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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1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44 - 한 발자국만 멀어지자

2023년 3월 17일 금요일


 동생 간병 하루 전날


 어쩌면 오늘이 내가 서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을 뿐이다. 병원에 가져갈 짐을 챙겨야 하는데 귀찮아서 가만히 있었다. 일어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도,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그저 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원래라면 문자가 오면 바로 확인을 하는데 오늘따라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싫어진다. 쌓여가는 알림 표시를 보고도 나에게 오는 연락들을 무시했다.


 나의 일상은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과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분명 잠도 제대로 못 잘 거고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간병을 하느라 바빠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내가 계획한 것들은 차질 없이 진행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해 봤자 불안만 커질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루종일 가만히 있다가 서울역에 마중을 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들,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으려나 궁금해졌다. 각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내일이 되면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일상이 기다릴 텐데 남들은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평범한 일상이 살짝 부럽기도 하였다. 나한테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자유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지하철을 타는 것도 서울역을 가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 간병을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아니면 마땅히 좋은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 어차피 하게 될 거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 듯이 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하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차라리 내가 한다고 하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불안한 감정을 절제하려 했지만 엄마를 만나고 나서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 짐을 넣어야 할 캐리어를 보니 왠지 모르게 착잡해졌다. 진짜 내일 가는구나. 집에 가서 짐을 챙길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걸 챙겨야 할까. 병원에 얼마나 있을지를 모르니 뭘 챙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3-4주는 병원에서 지낼 것이고 그 후로는 부산에 있는 재활병원으로 갈 텐데 그 생각을 하니깐 더욱 막막해졌다. 나 진짜 잘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이 된다. 지금도 화가 많은데 동생한테 엄청 짜증 낼 수도 있다. 내가 가도 괜찮은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집으로 오는 내내 고민에 잠겨 침묵이 흘렀다. 엄마도 어두운 내 표정을 보고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나의 눈치만 살폈다. 뭘 챙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니 일단 중요한 것만 챙기고 나중에 필요한 게 생기면 갖다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차피 주말마다 엄마가 올 거니깐 혹시 모르니 전부 다 챙겨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고 다짐했다.   


집에 와서는 마지막 만찬으로 피자를 시켜 먹었다.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먼 곳으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먹고 나서 짐을 조금씩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은 이불과 베개 그리고 편한 옷들부터 챙겼다. 그 뒤부터 각종 화장품과 전자기기를 챙기는 것을 보고 엄마는 혀를 내둘렀다. 간병을 가는 건지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르겠다며 적당히 챙기라고 하였다. 내가 병원에 간병을 하러 가는 건 맞지만 나도 관리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며 초췌한 간병인 말고 예쁜 간병인으로 있을 거라고 하니 엄마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병원에는 세탁기가 없어 손빨래를 해야 돼서 빨래판까지 챙기니 엄마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면 되지 않냐고 하길래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엄마는 내가 챙기는 짐을 보고는 알아서 하라며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짐을 싸면서도 현실이 믿기지가 않아 신세를 한탄했다. 엄마는 오늘 친척들과 전화를 했는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동생이 일반 병동으로 내려갔다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동생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현실은 목숨만 간신히 건진 채로 여전히 의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다들 다행이라고 말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말보다  싫었던 말이 있다고 한다. 내일부터는 딸이 간병을 들어간다라고 말하니 친척들은 하나같이 다행이라며 잘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들이 아직까지 의식이 없는 것도 슬픈데  와중에 딸한테까지 부담을 줘야 해서 죄책감이 들어 속상하기만   상황에서 무엇이 다행이고 뭐가 잘됐다고 하는 건지 이해를   없다고 했다. 지금 어쩔  없는 상황이라 딸이 자기 생활을 포기하고 아들을 간병하러 들어간다고  것인데  생각만 하면 전혀 다행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가 간병을 해주었으면 다고 말한 적이   번도 없다. 그래서  입으로 간병을 하겠다는 말이 나왔을  굉장히 속상해했다.


“차라리 네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간병하러 가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엄마는 간병 못해. 안돼.”

“나는 계속 돈이나 벌어오라는 말이지?”

“맞아. 엄마가 간병하면 돈을 벌 수가 없어. 엄마가 간병하고 내가 돈을 벌어봤자 엄마보다 못 버는 걸.”

“에휴. 그래 돈 벌어야지.”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본인이 돈이 많고 여유로웠다면 자식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안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고무장갑이 녹아서 구멍이 뚫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짐을 챙긴다고 이것저것 다 꺼내서 집은 엉망인데 고무장갑까지 말썽이니 짜증이 났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며 짜증을 내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면서 주문을 외우 듯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혼자서 그러고 있다가 의구심이 들어서 엄마한테 물었다.


“아니 엄마. 도대체 누가 이럴 때일수록 괜찮다고 하면 다 해결이 된다는 거야. 이해를 할 수가 없네. 괜찮다고 말해도 전혀 안 괜찮은데. 그냥 짜증만 나는데?”

“그 사람은 엄청나게 힘든 일을 안 겪어봤나 보다. 그러니깐 그렇게 쉽게 말을 하는 거지. “

“그러게 말이야.”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면 오히려 그것이 강박이 되어 더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나약함을 탓하며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했다가는 나처럼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힘든 상황이니깐 항상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핑계를 대면서 합리화하는 것도 옳지 않다. 불행을 이겨내는 방법은 하나다. 일단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한 다음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극복이라고 해봤자 거창할 게 없다. 일단 힘든 상태인데 억지로 괜찮다며 자신을 속이지 말고 지금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아채고 스스로 다독여준다. 내가 힘들다는 걸 인정해 주는 순간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 상황에서 딱 한 발자국만 떼고 바라보면 된다. 더도 말고 딱 한 걸음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무엇부터 하면 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눠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 번으로는 잘 안 되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할 것이다. 그때마다 감정과 생각이 너무 지나치게 밑바닥까지 가지 않도록 중간까지만 끌어올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용기가 생겨난다.


’ 내가 왜 이럴까. 나 기분이 안 좋네. 아 내가 이런 생각까지 했구나.‘    


 내 감정을 알아차리다 보면 어떤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깨닫는 것이 쉬워진다. 끊임없이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힘든 상황일수록 자신과의 대화를 더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괜찮아지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힘든 상황을 극복한다는 것은 내가 괜찮아질 준비가 되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깐 말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생각에는 부정과 긍정이 함께 존재한다. 그게 너무 한쪽으로만 심하게 치우치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도 방법을 찾고 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그 한 걸음이 나에게 있어선 글쓰기였다. 실체는 없고 생각으로만 둥둥 떠다니면서 괴롭혔던 감정들을 글로 쓰게 되면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눈으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서 그런지 내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어울리는 문법과 단어를 생각해 보고 수정하면서 상황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확인하게 된다. 글 쓰는 건 돈 드는 게 아니니깐 부정적인 감정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방법으로 추천한다. 요즘에는 폰은 기본적으로 많이 들고 있으니깐 들고 다니면서 메모장에 적어도 좋고 그게 아니라면 집에 굴러다니는 볼펜이랑 종이를 주워다가 쓰면 된다.


 나는 오늘도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었지만 글을 쓰며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니 내일도 힘차게 맞이해 보겠다. 기다려라 동생아. 내가 아주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간병을 해줄 테니깐 조금 있다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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