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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0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4 -  가족들의 목소리

2023년 3월 7일 화요일


 오늘은 동생을 보러 가기 전 코로나 검사를 했던 병원에 들러 음성확인서를 찾고 손해사정사도 만나야 했다. 동생이 다녔던 체육관은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보험 접수를 요청했었다. 사고에 대한 조사를 위해 대면을 해야 하는데 내가 서울에 있었기에 엄마를 대신하여 손해사정사를 만나 설명을 했다. 우선은 2시에서 2시 반쯤 지하철역 카페에 서 만나기로 하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다는 보험사의 연락을 받았다. 당겨진 약속시간에 맞춰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역 근처 카페에 있다는 전화를 받고 가보니 많은 서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동의서를 작성하고 진단명과 사고의 원인과 같은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하며 모든 정보를 제공하였다. 최대한 아는 내용을 말한다고 했는데 객관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진술해야 했기에 혹시나 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별로 긴장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막상 동생의 신상을 적으라고 하니 손이 떨려서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져 본가 주소와 동생 주민등록번호까지 헷갈렸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을 짜내서 빠짐없이 이야기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40분 동안 진술하고 서류를 작성하느라 주문한 음료는 마시지도 못했다. 손해사정사는 빠른 시일 내에 동생의 의식이 회복하길 바란다며 다음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났고 나는 그제야 주문한 것을 한 모금 마실 수 있었다.


 카페에 홀로 앉아 내가 이야기를 잘한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동생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건 그다지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보험을 청구하려면 사고에 대한 자세한 경위가 필요하니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전부 꺼내야 했다. 보험사와 만나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로 마주하는 건 아니니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한 현실에 염증이 느껴졌다. 속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잠시 앉아있다가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음성확인서를 찾으러 갔다. 검사를 진행한 병원에 들러 확인서를 찾고 곧바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미 버스가 떠난 직후라 다음 배차까지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고 버스가 도착했다. 항상 평일 오전에 버스를 타서 몰랐는데 오후에 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지나쳐 뒷좌석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서는 잠을 자려고 눈을 감긴 했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동생이 쓸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해서 약국에 들러 구매하고 간병인에게 전화를 했다. 때마침 동생과 재활 치료실에 있다고 해서 지하로 내려오라고 하였다. 지하 1층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어디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했다. 표지판을 따라 복도 끝까지 걷다 보니 재활 치료실이라고 쓰인 팻말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입구를 들어서보니 바로 앞에 동생을 실은 침대가 있다. 조금 전에 재활치료가 끝났는지 이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니 피식하고 웃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날 간호사들이 축하를 해주니 웃었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진짜 웃는다.


“야, 너 웃는 거야? 내가 온 걸 알아보고 있구나? 이 자식.”


 동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동생은 내 손을 꽉 쥔 채로 놓지 않았다. 마치 내가 왔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같았다. 일단 이동을 해야 해서 꽉 잡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실로 가보니 며칠 만에 입원한 환자가 늘어 있었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동생을 자세히 보니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왜소하게 말라버린 동생의 몸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래도 옆에 서서 조잘거리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을까. 동생은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입을 오물거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주 작게 목구멍에서 나오는 ‘어’라는 소리만 들렸다. 심지어 킥보드를 압수해 버린다는 말에는 웃기까지 했다.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 상태면 곧 돌아올 것 같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는 전화도 불가능했고 사진이나 영상촬영도 금지시켰었는데 지금은 일반병동이니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동생의 소식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렸던 할머니한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말을 하진 못하지만 목소리는 듣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라며 동생에게 잘 들릴 수 있도록 귓가에 폰을 가져다 댔다.


“경오야, 내 말 들리나? 말을 아직 못 하나?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


할머니가 손주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동생이 눈을 계속 깜박거렸다.


“할머니 목소리에 계속 눈을 깜박인다. 계속 이야기해 봐.”

“눈을 계속 깜박거리더나? 이놈아 가족을 놔두고 그렇게 계속 누워있으면 어쩌냐.”


할머니가 울먹이며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다. 동생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왼쪽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의식은 없지만 분명히 듣고 있다.


“할머니가 우니깐 경오도 울잖아.”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다. 경오야 힘들제? 누워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노. 이놈의 손아, 가족들이 전부 네 걱정하고 있다. 네가 우리 집의 기둥이다. 이놈아. 울지 말고 있어. 마음 단단히 먹고 일어나야지 울지 마. ”


울지 말라는 단호한 할머니의 말에 동생이 피식 웃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다 놀라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할머니 이경오 웃었어. 할머니 말에 지금 웃는다.”

“그래? 지금도 웃고 있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갑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경오야 퍼뜩 정신 차리라”


 할머니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번엔 할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했다.


“할아버지 목소리는 듣고 있으니깐 말하면 돼.”


내 말에 할아버지는 다른 말 없이 손주의 이름만 외쳤다.


“경오야, 경오야.”


동생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또 웃었다.


“할아버지 목소리 듣고 웃는다.”

“그래, 정신이 돌아오네. 잘하고 있다.”


 짧은 통화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동생한테도 가족들의 진심이 전해졌을 거다. 동생의 대답을 들을 순 없었지만 전화에 반응을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 뒤로도 그리웠을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한테는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니 동생이 또 웃었다. 엄마는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느껴졌는지 동생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동생은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엄마와 눈을 마주치려는 듯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도 그걸 느낀 것 같다.


“우리 아들, 이제 엄마랑 눈도 마주치네. 잘하고 있어. 우리 울지 말고 조금만 더 버티자. 엄마도 안 울고 잘 버텨볼 테니깐. 우리 가족은 할 수 있을 거야. 셋이서 여행 가기로 약속했잖아. 얼른 일어나서 강원도도 가고 대만도 가자. 힘내자. 그래도 잘하고 있으니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있어. 엄마가 토요일에 아들 보러 갈게.”


 엄마와 전화가 끝나고 나서는 삼촌과 숙모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은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었다. 가족들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이제 교수님과의 면담이 있다. 검사 결과는 어제 전화했던 내용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뇌파검사를 해보니 오른쪽 뇌는 손상이 있고 왼쪽은 손상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 뇌경색이 일어난 부위는 회복될 가능성이 있냐 물으니 한번 손상된 신경을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재활을 통해 손상되지 않은 부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상태가 전보다 괜찮아지고 있으며 표정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재활을 했을 때 치료도 잘 견디는 것 같아 재활치료 시간을 더 늘린다고 했다. 동생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동생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내 목소리를 듣다 지쳤는지 잠이 들었다. 재활치료도 받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전화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콧줄을 통해 영양식을 넣는 방법도 어깨너머로 배웠다. 콧줄식사가 잘 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자고 있는 동생을 두고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을 나서니 불그스름하면서 밝고 큰 달이 눈에 보였다. 그 풍경이 왠지 모르게 희망적으로 다가와서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실물만큼 멋지진 않았다. 잘 찍어서 동생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의 형편없는 사진 실력이 아쉬웠다. 그래도 괜찮아지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곧 일어나서 말도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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