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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6 - 남매의 난

2023년 3월 29일 수요일


 자고 있다가 물품을 주러 온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나를 깨우길래 일어났다. 필요한 물품을 받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6시 20분이다. 항상 오는 시간이 다른 걸 보니 나는 그냥 계속 6시 반에 맞춰놓고 일어나야겠다. 오늘은 호흡기 약 여분을 받아놓은 게 있어서 이른 시간부터 네블라이저를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게 살짝 겁이 났다. 어제저녁처럼 또 동생과 실랑이를 하게 될까 봐 시작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요플레를 먹이니 내 우려와 다르게 꿀꺽꿀꺽 잘 삼켰다. 저녁보단 먹이는 게 수월했지만 시간을 재보니 밥 먹는 시간이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침에는 일정이 빠듯하지 않아서 상관이 없지만 오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또 걱정부터 앞섰다.


 요즘에는 동생의 의식과 눈빛이 하루가 다르게 또렷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재활 치료실에서도 처음보다 지시하는 것에 반응속도가 빨라졌다. 담당하는 치료사들도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회복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재활 운동을 해주는 치료사분이 동생에게 나중에 퇴원하게 된다면 이 근처에서 술 한번 먹자는 이야기를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고갯짓 한방에 치료실은 초토화가 되었다. 다른 말에는 반응이 느리면서 자런 건 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여간 머리를 다쳤어도 술을 좋아했던 본성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오전 재활이 끝나고 병실로 이동했다. 올라가자마자 식전 네블라이저와 석션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점심이 나왔다. 1단계 연하곤란식은 요플레와 증진제를 섞은 주스를 준다. 점심이 되니 무슨 일인동생이 먹지를 않는다. 먹이려고 시도를 계속했지만  입안에서 오물거리기만 하고 삼키지를 않는다. 심지어 먹고 있는데 용번까지 치워야 했다. 점심을 중단하고 기저귀부터 갈았다. 하지만 이미 바지에  새어버렸고 나는 빠르게 수습하고 밥을  다시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와중에 담당 전문의가 찾아와 동생의 컨디션을 묻는다. 점심에는 재활 치료가  있어서 연하곤란식을 하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니 먹던  중단시키고 재활을 받으러 갔다가 나중에 다시 먹여도 된다고 했다.


 겨우 기저귀를 갈고 다시 음식을 떠먹이려 하는데 동생이 협조를 안 해준다. 그런데 먹어줄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연하곤란식과 동시에 경관급식도 진행해야 해서 더 이상은 먹이지 못했다. 재활시간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동생이 먹지 않고 버텨서 화가 났다. 그래서 잔소리를 했더니 동생도 기분이 별로인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먹을 거면 먹지 않는 게 좋겠다며 음식을 다 치워버리고 속상한 마음에 혼을 냈다. 동생은 나의 한숨소리를 듣더니 자기도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일수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새어 나와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동생과 때 아니게 침묵의 신경전을 펼치다가 재활을 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재활 치료실로 가니 담당 교수님이 회진 중이셨다. 내가 동생의 상태가 어떤 지 정확하게 물어보니 의식 1단계는 아니고 식물인간상태에서 최소한의 의식을 회복한 정도라고 했다. 현재 동생은 오른팔에 마비가 와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였다. 혹시나 싶어서 나중에도 똑같은 상태냐고 물어보니 의식을 깨우는 약의 용량을 더 늘리고 인지치료까지 진행하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연하곤란식을 할 때 안 먹으면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다 먹여야 하는 줄 알고 힘들었는데 적당히 먹여도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동생은 요즘 자아가 생겼는지 고집이 장난 아니다. 이제는 왼손에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가는지 자꾸 얼굴 쪽으로 손을 올리려고 한다. 그래서 언제 어느새 콧줄을 빼버리는 사고를 칠지 몰라서 노심초사했다.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움직이다가도 기저귀를 갈 때는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준다. 동생을 보니 회복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오늘 재활도 무사히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는데 내가 할 일은 많이 남아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는 거라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24시간도 모자라다. 저녁이 되었는데 안 먹겠다고 하는 걸 겨우 몇 입 먹이고 경관 유동식까지 끝내니 벌써 8시가 다 되었다. 해야 될 일이 늘다 보니 토닥이를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가 항상 오늘과 같다면 삼시 세 끼마다 동생과 싸우느라 바쁠 것 같다. 정신이 너무 없다. 혼을 내면 내 눈을 피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어서 야단도 못 치게끔 한다. 오늘은 밥을 먹이다가 시간이 다 간 것 같다. 정작 나는 잘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지쳐서 입맛이 없기도 하고 급하게 먹으려니 힘들다. 오늘 하루가 유독 고단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면서도 피곤해서 계속 졸았다. 잠을 조금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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