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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0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5 - 공감의 힘

2023년 3월 8일 수요일


 2월에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3월은 현실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엄마의 외삼촌. 나랑은 촌수로 4촌이고 호칭은 외외종조부 또는 외외종할아버지러 불러야 하지만 보통은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라고 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보험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CCTV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동생의 일도 일종의 사고라면서 경찰서에 신고를 해서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한다며 번거롭겠지만 동생과 같이 운동을 한 동료들을 만나서 증거를 남기라고 하셨다.


 우선 최초로 발견한 체육관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어떤 운동을 했으며, 동생이 쓰러지기 전에는 어떠한 상태였는지를 물어봤다. 예전에 관장님에게도 어떤 기술을 했었는지 물어봤는데 평소에 하던 거랑 똑같이 했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돌아왔기에 제대로 확인을 해야 했다. 전화를 받은 동료도 평소처럼 운동을 했다기에 그 운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운동은 6시부터 10시까지 세 타임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6:00-7:00 운동, 7:00-7:30 휴식, 7:30-8:30 운동, 8:30-9:00 휴식, 9:00-10:00까지의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항상 준비운동부터 시작하고 기술연마를 한다고 해서 준비운동은 어떤 것을 하냐 물으니 구르기, 스트레칭 그리고 전방회전낙법을 한다고 했다. 8:30-9:00 휴식시간에는 동생과 군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 당시 동생의 상태를 물어보니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전했다. 운동을 하면서 머리를 부딪히거나 다치는 일이 없냐고 물으니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낙법을 배우는 거라 심하게 다치는 경우는 없었다며 아직 1년밖에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상하게도 대답이 석연치가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질문에도 낙법을 하면 머리를 안 다친다는 말만 자꾸 반복하는 걸 보니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그냥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다. 일단 전화를 더 한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동생의 소식을 듣고 엄마의 사촌 동생. 나에게는 외당숙이지만 편의상 삼촌이라 부르겠다. 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주민이다. 면회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니 토요일에 병원까지만이라도 태워주겠다고 한다. 오늘은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는 날인가 보다. 이번주 주말에는 병원에 갔다가 경찰서에 들러 신고접수를 하고 소방서에 들려서 구급활동일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사고로 다친 사람은 말을 못 하고 보험사는 순순히 사고를 인정할지가 의문이다. CCTV라도 확보가 되면 좋을 텐데 계약기간이 만료돼서 저장된 영상이 없다며 협조를 하지 않았다. 답답한 상황이라 더 생각하기도 싫었다. 잠시 생각을 덮어두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차분하게 처리했다.


 오늘 저녁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친구를 만나 근처에 있는 시장에 들러 초밥과 회를 사서 친구네 집으로 갔다. 음식을 세팅하다 보니 음료수가 없어서 허전했다. 결국은 편의점에 들러서 콜라까지 사들고 왔다. 이제 밥을 먹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 동네는 보통 초, 중, 고를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지방에 살다 보면 한 다리 건너 전부 연결되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가정사부터 과거까지 모르는 게 없다. 그래서인지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나눠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가려고 슬슬 일어나는데 창 밖의 소리가 심상치 않다.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봤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올 줄 몰랐다. 친구는 내일 출근을 하지만 자고 가라는 말에 순순히 따랐다.


 어릴 때는 같이 놀긴 했지만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반대여서 별로 친하진 않았는데 지금 이러고 있는 걸 보니 사람 일은 역시 모르는 것 같다. 새삼스럽게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친구 아버지도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들었었는데 본의 아니게 같은 공통점이 생겨버렸다. 그래서인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친구는 다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가족 중에 쓰러져 본 사람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궁금하고 걱정돼서 물어보는 그 안부들이 얼마나 부담감으로 다가오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말하길 아마도 주변에 쓰러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상황을 모르니깐 그러는 거라며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의 관심에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게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이해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 한 마디가 나의 불편함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지금 나에게 제일 필요했던 건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공감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선물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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