸려면 정말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도 많이 요구될 것이다. 180cm 거구를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설마 나 혼자 하겠냐는 생각에 걱정을 덮어 두었다. 특히나 의식이 없는 환자는 불편함을 표현할 수 없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많았다. 그래도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내가 해야지. 성공적인 간병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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