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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5- 두 번째 난제

2023년 3월 28일 화요일


 세상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은 똑같이 시작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일상생활이었다. 오전 9시에는 연하검사가 있을 예정이다. 요거트와 전분을 섞어서 삼키게 했을 때 기도로 넘어가는지 식도로 넘어가는지 검사를 한다. 이걸 통과하면 가벼운 음식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된다. 아침까지만 해도 동생한테 검사를 잘 받고 오라며 응원을 했는데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새로운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꿈에도 몰랐다.


 병원에 있다 보면 재활 시간에 자주 마주치는 환자들이 있다. 서로 대화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다가다 마주치면서 혼자서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동생과 똑같은 흉터자국을 가진 50대 남성이 있었다. 재활훈련을 할 때도 항상 마주치고 오늘도 연하검사를 같이 받으러 갔다. 그러면서 어쩌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와 동생을 만나는 간병인마다 하나 같이 젊은 나이에 어쩌다 이렇게 됐냐며 안타까워하며 이유를 물어본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동생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아픈 입장이라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아빠가 파킨슨 병으로 거동이 불편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꼭 한 마디씩 덧붙였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쯧쯧”


 아빠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고 했다. 그렇게 반응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건 세상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픈 몸이지만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한테 다른 이들의 섣부른 동정은 상처가 된다. 확인 사살을 시키는 게 아니라면 제발 누군가를 함부로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소한 그 행동이 상처가 되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사람들도 본인만 괜찮으면 전부 다할 수 있다고 마음먹기 어려운데 몸이 아프면 그게 더 힘들지 않겠는가. 본인이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데 남들이 오히려 측은한 반응을 보이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나약하고 불쌍하다고 여기는 사회적인 가스라이팅을 멈추어야 한다. 아빠는 본인이 몸이 아파서 예전처럼 못 움직이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긴 했어도 그래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에 결국 상처를 받고 무너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동생은 그런 것들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자존심이 센 녀석이라서 이 사실에 굉장히 분개할 것이 분명하다.


 잠깐 고뇌를 하고 있는 그 짧은 사이에 동생이 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연하검사를 잘 마쳤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입안에 약이 묻었을 거라며 입을 물로 헹궈주기만 하라고 했다. 잘했다고 칭찬을 하면서 동생의 마스크를 벗기는데 기절할 뻔했다. 입안에는 하얀 액체들로 입천장부터 혀까지 입안 전체에 약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자기 입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동생은 똘망똘망 크게 뜬 눈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순간 귀여우면서 웃겼다. 생각보다 검사가 일찍 끝나서 병실로 다시 올라가 동생의 입안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재활 치료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 용변을 봤는지 동생에게 계속 물어보며 확인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처음에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길래 불안해져서 틈틈이 기저귀를 확인하니 동생이 인상을 쓰며 내 손을 자꾸 밀었다. 이로써 의사표현이 아주 확실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은 사촌언니가 오전 재활치료 시간에 맞춰서 찾아온다고 했다. 한창 재활을 하고 있을 때 언니한테 전화가 와서 배웅을 나갔다. 문 앞에 서있는 언니를 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재활 치료실을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항상 조심스럽다. 동생의 옆에 있어도 된다는 나의 말을 듣고 언니는 그제야 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선 이내 재활을 받고 있는 동생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한테는 고생이 많다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갖가지의 반찬을 건네주었다. 자신을 알아보겠냐는 언니의 말에 동생은 기억을 하는지 모르는지 그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언니는 재활을 하는 내내 우리와 함께 있다가 일이 있어서 잠깐의 만남을 끝으로 헤어졌고 우리는 세 번째 재활 치료를 받으려고 이동을 했다. 오전의 마지막 재활은 기구 치료인데 갈릴레오라고 해서 경사각을 세워 온몸에 진동을 일으키는 기구이다. 문제는 재활을 받고 있는 도중 동생한테서 심상치 않은 냄새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오늘은 여러  기절할 것만 같은 날이었다. 재활을 끝내고 침대에 누운 동생의 바지 사이로 무언가가 새고 있었다. 20분간의 진동으로 인해 동생이 기저귀는 똥범벅이 되어있었다.  묻은 바지를 벗기려니 다리에도 묻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너무도 참담하였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고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씩 처리해 갔다. 동생이 젊어서 그런지 재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도록 일정을 짜놓았다. 평일에 이런 변수가 생겨버리면 스케줄을 소화하기가 버거워진다. 재활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오면 12 40분이 넘어가고  사이에 네블라이저와 석션, 점심까지 모든  끝내야 한다. 오후 재활은 3시지만 이동을 하는  2 45-50 사이였기에 주어진 시간이 없는데  와중에 기저귀까지 갈려고 하니 너무 막막했다. 가족들은  몸부터 먼저 챙기라며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은 기저귀를 가는 것도 동생 밥을 챙겨주고 가래를 제거하는  모두  손을 거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서 나를 먼저 챙길 수가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일을 미루고  것부터 하면 어차피 내가  일을 나중에  하게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짧은 사이에 전부 해내는  힘겨웠지만 시간 안에 겨우 맞춰서 모든  끝냈다.


 오후에는 내 친구가 왔다. 치킨과 함께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부탁한 이발기도 챙겨 왔다. 재활을 다 끝내고 동생의 헤어를 맡길 예정이다. 동생은 예전에도 내 친구한테 헤어 커트를 받은 적이 있고 함께 여행을 간 적도 있어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친구가 동생에게 자신이 누군지 아냐고 묻자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고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가 치킨을 사 와서 동생에게 자랑을 했더니 제대로 토라졌다. 재활시간에 지시하는 것에도 반응을 안 해주고 집중을 못하고 멍하니 있으니 재활치료사가 동생에게 혹시 화나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웃는다. 치킨 때문이냐고 하니깐 또 웃었다.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동생의 반응에 빵 터졌다. 친구는 다음에 치킨을 사주겠다며 약속을 하며 동생의 마음을 달랬다.


 운동 재활을 끝내고 작업 치료실에 들어가니 동생의 연하검사 결과지를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는 것 없이 전부 식도로 잘 들어갔다고 했다. 아마도 오늘부터는 연하곤란식이라고 해서 죽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삼킬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래서 요플레로 미리 연습을 해보는데 자꾸 입맛만 다시고 삼키지를 않는다. 재활 치료실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길래 도대체 검사는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물으니 동생이 내 말을 듣고 웃었다. 이때부터 나에게 다가올 불안한 미래를 직감하기 시작했다.


 재활이 끝나고 휴게실로 가서 친구가 동생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친구가 6mm로 할지 아니면 2mm로 할지 묻길래 최대한 관리하기 쉽게  짧게 깎아달라고 했다. 내 머리도 아닌데 내가 마음대로 결정했다. 혹시나 해서 친구가 동생에게 2mm도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동생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는다. 마치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여튼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머리를 다 밀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청소 아주머니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호통을 치셨다. 처음이라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말한 뒤 뒷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간호사가 와서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그분이 이야기를 전한 것 같았다. 간호사는 병실에 1명만 가능한데 몰랐냐면서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물어보면서 친구보고 얼른 나가라고 했다. 근데 당장은 나갈 수가 없었다. 혼자 정리를 하기엔 벅찬 상황이라 친구는 마무리까지 도와줬다. 샤워실에 재빠르게 들어가서는 쓰던 것들을 정리하고 휠체어 타 있는 김에 동생 머리를 씻겼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친구가 샴푸 사용설명서를 읽어주는데 내가 알 던 것이랑 달라서 확인하니 드라이 샴푸인 줄 알고 가져온 것이 바디워시였다. 친구가 말하지 않았다면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기고 헹구지도 않을 뻔했다. 동생한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나서 몸이나 두피나 피부에 쓰는 거라서 같을 거라며 핑계를 대면서 수건을 물에 적셔서 열심히 닦아냈다.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웃고만 있길래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이제 대망의 저녁이다. 오늘이 첫 1단계 연하곤란식을 하는 날이다. 점점 단계를 올리면서 일반식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식판을 받아보니 점성증진제를 넣어서 젤리제형으로 만들어진 매실주스와 요플레가 놓여 있었다. 첫 입을 넣고 잘 먹는가 싶었는데 자꾸 입안에서 오물거리기만 하고 삼키지를 않는다. 혀 밑으로 음식물을 모아놓길래 동생에게 다람쥐냐고 물으니 웃기만 한다. 삼키라는 말에는 응하지를 않는다. 맛이 없는지 씹지도 않고 입안에 넣고만 있었다. 그리고 입을 계속 벌리고 있으니 침이 계속 질질 새어 나왔다. 침을 닦은 휴지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음식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슬슬 나의 인내심이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먹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선 협조를 해주지 않는 모습에 냉담하게 말했더니 동생은 내가 화가 난 걸 느꼈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결국은 다 먹이지 못했다. 나중에는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아서 포기해야 했다. 병원에 와서 이렇게 분위기가 살벌해진 것은 처음 일 것이다. 간호사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니 동생 같은 경우는 경관급식과 함께 진행해서 안 먹으려고 하면 억지로 전부 안 먹여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3끼마다 연하곤란식이 나온다는데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 앞으로 밥을 먹일 때마다 오늘처럼 엄청난 실랑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경관급식을 하는 영양식의 종류가 바뀌게 되면서 피딩하는 방법이 달라서 낯설었다. 이제야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데 내가 수행해야 할 과제의 난이도가 계속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동생이 회복이 돼서 할 일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동생도, 나도 한숨을 쉬면서 서로의 마음과는 다르게 잘 안 따라주는 현실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즐거워야 할 저녁시간에 무겁고 차가운 공기만이 우리를 에워쌌다. 동생도 짜증이 났는지 창밖만 보고 있다. 지금 제일 갑갑한 건 동생일 텐데라는 생각에 짜증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해를 하자며 먼저 손길을 내밀었더니 피식하고 웃는다. 내일은 더 잘해보자고 말한 뒤에 동생을 재우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지금도 시간에 쫓기듯 빠듯하게 평일을 보내는데 동생이 제대로 밥을 먹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해야 될 일들이 산 넘어 산이다. 나에게 과제는 계속 주어지고 내 뜻대로 잘 되지도 않는다. 앞으로가 살짝 걱정이 되어 고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곤해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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