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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6 - 지긋지긋한 세상살이

2023년 3월 9일 목요일


아침엣 자고 일어나 보니 친구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다. 창 밖을 보니 비가 그친 것 같아서 침대를 정리하고 집 밖을 나섰다. 나가보니 비가 완전히 그친 건 아니고 가랑비도 아닌 것이 애매하게 내렸다. 마치 나에게 미스트를 뿌리는 기분이었지만 우산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후드만 뒤집어쓴 채 걸었다. 원래 아침을 먹진 않지만 오늘따라 김밥이 먹고 싶어 져서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에 위치한 곳까지 걸어갔다. 김밥 가게는 8시부터 2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곳이라 나는 평생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방문했다. 가게는 협소했지만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김밥을 싸는 종업원은 여러 명이었다. 기대를 가지고 받아보니 막상 김밥 속에 든 재료는 단출했다. 계란과 매운 어묵이 끝이었다. 그래도 먹을 만했다. 그냥 다음엔 다른 걸 먹어보고 싶을 뿐.   


 집에 와서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순간을 글로 기록하고 있지만 영상으로도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평소에 전자기기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유튜브로 영상편집을 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아직은 초보라서 값비싼 장비들을 들일 수도 없고 영상편집 실력이 서툴겠지만 한번 해보기로 했다. 아이패드만 이용해서 영상을 만드는 것도 많으니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 손이 잘 따라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의지만 넘치고 실행은 더딘 상태이다. 영상까지 만들려면 앞으로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다.


 한창 열정이 타올라 영상편집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40분 후에 나오란 말에 여유롭게 씻고 나갔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엄마한테서 동생 문제로 전화가 왔다. 외외종할아버지 그러니깐 엄마의 외삼촌이 계속 전화를 해서 사고에 관한 증거를 모으라고 하여 체육관에 연락을 했더니 예전에 했던 말과 다른 주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전에는 복도에 있는 CCTV를 확인해 봤을 때 동생이 9시 45분쯤에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었는데 이제와서는 복도 영상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도 체육관 안에 있는 CCTV는 계약이 끝나서 저장된 영상이 없고 복도에 있는 건 다른 거라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늦었지만 복도 영상만이라도 보내 줄 수 없냐는 엄마의 말에 체육관 안과 복도에 있는 CCTV는 같은 거라서 저장된 영상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증거를 끌어 모은다고 했는데 허점이 있었던 것 같다. 왜 하필 나는 관장님을 만날 날 녹음을 하지 않았을까.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나중에 말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올라왔다.


 일단 친구를 만나서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이 안 좋았다.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고 나서 카페를 갔지만 지금은 뭘 먹어도 입맛이 없었다. 친구와는 한참 동안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래도 나름 기분 전환은 됐다. 집에 와서 엄마의 전화를 받기 전까진 말이다. 엄마가 전화가 와서는 대뜸 예전에 찍어놨던 체육관 화장실 사진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보험사에서 체육관 안만 보험이 해당되고 화장실은 밖에 있으니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반박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 문 앞에는 체육관 전용 화장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걸 보기만 하고 화장실 내부만 찍었지 문까지는 찍지 않았다. 나의 부주의에 다시 한번 화가 올라왔다. 왜 하필 문을 찍지 않고 넘어갔는지 그리고  녹음은 왜 안 했는지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혹시나 체육관에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으니 동생의 여자친구가 근처에 살면 대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안 되냐고 하는 엄마의 말에 다시 한번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문제도 아닌데 왜 고민만 안겨주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전부 나를 열받게 하기엔 충분했다. 일단 바보 같은 짓을 한 나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났다. 생각이 짧아도 너무나도 짧았다.


 한 번의 사고로 인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이 문제들을 감당하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동생이 다쳐서 일어나지 않는 것도 속상한데 그걸 가족보고 증명을 하라니 너무나도 도망가고 싶은 현실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엄마와의 전화를 끊었다. 증거를 수집한다고 노력했는데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미칠 것 같았다. 이럴 거면 보험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의식이 없는 동생을 대신해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나. 우리도 직접 눈으로 본 게 없고 전부 전해 들은 것이 전부인데 지금 내 두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한 건 운동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아직까지도 의식이 안 돌아온 동생뿐이다. 다친 사람은 눈앞에 있는데 정작 세상에 있는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더 입증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동생의 상태가 제일 확실한 증거 아닌가. 180cm의 건장한 체격에 기저질환이 없던 23세 성인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유도를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한 달 넘도록 의식이 없는 상태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발견된 장소가 체육관 실내가 아니라 건물 계단에 있는 화장실이라서 뇌출혈의 원인을 운동과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인가. 보험사는 화장실에서 이물질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묻고 싶다. 진짜 지금 이 순간만큼 세상이 끔찍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일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지겨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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