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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7 - 임무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아무도    같던 나의 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 일부러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글을 읽게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동생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모르는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있어서 놀랐다.

 

 평소에도 서로 안부 인사를 묻고 지내던 대학친구였는데 어쩌다 보니 2월은 나에게 연락한 사람들에게만 소식을 전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처음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까 고민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했던 얘기를 계속하는 게 피곤해서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친구 중에서도 딱 한 명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일기를 읽고 연락을 했다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어보니 게시글이 하나 없는 SNS 계정에 링크 하나만 달랑 올려놨었는데 그 경로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글을 읽고 마치 내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며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서 문자만 남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 주변에 든든한 친구들이 많아 보여서 다행이라며 자신도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했다. 이걸 보면 내 이야기를 굳이 직접 전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알게 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이른 새벽부터 친구가 보낸 위로 문자에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고 일어나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동생이 연하곤란식을 시작하며 하루의 일정이 더욱 바빠졌다. 11시 재활을 가기 전까지는 네블라이저, 석션 그리고 아침밥을 먹이고 토닥이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 와중에 나도 밥을 먹어야 하는데 아침은 간단하게 단백질 셰이크와 각종 영양제로 끼니를 해결한다. 오전에는 오후에 비해서 그나마 한가한 편이다. 요즘 들어 가장 힘든 시간 대는 12시 반부터 3시 사이이다. 오전 재활이 끝나고 이송신청을 기다리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10분이 지나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동생은 재활이 끝날 때쯤 항상 볼 일을 본다는 것이다. 물론 대변이 원하는 시간에 나올 수가 없겠지만 하필 다른 시간을 놔두고 제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때 일을 더 만든다.


 재활이 끝나고 병실에 와서 동생을 눕히면 대략 12시 50분쯤이 된다. 혼자서 기저귀를 가는 시간은 30분이 걸린다. 동생의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고 한들 180의 거구를 상대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동생을 왼쪽, 오른쪽으로 굴려서 눕혀가며 뒤처리를 해야 하고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몸은 몸대로 아프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간다.


 그렇게 1시 20분쯤이 돼서 기저귀 교체가 끝이 나면 네블라이저와 석션을 해야 하는데 이게 대략 40-45분이 걸린다. 여기서 더 큰 난제는 동생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이다. 생각보다 잘 따라주지 않는다. 점성증진제를 넣은 주스와 요플레가 나오는데 맛이 없는 건지 잘 먹지를 않는다.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만 하고 꿀꺽 삼키지 않았다. 그래서 먹는 것만으로는 칼로리가 부족하여 경관유동식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밥 먹는 데만 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3시에 재활을 가기까지 이 모든 걸 끝내기에는 너무 촉박하다.


 시간이 안 되면 급식을 중단하고 재활을 받고 나서 먹여도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녁은 또 언제 먹이라는 말인가. 정말 현실과 맞지 않은 제안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단 하루만이라도 간병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 말들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동생이 네블라이저를 하고 있을 때 재빠르게 점심을 해치웠다. 아무래도 동생 밥 까지 먹여야 하니 내가 밥 먹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더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랴부랴 모든 걸 끝내고 오후 재활을 갔다. 그런데 내려가자마자 동생이 또 용변을 봐서 다시 올라와야 했다.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냄새가 나는 걸 보고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는 치료사분의 말에 제발 아니기만을 빌었는데 기저귀를 새로 간지 2시간도 안 돼서 다시 갈아야 했다. 대변을 치우는 건 하루에 한 번도 힘든데 두 번은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말할 곳이 없다. 30분 동안 실랑이를 벌일 생각에 진이 빠져버렸다. 넋을 잃고 다시 병실로 향했다. 갑자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너무 지쳤다. 이미 손목은 욱신거리고 하루에 5시간도 못 자서 몸이 피곤한 상태라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요즘은 동생의 손이 자유로워져서 여기저기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기저귀를 갈고 있으니 손이 자꾸 밑으로 내려왔다.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데도 엉덩이 쪽으로 손이 가길래 그러다 손에 묻으면 안 닦아준다는 협박을 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얌전히 있다가 또  안 보는 사이에 손이 내려와서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싫은 소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제일 힘든 건 자기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동생이라는 걸 알지만 혼을 냈다. 동생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 눈치를 보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혼이 나서 주눅 든 모습을 보니 괜히 안쓰러워져서 동생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었다.


 부모는 애 앞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한숨을 쉬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인내하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괜히 내가 짜증을 내서 동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간병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기저귀 교체와 연하곤란식인 것 같다. 기저귀를 가는 건 온몸에 힘을 써야 돼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연하곤란식은 동생이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내가 손 쓸 방법이 없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지 진짜 엄마가 아니었기에 마냥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동생을 대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냥 4살 터울의 누나였으니 말이다.


 병원에만 있으니 이건 마치 출근은 했는데 퇴근이 없는 기분이다. 나도 퇴근을 하고 집에서 쉬고 싶다. 모든 일을 끝내고 멍하니 앉아서 폰을 들여다봤다. 요즘에는 폰을 할 시간도 많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보니 나만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봄이라는 사실이 남들의 사진을 보니깐 실감이 났다. 봄이 되니 벚꽃을 보러 나들이를 가서 찍은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다.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들도 눈에 보인다. 반면 나는 병원에서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살피는 중이다. 아무 걱정 없이, 돌봐야 하는 사람 없이 본인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힘들다고 느꼈던 예전 상황들이 하찮게 다가왔다. 남을 돌본다는 건 나 자신만을 돌보는 것보다 엄청난 힘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남들이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까 나는 언제쯤 다시 저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울적해졌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편한 옷차림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얼굴에는 웃음기를 잃은 채로 몸은 상당히 지쳐 보이는 내가 있었다.


 그냥 오늘은 나의 존재여부에 대해 질문들이 생겨나는 날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 부여받은 임무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왜 존재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물론 이번 일도 반드시 이겨내고 잘 될 거라고 믿지만 기약이 없다는 게 나를 힘 빠지게 만들었다. 간병을 한 지 벌써 2주가량이 되었다.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호전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겨나갈 힘을 얻었다가도 멈춰져 버린 나의 시간을 생각하면 한 없이 힘이 빠졌다. 이번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일까. 지금 내 인생은 너무 무겁고 어둡게만 느껴진다. 나는 밝고 가볍게 유쾌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은 없지만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 토닥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 분명 어둡고 긴 터널도 끝은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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