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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4 - 의식이 돌아왔어요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평소와 같이 오전 6시 반에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물품을 나눠주는 간호사가 바뀌었는지 30분이 지나서야 왔다. 다행히 오늘은 늦잠을 자지 않았다. 또렷한 정신으로 필요한 물건을 이야기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네블라이저로 하루를 열었다.


 오늘은 81 병동 대청소가 있는 날이다. 9시부터 청소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여 그전에 해야 할 일들을 신속하게 끝내야 했다. 우선 바닥에 있는 물건들은 옮겨야 한다 해서 창가 선반에 모조리 올려두었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아침 경관급식도 아슬아슬하게 9시 전에 끝이 났다. 대청소 시간이 되니 병실 안에 있던 침대가 하나씩 없어졌다. 바닥에 코팅 작업을 할 예정이라 병실 안에 있는 침대까지 전부 복도 밖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복도로 나가 보니 환자를 싣고 있는 침대들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었다. 복도뿐만 아니라 휴게실까지도 주차장처럼 침대를 세워놨다. 그 사이에 동생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교수님이 휴게실까지 회진을 돌았다. 평상시에는 항상 동생이 졸고 있을 때 보고 가서 상태를 명확하게 몰랐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동생의 정신이 평소와 다르게 또렷했다. 교수님이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자신의 말이 들리면 고갯짓을 하라는 이야기에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교수님 앞에서도 반응을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일부러 안 움직이는 척을 하는 건 아니었는지 살짝 의심이 생겼지만 말이다. 어쨌든 손을 꽉 지어보라는 말에도 손가락에 힘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가리키며 내가 누군지 않겠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동생은 눈만 끔뻑거릴 뿐이다. 방금 전까지는 고개를 잘 끄덕여놓고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미동도 없다. 움직임은 없지만 눈으로는 내가 누군지 당연히 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과 전문의가 하는 대화를 짐작했을 때 동생은 현재 의식 수준이 1단계까지 온 것 같았다. 의식 수준이 1단계에서 5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동생은 제일 처음 발견되었을 때 4, 5단계였으니 지금 1단계면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교수님은 동생의 의식을 확인했으니 내일은 연하검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떠나셨다.


 병실 청소 때문에 밖으로 나와있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재활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따라 동생이 운동재활을 받는데 뭔가 불편해 보였다. 자꾸 손은 바지춤을 향했다. 물리치료사도 동생의 상태를 보더니 운동을 잠시 중단하고 기저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 하필 재활시간 도중에 장 운동이 활발해져 버렸다. 기저귀 교체부터 먼저 하라는 말에 재활 훈련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다시 올라갔다.

 

 재활한 지 30분 만에 병실로 가보니 침대들이 전부 원상복구가 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저귀를 가는 김에 소변 주머니도 비우고 가래가 자꾸 끓는 것 같아서 석션도 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딴짓 안 하고 필요한 것만 했는데도 재활시간이 벌써 끝나간다.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다며 재활을 빠져도 큰일이 나지 않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하였다. 아무래도 동생 녀석 일부러 재활을 째고 농땡이 부리려고 그 타이밍에 용변을 본 것 같다. 그렇게 오늘만 두 번째 환복을 시키는 중이다.


 오전 재활이 물 건너갔으니 오후 재활은 무조건 다 끝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3시가 되기 전 이송 담당자가 왔다. 나는 동생을 따라 내려가지 않고 침구를 정리한 다음 재활실로 내려갔다. 이럴 때가 아니면 침대 시트를 교체하기가 어렵다. 기회가 왔을 때 잘 활용해야만 한다. 점점 병실 생활의 요령을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동생 여자친구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지는 날이다. 동생을 보더니 전에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 나는 커플 사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단둘 이만 두고 편의점에 들러 깔개매트를 사들고 병동으로 올라가서 침대를 다시 정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내려가 동생의 재활훈련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오늘 하루 수확이 있어서 기분은 좋다. 동생이 교수님께 처음으로 또렷한 모습을 보였기에 정확한 의식상태를 알 수 있게 되었다. 1단계면 의식 명료 단계였다. 아직까지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의사표현을 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많긴 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좋은 신호였다.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회복이 되고 있다. 이제는 혀도 점점 더 앞으로 길게 내밀 수 있게 되었고 목소리를 내진 않지만 입모양도 곧잘 따라 한다. 빳빳했던 목근육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작업치료를 해주는 치료사도 동생을 보더니 회복이 빠른 것 같다고 말해줘서 희망이 더 커졌다.


 가족들은 내가 옆에 있어주니 동생이 자극을 받아서 의식을 더 빨리 회복하는 것 같다며 모든 걸 나의 공으로 돌렸다. 그 말에 내 덕이 아니라며 마냥 겸손을 부리지는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했다. 너무 잘해주면 편하니깐 자신이 스스로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겠지만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모든 것을 오냐오냐 해주진 않았으니 아무래도 깨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호전이 돼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동생이 의지를 가지고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고 생각이 든다.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마지막 미션은 내일 있을 연하검사에 필요한 요플레와 밥숟가락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검사를 받을 정도면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준비물을 사러 나갔다. 내일 검사를 통해 음식물을 삼켰을 때 식도로 들어가는지 기도로 들어가는지를 보고 식도로 잘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동생이 검사를 무사히 통과해서 맛있는 음식을 보기만 하지 말고 함께 먹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분명히 내일도 오늘보다 더 좋아진 모습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고 검사도 잘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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