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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1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48 - 초보 간병인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그런데 6시 반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간호사가 커튼을 치며 필요한 물품이 없는지 물어본다. 자다가 놀라서 일어났다. 잠결에 필요한 물품을 이야기하였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일찍 도착한 걸까. 그래봤자 6시 25분이었지만 몇 분 차이로 나는 게으름뱅이 보호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알람을 몇 시로 맞춰놓아야 하는가. 하루의 끝을 글쓰기로 마무리하다 보면 2시에 잠이 든다. 그리고 6시 반에 일어난다. 큰일이다. 벌써부터 피로가 쌓이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의 다짐을 지켜야 하기에 해내야 한다.


 이제 며칠 해봤다고 네블라이저와 석션 정도는 익숙하게 한다. 경관급식을 준비하는 것도 이제는 눈감고도 한다. 영양식 들어가는 속도를 조금 빠르게 올렸더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이 시간을 이용해 체위변경을 하거나 기저귀를 교체하고 몸을 닦아주어야 한다. 오늘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 병원복 하의는 매번 용변이 묻어나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맨날 갈아입혔지만 상의는 4일 만이었다. 솔직히 첫날에 갈아입혀보니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첫날보다는 수월하게 진행했다. 점점 늘어가는 나의 실력에 스스로 감탄을 했다. 뭐 물론 케어를 받는 동생입장에서는 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기저귀도 새롭게 교체해 줬다. 오늘은 대변을 누지 않아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도 며칠씩 대변이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동생은 어젯밤에 열이 난 후로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어제처럼 이야기에 반응을 해주지도 않고 잠만 잔다.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더 힘들게 해야 했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주사기를 이용해 콧줄에 물을 주다가 동생옷에 흘렸다. 흥건하게 젖어버린 상의와 바지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왜 하필 새롭게 환복을 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의 부주의함을 탓했다. 잔꾀를 부려 드라이기로 말려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좀처럼 마를 생각이 없어 보여서 포기하고 새 병원복을 가지러 갔다. 그래도 이제 바지는 몇 번 입혀봐서 그런지 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입힐 수 있게 되었다. 대변을 누지 않아도 기저귀를 여러 번 갈 만큼 나름의 요령도 생긴 것 같다. 이대로만 하면 전문 간병인 뺨치는 보호자 간병인이 될 것 같다. 엄마가 이야기해 주길 간호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가족 간병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전문 간병인만큼 요령도 경험도 없으니 한참 부족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간호사들을 귀찮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미 블랙리스트로 오른 게 아닐까라고. 기저귀나 체위변경도 혼자서는 하지를 못해서 같이 해줘야 하고, 질문도 많고, 사소한 것도 확인을 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나에게 걸리면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속 귀찮게 하지 않으려면 모든 걸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꼬이는 일없이 무사히 재활을 했다. 그런데 어제보다 괜찮았을 뿐 모든 게 수월하게 진행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오늘은 동생의 콧줄을 4주 만에 교체하는 날이었다. 새로운 콧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야 했다. 분명 오전 재활을 진행하고 있을 때 다 끝나면 바로 엑스레이실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병동으로 향하길래 이송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대로 병실에 올라가서 기다리다가 데스크에 앉아있는 간호사에게 언제쯤 찍냐고 물어봤더니 이송 신청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얼마 안 있다가 다른 간호사가 와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냐고 물어본다. 안 찍었다고 대답하니 아까 연락을 받지 않았냐고 말을 하길래 연락을 받아서 이송직원에게 확인을 했는데 들은 게 없다며 병실로 이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다른 간호사에게 말하니 이송 신청을 해준댔는데 아직도 안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며 언제쯤 갈 수 있냐고 묻는 찰나에 이송직원이 도착을 해서 대화가 끊겼다.


 계획이 틀어질까 봐 살짝 예민해질 뻔했다. 재활치료 시간을 지키려면 빈 시간에 모든 걸 해야 한다. 네블라이저랑 석션도 하고, 밥도 주고, 기저귀도 갈고, 체위변경도 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이 모든 걸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동생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고 새로운 검사라도 있는 날에는 내가 케어를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도 동생은 점점 호전이 되어가고 나는 간병 실력은 나날이 늘고 있다. 이제는 대충 어떻게 스케줄이 돌아가는지 파악을 했다.




 오후가 되니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다. 바로 동생의 여자친구였다. 재활시간에 맞춰오면 동생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니 3시에 오겠다고 약속을 잡았었다. 동생 일로 연락만 주고받다가 이번에 처음 만났다. 그런데 사진으로 얼굴을 봐서 그런지 낯설지는 않았다. 재활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길래 한눈에 알아보고 여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로 인사를 한 뒤 경사침대에 기대어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여자친구가 왔는데도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계속 잠만 잔다. 웃긴 게 오전에 재활을 하면서 재활 치료사가 눈을 뜨고 자기를 보라고 했을 때는 안 뜨다가 여자친구가 왔다는 말을 듣고는 눈을 떴다. 힘겹게 눈을 뜬 동생에게는 미안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동생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울먹거렸다. 재활 치료사가 동생이 우는 것을 보고 당황을 하며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미소를 보였다. 확실히 감정표현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아까는 그렇게 울어놓고서 막상 여자친구가 왔는데 눈도 뜨지 않냐고 옆에서 잔소리를 했다. 동생이 오늘따라 눈을 뜨는 건 힘겨워하지만 목소리는 알아듣는지 여자친구의 목소리를 듣고는 울먹거렸다. 그 모습을 보다가 여자친구도 동생 따라 울먹거리는 게 보여서 나도 같이 울컥할 뻔했다. 다행히 잘 참았다. 그러고 나선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며 잠시 자리를 피해 줬다. 내가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할까 봐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동생은 하루종일 비몽사몽한 채로 있다가 작업치료실에 갔을 때 잠시 의식이 또렷해졌다. 처음에는 계속 잠만 자다가 구강을 자극했을 때는 연하 반사도 잘 일어나고 오렌지 주스를 맛보더니 상큼한 맛에 정신이 들었는지 애가 살아났다. 담당 치료사분께 어제 혀를 내밀었다고 하니 안 믿는 눈치였다가 동생이 나중에 내미는 것을 직접 보더니 동생을 칭찬했다. 동생에게 계속 자극을 주니 정신이 살짝 드는 게 보여서 여자친구가 왔다고 알려주니 그제야 눈을 뜨고 얼굴을 보더니 이내 눈물을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치료사는 확실히 의식이 회복되고 있는 게 보인다며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니 동생이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는 내 말을 믿어줄 사람들이 생긴 기분이었다. 하루아침만에 장족의 발전이었다. 열이 계속 나서 기진맥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전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자친구가 자기를 보러 왔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는지 마지막에는 있는 힘껏 반응을 해주었다. 여자친구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싶었는데 반응을 해주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동생은 어제오늘 재활 훈련을 하느라 몸이 고됐는지 녹초가 되었다. 오늘은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울먹거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동생의 울먹거림이 내 눈에는 마치 움직이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우는 것처럼 비쳤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오른쪽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대신 가벼운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눈을 뜰 힘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남들이 잘 때쯤 갑자기 눈을 떠서는 손짓을 한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잡으려고 땀을 흘리면서까지 안간힘을 쓰는 동생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움직여보려는 노력처럼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한 30분가량 팔을 들고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용납되지 않아서 연습을 하려고 하는 건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동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버둥이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두면 내일 컨디션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 이제 됐으니 그만하고 자라며 억지로 눈을 감겼다.


 동생의 이상 행동을 지켜보느라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씻게 되었다. 샤워를 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살펴보니 퉁퉁 부어있다. 아킬레스건 쪽이 부었는데 그곳을 누르니 통증이 있었다. 어쩐지 요즘에 걸을 때마다 이상하게 다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피부가 따끔거린다고만 생각했는데 피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의 자세를 바꿀 때 관절에 무리가 갔는지 어깨, 허리, 다리가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는데 다리는 첫날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다. 계속 서있다 보니 단순한 부종이겠거니 했는데 이건 부종의 통증이랑은 다른 것 같다. 아킬레스 건이 욱신거리는 것은 살면서 처음 겪어본다. 어쩐지 발과 다리가 부어서 불편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일이다. 이렇게 되면 병간호를 제대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일단 상태를 지켜보다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검사를 받아야 할 듯하다. 겨우 나흘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나까지 이러면 안 된다. 내 건강을 먼저 챙겨야 동생도 잘 돌볼 수 있다고 다짐하며 긴 싸움을 할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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