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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2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29 - 돈과 행복

2023년 3월 2일 목요일


 오늘은 취업 박람회를 방문했다. 채용 공고 게시대에는 각 분야별 지원자격이 적혀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채용 설명회와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강연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만 빼고 전부 취업을 하기 위해 진심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지원자격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만 시대를 역행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생각이나 준비를 해본 적도 없다. 나와는 갈 길이 달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남들만큼 노력하며 살았을까. 물론 내 분야에 올인을 하긴 했지만 일반적인 채용시장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땐 터무니도 없었다. 남들처럼 스펙을 쌓기 위한 노력을 했었는지 생각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요구하는 어학점수나 대외활동과 같은 스펙을 쌓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피하고 싶어서 예체능 계열을 선택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남들이 하는 걸 준비해 본 적도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의 부족함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였다.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물론 남들처럼 살 필요도 없지만 괜히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는 날이 있지 않은가. 바로 오늘이 그렇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 학창 시절에 미친 듯이 공부를 해보지 않는 것을 말이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뭐 어쩔까 싶다. 어차피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마음가짐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냥 오늘따라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지 고민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 저녁이면 항상 엄마가 온다. 기차가 올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일주일 만에 본 엄마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느껴졌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는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 깊은 수심의 원인은 역시나 ‘돈’이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입원으로 이미 큰 금액이 나갔는데 앞으로 이런 상황이 얼마동안 지속될지 알 길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내 감정을 달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엄마한테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만 달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에는 눈앞의 현실이 엄마를 가로막았다. 돈이 없으면 가족을 지킬 수 없으니 말이다. 이게 현실이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을 지켜내기 어렵다. 이미 어릴 적부터 깨달았던 현실이었다. 엄마는 보험문제부터 앞으로의 간병비까지 동생을 간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이 막중했다. 아마 내가 경제적인 것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벌써 돌아버렸을 거다. 엄마에게 보험 이야기를 듣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사회경험이 더 필요한 풋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낙관적인 생각만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간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마냥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게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가 느끼고 있을 책임이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이 안 된다. 그 책임을 나와 나눠 가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지 못하는 힘없는 딸이라 괜히 마음이 씁쓸해진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는 피곤한지 바로 잠이 들었다. 일주일마다 한 번씩 서울에 왔으니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엄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글을 쓰는 중이다. 그전에도 쓰고 있는데 보려고 다가오길래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비밀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괜히 다락방에 몰래 숨겨놓은 일기장을 들키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엄마가 깰까 봐 눈치를 보며 글쓰기에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잠꼬대를 한다. 뜬금없이 엄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지가 대신 댓글 달았나?”

 엄마가 무슨 꿈을 꾸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내가 댓글을 달고 있을 때라서 흠칫했다. 순간 내가 뭘 하는지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자다가 잠깐 깨어난 엄마에게 혹시 뭘 봤냐고 물었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체이탈이라도 경험한 줄 알았다. 그렇게 엄마는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몸은 피곤했지만 생각 정리가 필요해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오늘도 새벽 동이 트는 걸 확인하고 잠이 들 것 같은 예감이다. 나는 이렇게 돈 대신 피로를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벼락부자를 꿈꾸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의 돈을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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