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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0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37 - 착한 사람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잠이 오지 않아서 영화를 보며 밤을 지새우고 오전 8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3시쯤이 되었을 때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영상 편집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유튜브로 영상을 보면서 눈으로 익힌 다음 어플을 켰다. 분명히 눈으로 볼 땐 쉬웠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편집을 하다 보니 번거로운 작업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일일이 모자이크 하는 건 고역이었다. 편집을 하는 게 아직 서툴다 보니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편집에 열중하다 보니 밥 먹는 것도 제쳐두고 어떻게 영상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있다 보니 손가락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기나긴 사투를 벌이는 중 엄마에게 기차를 탔다는 문자가 왔다. 결국 오늘은 영상편집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힘겨웠던 모자이크 처리는 다 끝냈다.


 오랫동안 아이패드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눈앞이 침침했지만 한번 시작한 편집을 멈출 수 없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작업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8시가 넘었다. 엄마는 서울역에 8시 52분 도착이라고 했으니 지금 나가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일단 하고 있던 것을 중단하고 마중을 나갔다. 엄마를 매주 마중 나가는 일도 한 달이 넘어간다. 솔직히 한 달 정도면 이제 집까지 혼자 찾아올 수 있을 법도 한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요즘 화가 많아진 듯하다. 나는 아무래도 효녀랑은 거리가 멀지 싶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어서 마중은 나갔지만 엄마를 보자마자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모든 게 불편하다. 가족들도 너무 자주 만나다 보면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특히나 동생의 사고로 해결해야 될 일이 자꾸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화가 늘어났다. 혼자 있을 땐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몰랐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예민해진다. 혼자만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특히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 보면 더 그렇다. 5평 안에 화장실, 부엌, 방 그리고 침대까지 있으면 겨우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긴다. 이동할 때마다 서로의 신체가 맞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공간이 협소했다. 살다 보면 누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이럴 때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죄스럽다. 엄마도 매주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게 고될 텐데 그럴수록 딸인 내가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어렵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라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대할 때면 죄책감도 함께 동반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그런 나 자신에게 제일 화가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착하다는 말을 한다. 아무래도 동생의 간병을 자발적으로 한다니깐 착하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내가 착한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순수하게 좋은 마음만 있었던 건 아니기에 더 그랬다. 솔직히 내가 간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엄마가 일을 그만두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간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연령이나 체력, 경제력을 여러모로 따져 봤을 때 집안에서 가장 젊지만 경제력은 월등히 부족한 내가 제일 적임자였다. 그리고 가족들 모두 지방에 있고 나는 서울에 있으니 다른 가족들보다 병원에 가기도 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병을 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또한 가족이 옆에 함께 하면서 자극을 주는 것이 의식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니 더 이상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그전에는 간병인 비용과 병원비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간병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하는 건지 반항심이 생겼다. 그런데 의식을 빨리 차리기 위해선 가족이 옆에 있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특별한 이유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자주 익숙한 얼굴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주며 뇌에 자극을 주는 것.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없고 오로지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간병을 직접 하면 아무래도 익숙한 대상이 24시간 동안 붙어 있으니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체력과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동생이 하루빨리 의식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동생이 의식을 차려야 가족들도 나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니 간병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결코 순수하지도 불순하지도 않은 마음이었다.


 나는 세상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 안에 선함과 악함이 공존한다고 여긴다.  없이 착한 행동만 하는 사람도  없이 나쁜 행동만 하는 사람도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같은 행동이라도 개인적인 잣대를 가지고 다르게 평가하게 된다. 아니면  사람의 일부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숨겨진 속내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보다는 나처럼 상황에 따라 착함과 악함의 경계를 드나드는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것을 보면 마냥 착하다고  수도 없고 동생을 간병한다는 것을 보면 마냥 나쁘다고  수도 없다. 이런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할  있을까? 나는 마냥 착하지도 마냥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에게 최선이  만한 선택을 하려는 것뿐이다. 최선의 판단이 간병이었을  다른 의미는 없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착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나다.


 





영상편집

마중

감자탕과 만둣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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