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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8 - 엄마의 마음

2023년 3월 31일 금요일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병원 생활은 항상 똑같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물품을 나눠주는 목소리와 함께 가래를 빨아들이는 석션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의 첫인사는 동생이 듣거나 말거나 언제부터 일어나서 혼자 놀고 있었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럼 피식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엄마에게 연락을 하여 병원으로 가져와야 할 물건의 항목을 보냈다. 짐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데 나중에 재활병원으로 옮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엄청난 난관이 예상된다.


 11시 30분이면 통증치료를 받으러 간다. 원래는 11번 구역을 갔지만 오늘은 12번을 안내해 주었다. 12번에는 베드가 있었는데 동생이 휠체어에 앉아서 통증치료를 받을 동안 나는 베드 위에 누워있었다. 보호자와 환자의 위치가 뒤바뀐 것 같아 보이지만 동생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베드에 누워 슬슬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에 엄마가 왔다. 분명 일찍 나왔다고 했는데 평소와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엄마의 손에는 짐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간병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면서 천혜향도 사들고 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졸고 있는 나와 휠체어에 앉아서 통증치료를 받고 있는 동생을 번갈아 보더니 묘하게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왜 환자가 앉아 있고 내가 누워있냐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동생은 오른쪽 뇌가 손상이 되어 시신경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처음에는 시선처리가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게 잘 되는 건 아니지만 동생의 시선을 가장 잘 이끄는 건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휴대폰이었다. 셀카모드로 바꾸어 얼굴을 비춰주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엄마는 카메라를 켜고 동생에게 건네주었다. 동생은 한참 동안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자기 얼굴이 찍히는 걸 알고 찍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셀카도 찍고 자고 있는 내 모습도 찍었다.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 보니 나름 잘 찍었다. 동생이 바라보는 시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통증치료가 끝나고 기구치료를 하기 위해서 자리를 옮겼다. 엄마한테 동생의 배변 활동에 대해 얘기 중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이 돌아왔다. 대변이 바지에 새서 마지막 재활은 건너뛰고 병실로 올라가야 했다.


 이송신청을 하고 나서도 거의 15분가량을 기다렸다. 하필 점심시간이라서 평소보다 더 늦게 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기저귀 가는 것을 도와주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역시 혼자보다 둘이서 하니깐 훨씬 수월하다. 엄마가 있어서 오늘은 기저귀와의 사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네블라이저를 하는 동안 재빠르게 점심을 챙겨 먹었다. 그냥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틈날 때 밥을 먹지 않으면 나중에는 밥 먹을 시간을 놓치게 된다. 동생은 아침에는 요플레와 주스를 거의 다 먹더니 점심만 되면 삼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먹여보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포기하고 경관유동식을 진행하였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시간이 없어서 무언가에 쫓기 듯 일정을 소화했다.


 오후 재활 시간에는 동생의 여자친구가 찾아왔다. 어쩌다 보니 여자친구와 엄마의 첫 만남이 되었다. 엄마에게는 눈길 한 번을 제대로 안 주던 동생이 여자친구는 똑바로 바라본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몹시 서운해했다. 엄마가 동생의 여자친구 앞에서도 질투를 드러내길래 괜히 불편해할까 봐 원래 아들은 엄마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면서 어색한 상황을 모면했다. 어차피 동생을 지켜볼 사람이 많아서 대기실로 나와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곧이어 엄마가 나를 따라 나왔다. 엄마는 동생이 여자친구와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려고 나왔다며 씁쓸해했다.


 동생이 통증치료를 받을 동안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샀다. 오전 회진 시간에 교수님에게 들은 말이 기억나서 동생에게 줄 바나나도 골랐다. 여자친구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자리도 비켜줄 겸 내 당을 충전할 만한 먹거리를 쇼핑하다가 재활실로 돌아가보니 마침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다음 운동 치료를 할 때는 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찡긋거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니 브이까지 한다. 아주 자신의 모습에 푹 빠진  것 같다. 그래도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마지막으로 작업치료를 할 때는 내가 여자친구한테 밥을 안 먹는다고 일러바치니깐 우리 쪽을 쳐다보며 인상을 쓴다. 사람들 대화를 다 알아듣는 것 보면 의식이 아주 멀쩡한 것 같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넣어주니 먹긴 한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그런데 작업치료 시간에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은 어떻게 할지 슬슬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재활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어 엄마와 동생의 여자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 가지 웃긴 점은 동생이 엄마한테만 반응을 잘 안 보여준다는 것이다. 엄마는 저번주에는 음식, 이번주는 재활치료사와 여자친구한테 밀리는 기분을 느꼈다며 상처를 받은 듯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하는 서글픈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들이 엄마를 기억 못 하는 것 같다면서 유독 자신에게만 웃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다.


 엄마는 사람이 뇌를 다치면 제일 먼저 힘든 기억과 사람을 잊으려고 한다면서 본인이 아들에게 불편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며 온갖 추측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봐도 동생이 의도적으로 엄마를 보는 걸 피하는 것 같았지만 저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를 보면 미안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이미 크게 상처를 받은 듯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의식만 차렸으면 하고 바라었는데 점점 욕심이 과해지는 것 같다면서 아들이 자신을 못 알아봐도 괜찮다면서 서글픈 마음을 애써 숨겼다. 왜 그랬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동생만이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엄마와 계속 통화를 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끊고 동생 저녁을 챙겨 주었다. 바나나와 요플레를 섞어서 으깬 채로 주니깐 잘 먹는다. 혹시 몰라서 초콜릿도 녹여서 요플레랑 섞어 먹이고, 고구마빵도 요플레와 섞어서 먹였더니 음식을 삼키는 반응속도가 병원에서 나온 음식만 먹였을 때와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속세의 맛을 보여준 뒤 동생에게 밥을 잘 먹으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며 유혹을 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맛을 보여주다 보니 벌써 바나나 반 개와 요플레를 다 먹었다. 맛있으면 반응을 해달라는 내 말은 무시한 채 다른 곳에 집중하긴 하지만 평소보다 더 잘 먹는다. 아무래도 여태까지 밥시간마다 속을 썩인 이유를 발견한 것 같다. 병원에서 주는 연하곤란식이 맛이 없었던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점도 증진제를 탄 주스를 슬쩍 한입 먹어보긴 했는데 물을 많이 섞은 주스맛이 났다. 솔직히 나라도 안 먹고 싶을 것 같긴 했다.


 저녁을 먹이다 보니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갔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재활이 있어서 시간활용을 잘해야 한다. 동생이 아무래도 병원에서 제일 막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동생에 대한 말을 한다. 오며 가며 얼굴만 본 간병인들은 나에게 동생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역시 젊으니깐 회복속도가 다르다며 경이로워했다.


 오늘 재활을 가면서 이송 담당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한 첫날 자신이 담당을 했었다며 그때와 비교했을 때 보다 동생의 상태가 훨씬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호전이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동생을 지켜보면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동생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좋은 말을 해주신다. 동생은 자신을 향한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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