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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1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0 - 나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

2023년 3월 23일 목요일


 6시 반이면 어김없이 물품을 나눠주러 온다. 어디선가 나를 깨우는 말소리와 함께 알람이 울렸다. 정해진 시간에 마치 미션을 수행하듯이 하루는 시작된다. 오전 재활을 가기 전에 끝내야 할 것들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나의 체온을 재고 소변 주머니를 비우고 그것들을 기록지에 작성한다. 네블라이저와 석션, 심장재활치료를 돕는 토닥이, 경관급식이 끝나면 멸균거즈에 식염수와 헥사메딘 가글액을 묻혀서 동생의 입 안도 닦아줘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병의 요령은 늘어가는 반면에 나의 정신과 건강은 잃어가는 듯하다. 정석으로 모든 걸 하려면 하루 안에 다 끝마칠 수가 없어서 잔꾀를 써야 하는 지경이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도 이 생활에 나름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실수도 계속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간병은 장기 전이라 하루 만에 모든 걸 다하려고 하면 금방 지쳐버리게 된다. 내가 첫날에 무리를 해봐서 안다. 힘들긴 하지만 간병을 자처해서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동생의 의식을 빨리 회복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때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는 모습이 나를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책임감으로 느껴져서 일 수도 있겠다.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그 죽일 놈의 책임감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래도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에 들어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는 재활을 가기 전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기저귀도 갈아주고 발각질도 제거해 줬다. 하루에 모든 것을 다하기는 어려워서 며칠씩 나눠서 진행해야 한다. 우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 수건과 해면으로 몸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피부관리를 배워서 동생한테 다 써먹는 것 같다. 발바닥을 닦아주니 자극이 느껴지는지 몸을 움찔거린다. 반응을 보니 어제보다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청소를 하시는 분이 와서 하는 말이 소변주머니가 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엉뚱한 밸브를 잠가놔서 소변이 샌 것 같았다. 진짜 정신이 빠졌다. 오늘도 역시나 실수를 했다.


 오전 재활을 가서 동생은 하염없이 졸기만 했다. 휠체어에 앉았는데도 목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잠을 잔다. 어제 엄마가 했던 말이 맞는 것 같다. 조만간 의식을 또렷하게 차리는 모습이 머지않은 것 같다. 두 번째 재활을 들어갔을 때 내 친구가 찾아왔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려고 왔단다. 시간이 애매해서 점심을 같이 먹지는 못했는데 굳이 나에게 밥을 사 먹여야겠다고 한다.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편의점에 끌고 가서 음식을 고르라고 한다. 마지못해 떡볶이 하나를 고르니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며 같이 먹을 수 있는 것도 고르라고 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유부초밥을 잡고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하니깐 마실 것까지 선택하라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친구에게 엄마냐고 그랬더니 내가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아서 밥이라도 사주려고 왔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재활 훈련을 끝나면 바로 병실로 가봐야 해서 친구에게 함께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하니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서 동생을 돌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먼 길을 달려와 준 친구를 보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렇게 친구가 전해준 따듯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병실로 향했다.   


 오전은 그나마 할 만 하지만 오후가 되면 스케줄이 더  빡빡해진다. 재활훈련을 끝내고 올라가면 똑같이 식전에 네블라이저랑 석션을 하느라 1시간가량을 소모한다. 그리고 밥 먹고 소화시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때는 나도 점심을 먹어야 해서 동생에게 영양식을 주는 사이에 간이침대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영양식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재활 시간은 또다시 다가왔다. 3시까지 가야 하니 적어도 2시 40분쯤에는 이송 담당자가 휠체어를 가지고 온다. 기저귀를 갈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동생의 상의가 축축해 보여서 확인해 보니 소변으로 젖어있다. 이 상태면 안 봐도 하의도 축축할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2시 반이다. 곧 있으면 이송직원이 온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상의를 먼저 탈의하고 갈아입혔다. 예전보다 속도가 빨라졌다. 기저귀를 갈고 끝낼 무렵 이송담당자가 왔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갈아입혔다. 또 한바탕의 소동이 끝났다. 급하게 처리하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동생도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아는 건지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오후에 휠체어를 타고 재활을 내려갈 때는 동생의 상태가 좋았다. 눈빛도 똘똘하고 재활 훈련 마지막 시간 빼고는 졸지도 않았다. 통증치료를 할 때는 어쩌다 보니 동생은 휠체어에 앉아있고 내가 베드에 누워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사진도 찍고 동생이랑 손가락 씨름도 하고 이것저것 자극을 주려고 시도했다. 입도 벌려보라고 하면 곧잘 한다. 물론 아직 아, 에, 이, 오, 우 중에 아와 이만 할 줄 알지만 나머지도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확실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다리가 많이 부었다고 동생에게 보여주니 기분 탓인지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미안하면 더 고생시킬 생각 말고 빨리 움직이라고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반응을 잘 보이는 것 같다. 말을 하면 웃어주기도 하고 인상을 찡그리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동생이 피곤하지 않을 때만 해줬지만 말이다.


 재활 치료실에서 담당 교수님을 만났다. 리프트를 사용해 봤냐고 묻길래 아직 사용을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재활 시간이 아니더라도 휠체어를 타는 게 의식이 깨어나는데 좋을 것이라고 했다. 누워만 있는 것보단 일어나서 앉아있는 게 중력의 영향도 느끼고 근육도 살아난다고 하면서 이송 담당자가 저녁에는 없을 테니 리프트를 이용하여 동생을 휠체어에 태우고 돌아다니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교수님이 간병을 단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과 실전은 많이 다르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휠체어도 태우고 싶고 샤워도 시키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다. 그런데 그럴만한 여건이 안 따라주고 나 혼자 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성인 남성 둘이서도 휠체어에 태우는 걸 힘들어하는데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말이 좋아서 리프트를 사용하면 편하다고 하지만 기계를 살펴보니 일단 들것에 동생을 태워야 하는 것부터 난관일 것 같았다. 모든지 말이야 쉽다. 말로는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자꾸 요구사항만 늘어난다. 그러면 상주하는 보호자 인원을 2명으로 하던가 1명으로 제한해 놓고 그 모든 걸 하라고 말하니 동생이 낫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지금도 버거운데 요구만 늘어나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만이 불쑥 올라왔다.


 끝나고서는 또 네블라이저와 석션, 저녁을 챙겼다. 간호사에게 리프트를 사용하는 법을 물어봤는데 작년 이후로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 사용법이 헷갈린다고 하였다.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다음에 사용을 해야 할 때 한번 더 알려주겠다고 한다. 내가 과연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리프트를 사용하는 게 더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재우기 전에 기저귀를 확인해 보니 대변을 눴지만 다행히 새지는 않았다. 말끔하게 처리를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었다. 베드에 누운 채로 경사각을 세우고 노린스 샴푸로 머리를 마사지하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런데 어떤 자세를 취하든 간에 어정쩡하게 서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아팠다. 그래도 나의 수고를 아는지 동생의 표정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드러났다. 동생을 씻겨주다가 머리에 수건을 둘러쌌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었더니 동생이 따라 웃었다. 내가 그 모습을 사진 찍어서 보여주니 자기가 보기에도 우스운지 또 웃었다. 확실히 의식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간병을 하느라 내 손목과 발목은 이미 나간 것 같지만 동생이 의식을 차릴 수만 있다면 최대한 힘닿는데 까지는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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