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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53 - 죄책감

2023년 3월 26일 일요일


 벌써 동생을 간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그만큼 동생의 회복속도도 빨라 보여서 다행이다. 동생이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니 마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 같다. 일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재활 훈련이 없어서 가장 여유로운 날이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평일이랑 똑같이 움직일 수 없는 동생을 하나부터 열까지 케어해야 한다. 다만 재활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안 해도 되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아서 본격적으로 동생을 씻겼다. 우선 각질부터 벗겨내야 할 것 같은데 샤워를 하러 갈 수는 없어서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와 해면이랑 수건으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으니 상의를 갈아입히는데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걸 보니 내가 다 상쾌한 느낌이다. 동생도 청결해진 몸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음 편히 배변활동을 했다.


 동생이 반응을 잘 보이다가 갑자기 반응을 안 보일 때나 말은 안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보이면 설마라는 말과 함께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해 본다.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병실에 있는 간병인들이 그 냄새를 맡고 하나같이 자신의 맡은 환자의 기저귀를 확인해 본다. 그럴 때면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하면서 냄새 공격을 당하게 만들어 미안했다. 하루에 한 번씩 대변을 누고 체중이 오르는 걸 보니 내가 너무나도 간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그냥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끽하게 된 시간적 여유에 해이해졌는지 실수를 계속했다. 피딩을 하던 중 영양식팩과 연결되어 있던 호스가 빠지면서 침대 시트 위에 그대로 콸콸 쏟아졌다. 그 덕에 사방팔방으로 다 튀어서 묻어있었다. 심지어 찐득하기까지 했다. 역시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익숙하다고 자신만만할 때가 가장 실수를 많이 하고 위험하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소변줄이 계속 새서 새롭게 갈아입힌 환자복이 소변으로 물들었다. 오늘만 벌써 2번째 환복이었다.


 자기 전에는 네블라이저를 하고 석션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어차피 네블라이저가 오래 걸리니깐 그 사이 씻고 왔더니 하품을 했는지 산소마스크가 동생의 눈까지 올라가 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너무 놀라서 빨리 산소마스크를 입으로 갖다 대고 괜찮은지 확인을 했다. 하품을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올라간 적은 없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너무 당황했다. 이번 일을 통해 동생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자꾸 실수를 한다. 나한테는 여유를 주면 안 되겠다. 아주 힘들게 굴려야 정신을 차리고 있는 모양이다.


 휠체어를 타고 재활을 가는 대신 동생이랑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아무런 대꾸를 안 해주겠지만 괜찮다. 나는 누가 대답을 안 해줘도 꿋꿋하게 혼자서 잘 논다. 동생집에 붙어 있던 사진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기억이 나는지 질문도 했다. 아직 말을 못 하니깐 눈을 깜박이거나 손으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이게 바로 바디랭귀지다. 그런데 동생은 자기가 귀찮으면 응답을 안 해준다. 그러면 옆에서 자꾸 괴롭혀준다. 한시도 잠을 못 자고 깨어있게 계속 옆에서 건든다. 동생을 자극시키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음식이다. 항상 밥을 먹기 전에 냄새나 맡아보라고 동생 코에 갖다 댄다. 그러면 동생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면서 침을 꼴깍 삼킨다. 역시 음식에 크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동생이랑 놀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두피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 머리를 맨날 감겨줄 수는 없고 노린스 샴푸로 씻겼는데 두텁게 붙어있는 비듬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물 없이 쓰는 드라이 샴푸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게 두피의 각질을 건조하게 만드는지 딱지가 생긴 것처럼 뜯어내진다. 처음에는 구레나룻만 벗겨내기 시작했는데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다고 했던가 점점 영역이 확장된다. 재밌어서 계속하다가 점심도 안 먹었다. 원숭이가 이를 잡듯이 나도 동생 머리에 딱 붙어서 비듬딱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중 엄마와 할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영상통화를 하고 밥을 챙겨 먹으라는 소리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편의점으로 갔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곳이 많다. 유일하게 24시간 하는 열려있는 곳이 지하에 있는 편의점이다. 간단하게 인절미 생크림빵과 과자를 사서 올라갔다. 먹기 전에 동생의 코에 갖다 대면서 자랑을 하고 한입을 하는데 맛이 이상하다. 유통기한은 분명 오늘까진데 인절미빵에서 시큼한 맛이 올라왔다. 상태를 보니 인절미떡이 죽처럼 퍼져있다. 내 입이 이상한 건지 한번 더 떠먹어 보았지만 계속 먹다가는 배탈이 날 것 같은 맛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대로 들고 편의점으로 갔다. 구매한 빵이 상한 것 같다고 말하니 상품을 바꿔주었다. 그런데 같은 맛은 재고가 없어서 같은 종류 다른 맛으로 바꾸어 주었다. 혹시나 바꾼 것도 상했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입 먹었는데 다행히 멀쩡하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동생을 너무 약 올려서 이런 일이 생겼나 보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약 올렸다.


 이제 느끼한 크림을 먹었으면 칼칼한 국물음식을 먹어줘야 느끼함이 내려간다. 저녁으로 김치찌개 컵밥을 먹었다. 동생 옆에 딱 붙어 각종 반찬들과 함께 먹었다. 티비에 정신이 팔려있던 동생은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침만 삼켰다.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그렇게 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하니깐 동생이 웃었다. 그 순간을 영상으로도 담았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남김없이 싹 다 먹었다. 저녁을 먹고 잠시 앉아 있는데 간병을 하면서 아킬레스건염이 생겼는지 발목과 발이 퉁퉁 붓고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파서 얼음찜질을 하니 통증이 약해졌다. 여전히 발가락에 부기는 있긴 하지만 처음에 아팠던 것만큼 아프지는 않다.


 동생도 그렇고 나도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동생 같은 경우는 재활 통해 의식을 더 빨리 깨우려고 시도 중인데 우선 나중에 기본적인 동작을 하려면 신체를 움직여줘야 한다. 누워만 있으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근육을 쓰는 힘이 줄어든다고 앉아있는 상태를 만들면 좋다고 하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동생을 계속 침대에 앉혀두고 있었다. 눕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동생은 비스듬히 침대에 기대서 졸았다. 기저귀를 가는 것도 옷을 환복 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생을 가만히 놔두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초보 간병인이다 보니 동생의 자세를 변경할 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가 못 미더워서 자기가 스스로 지탱을 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확실히 근육경직이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본의 아니게 동생의 근육을 쓰게끔 운동을 계속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할 줄 아는 것이 확실히 많아졌다. 동생은 누워서 왼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 온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까지 몸을 움직여보려고 한다. 계속 손가락으로 줄만 있으면 만지작 거리더니 오늘 손을 잡아보니 힘이 너무 세져서 깜짝 놀랐다. 얼굴까지 팔을 들어 올리기 위해 자꾸 올리려고 시도를 하기도 한다.


 동생한테 장난을 치며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을 보였었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 하나같이 다들 경오라면 남들은 1-2년 걸린다는 재활도 몇 개월 만에 끝낼 애라면서 자기가 답답해서라도 혼자서 연습하고 있을 거라고 말하던데 너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녔길래 전부 너를 저렇게 보냐?”


  동생은 이 말을 듣고 웃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너는 할 수 있다면서 동생 옆에서 계속 세뇌시키는 중이다. 좋은 이야기도 들려주고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심어줬더니 다른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혼자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려고 움찔거리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애쓰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동생 앞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눠서 그렇지 다 듣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부정적으로 말할 것도 없긴 하지만 상처가 될 만한 말들도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확실히 동생이 의식이 있다는 건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 동생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스리슬쩍 내가 어렸을 때도 친동생인 자기보다 사촌 동생들을 더 예뻐하고 챙겨줬었다며 서운한 듯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꺼낸 이야기였겠지만 그런 마음을 가졌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미안했었다. 어릴 적엔 동생이 말을 안 들어서 밉기도 하고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으니 마냥 예뻐하지만 않았던 걸 인정한다. 하지만 사촌동생들은 가끔 만나고 좋은 모습만 보니깐 예뻐했던 거였고 동생은 24시간 내내 같이 붙어 있어서 계속 싸우게 되니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성인 되고 나서 집안 어른들은 너네는 어릴 때는 그렇게 싸우더니 커서는 친하게 지낸다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 미운 정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저귀를 다 갈고 나서 눈을 멀뚱하게 뜨고 있는 동생을 보며 말했다.


“야 네가 예전에 그랬잖아. 내가 니보다 사촌동생들을 좋아하고 더 챙겨준다고 했잖아. 나 이번에는 너를 챙겨주고 있다. 그러니깐 이제부터는 서운해하면 안 된다? 야, 그리고 나는 걔네들을 예뻐하긴 했지만 똥기저귀까지 갈아줘 본 적은 없어. 이건 네가 처음이야. 네가 내 동생이니깐 해주는 거지 사촌동생이었으면 똥기저귀까지 갈아주면서 이러고 있겠냐? ”


 말을 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올라와서 울컥할 뻔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동생은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어주었다. 지금 내가 동생을 돌보는 이유는 어쩌면 어렸을 적에 주지 못한 사랑을 이제 와서야 주기 위해 하늘에서 기회를 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자주 꾸던 꿈 중에 동생이 나오는 꿈이 하나 있다. 초등학생 때 일이었는데 학원 점심시간에 편의점을 가서 친구들과 컵라면을 먹었었다. 동생은 친구들과 같이 가지 않고 굳이 나를 따라와서 스파게티 콕콕을 골랐다. 그러면서 나에게 뜨거운 물을 버려달라고 했는데 귀찮게 하는 게 싫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빨리 먹고 놀고 싶은 마음에 알아서 하라며 내버려두었다. 그때가 동생이 한 1, 2학년 때였을 거다. 어린 동생이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편의점에 있던 다른 손님이 동생을 도와주었다. 그러고는 동생이 물을 다 부은 스파게티 컵라면을 들고 해맑게 나에게로 왔다.


 동생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동생이 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냥 단지 하기 싫어서 안 해줬던 것이 죄책감으로 남았는지 가끔가다 동생이 그때의 어린 모습 그대로 내 꿈에 나왔다. 어린 시절의 서운함은 생각보다 오랜 상처로 남으니 말이다. 이제는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성장을 해서 그 잘못을 영영 갚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갚을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지금 동생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오히려 묵혀져 있던 마음의 짐을 하나씩 덜어내는 중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에 못다 한 누나 노릇을 지금에서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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