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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1 - 동생은 지금 의식 회복 중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오늘은 엄마가 동생을 만나러 오는 날이다. 코로나로 면회는 전면중단이 되었지만 재활시간을 이용해 만나는 경우가 있다는 간호사의 귀띔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주말에는 재활치료가 없는 줄 알고 금요일에 휴가를 쓰고 온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에도 재활치료가 있었다. 물론 오전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는 것이었지만 진작 알았으면 엄마에게 알려줬을 텐데 괜히 아까운 휴가만 쓰게 한 것 같다.


 주말에는 격주로 운동 재활이 진행되고 스케줄이 유동적이라 그런지 내일은 오전 9시에 재활이 있다고 한다. 평일 11시에 하는 것도 빠듯했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재활 치료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 주말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조정이 가능한 지 확인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있었는데 다행히 10시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


 평일 재활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12시 반, 오후는 3시부터 5시까지인데 11시 반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연락을 해보려고 폰을 확인했는데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거의 다 왔다고 하면서 30분을 일찍 나왔는데도 길을 잃어버리고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고 하소연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교대역 14번 출구로 나가 버스환승을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헤매다 엉뚱한 출구로 나가는 바람에 건너편에서 버스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 왜 전화를 받지 않았었는지 내가 전화만 받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며 나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려 하길래 바로 선을 그어버렸다. 간병을 하면서 휴대폰을 계속 들고 있지도 않았고 그 시간에는 동생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바빴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울 미아가 될 뻔했던 엄마는 12시쯤 도착했고 동생의 컨디션도 나름 좋아 보였다. 물론 중간에 계속 졸긴 했지만 이제는 하루 중 잠을 자는 시간보다는 깨어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재활 치료실로 들어서니 치료사들의 관심이 몰렸다. 아무래도 동생이 병원에서 뇌질환 입원 환자 중 가장 막내라서 한번 보고 기억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간병으로 들어온 나조차도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으니깐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엄마까지 생각보다 젊어서 놀란 눈치였는지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았다. 오전 마지막 재활은 갈릴레오 기구 재활이었는데 동생은 피곤했는지 그 와중에 잠을 잤다. 재활 시간이 끝나고 엄마는 우리와 함께 병동으로 올라갈 수가 없으니 점심을 먹고 오후 재활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병원에는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엄마도 병동으로 올라오게 했다. 처음에는 휴게실로 안내했다가 점심에는 간호사들이 라운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억이 나서 엄마한테 병실로 오라고 하였다.


 동생은 밥을 먹기 위해서 일어나 있었다. 엄마는 애틋한 눈빛으로 침대에 기대어 있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감성도 잠시 엄마가 오자마자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게 해 줬다. 모자가 상봉하고 있는 와중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기저귀를 확인해 보니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대변이다. 하필 엄마가 병실로 몰래 들어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서 이러려고 오라고 했냐며 나를 의심했다. 억울하게도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해명했다. 보통은 하루에 한 번만 하니깐 오전에 이미 눠서 안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걸어 다니는 나보다 더 잘 먹고 잘 싼다고 말했다. 그래도 엄마와 둘이서 치우니 혼자서 할 때 보다 재빠르게 상황이 해결이 되었다. 이송 담당자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또 조급해져서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동생의 의식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또렷해진 거 같다. 우선은 깨어있는 시간이 확실하게 늘어났다. 그리고 시선 처리를 항상 왼쪽으로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눈동자가 점점 정중앙으로 위치하는 것이 보였다. 눈으로 보이는 대상을 완전히 추적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시선이 따라오는 것은 느껴졌다. 재활 치료사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트래킹이 아직까지 완벽하게 돌아온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운동 재활을 해주는 치료사분은 동생에게 따봉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은 재활치료사님에게 승부가 돌아갔고 동생에게 따봉을 받아냈다. 심지어 손가락 브이도 했다. 그 순간을 미처 남기지 못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가 있으니 그때를 노려야겠다. 확실히 어제보다 다리에 힘도 주고 신체 움직임이 좋아지는 게 보였다.


 보통 재활 훈련을 받는 시간에는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작업 치료실에 가보니 어제 만났던 환자와 간병인이 있었다. 그분의 머리를 보니 동생과 똑같은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재활 훈련을 하다 보면 때 아니게 생각지도 않은 해프닝도 발생한다. 어제는 동생에게 엄지를 들어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환자가 재활 치료사에게 엄지를 들어 보여서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었다. 때 아니게 재미난 일도 생기는 것 같다.


 동생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재활훈련에 호기심을 갖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자꾸 시선을 돌려서 정작 자기가 하고 있는 재활에는 집중을 못했다. 동생을 따라 옆을 보니 동생보다 훨씬 나이는 많지만 움직임이 더 좋아 보이는 환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입을 벌리거나 웃지 못하는 대신 손으로 물건을 잡는 건 잘했다. 동생은 그와 반대였다. 입도 벌리고 웃는 건 잘한다. 동생이 재활에 집중을 못하고 있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옆 사람과 경쟁을 부추겼다. 그랬더니 웃는다. 서로 인사를 하라며 고개를 돌려주니 그쪽에서 먼저 손을 흔든다. 동생은 반응이 없다. 그래서 내가 동생한테 어른이 인사를 하는데 예의가 없다고 말하니깐 그냥 웃기만 한다. 누가 더 먼저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 상황이 귀엽기도 하고 너무 웃겼다.


 재활이 다 끝나갈 무렵 엄마와의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라고 했는데 처음부터 완벽하게 되지는 않는지 손가락만 살짝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 엄마가 사 온 만두가 큰 역할을 했다. 동생에게 만두 냄새를 맡게 한 뒤 보여주니 제법 시선처리가 잘 따라왔다. 엄마는 자기한테는 눈을 안 마주쳐주면서 어떻게 만두는 정확하게 볼 수 있냐며 서운해했다. 동생을 깨울 방법은 아무래도 음식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먹기 전에 꼭 동생의 코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맡게 한다. 음식이야기를 하면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한다. 다른 것을 시도했을 때 보다 훨씬 반응 좋았다. 나는 때 아니게 먹지 못하는 동생을 약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열받으면 일어나서 직접 먹으면 된다고 놀렸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모습이 관찰되니 다행이다. 이대로 가면 예상했던 기간 내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다. 재활을 받고 나면 동생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할게 남았으니 마무리를 하고 눈썹도 깎아주었다. 나름 만족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동생은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스스로 다리와 팔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재활 시간에도 고개를 움직이려고 하는 시도가 보여서 확실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생이 젊다 보니 티비보다는 유튜브를 더 좋아할 것 같아서 틀어 주었다. 웃긴 장면에서는 나와 같이 웃기도 하였다. 영상에 나오는 남자 연예인을 보며 미래의 내 남자 친구라는 시답잖은 나의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하고 웃었다. 특히 티비를 그렇게 열심히 뚫어져라 본 적이 없었는데 만화영화를 틀어주니 어린아이가 만화에 푹 빠져서 집중하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확실히 시선 처리도 더 빨라진다. 만화가 특히 행동이 오버스럽고 통통 튀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요리조리 시선을 맞추느라 제법 눈동자가 굴러갔다. 그렇게 밤늦게 까지 보고 있다가 시간이 되니 티비 모니터가 자동으로 꺼졌다. 다시 켜주려고 했는데 제한 시간이 걸려있다. 동생의 눈빛을 보니 굉장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저녁 10시가 되었으니 자야 한다. 내일도 일정이 한가득이라서 충분히 숙면을 취해야 한다. 동생의 눈을 억지로 감기고 토닥거려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잠이 들었다. 깨어있느라 피곤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의식을 되찾고 있는 게 눈에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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