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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2 - 감정의 물결

2023년 4월 4일 화요일


 나는 병원의 유명인사와 함께 지내고 있다.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걸 보며 사람들은 자기 일인 것 마냥 축하해 준다. 휠체어를 타고 가기만 해도 젊으니깐 하루가 다르게 호전이 된다며 칭찬을 하고 눈빛이 또렷해질수록 앞으로도 더 좋아지겠다면서 덕담을 해준다. 그러다 보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와 만나기만 하면 동생이 전보다 괜찮아지는 게 보인다며 큰 병이 아니니깐 금방 나을 것이라고 응원을 한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항상 새벽에 물품을 받을  눈을 반쯤  채로 있어서 나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물품 담당자는 나를 알아봤는지 아는 체를 했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나를 보더니 씩씩하게 잘하고 있는  같다면서 격려를 해주셨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라긴 했지만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사람들의 관심 덕분인지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같다. 불과 2 전만 해도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 이제는 의식도 돌아오는 중이고 음식도 씹고 삼키는  보면서 대견하 생각이 든다. 동생은 지금 갓난아기가  것처럼 사랑을 받고 있다. 동생이 손짓  번만 해줘도 칭찬을 받고 웃기만 해도 사람들은 좋아한다. 어린 시절 이후로는 다시 누릴  없는 관심을 받는다. 언제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있겠는가. 그렇지만 지금은 누릴  있을 만큼 충분히 누린  같으니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오늘은 특별할 것이라고 할 게 없었다. 새벽에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진행했다는데 나는 자느라 본 기억이 없다. 연하곤란식은 여전히 1/3에서 1/2 정도만 먹기 때문에 추가로 영양식 400ml를 더 먹여야 했다. 아, 한 가지 깜짝 이벤트로는 콧줄에 또 손을 댔다는 것이다. 그나마 15센티 정도만 빼서 교체는 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넣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엑스레이를 다시 찍을 필요는 없었다. 콧줄을 교체하면 엑스레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음식을 못 먹기 때문에 자칫하면 점심이 뒤로 미뤄질 뻔해서 아찔했지만 이것만 빼면 괜찮았다. 동생이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나고 있다. 계속 사고를 치면 어쩔 수 없이 억제 장갑을 씌어서 손의 자유를 구속시키는 수밖에 없다. 손바닥을 찰싹 때려주면서 한번 더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손을 묶겠다며 협박을 했다. 과연 내 말을 알아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새벽에 깨어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흐린 날씨 탓인지 동생은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였다. 재활 치료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졸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밥시간에도 조느라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억지로라도 입에 넣어보지만 입에 넣은 음식이 흘러내릴 때까지 물고 있었다. 무언가를 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동생을 보니 속이 타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옆에 있다한들 결국은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이겨내야 하는 싸움인데 동생의 모습을 보니 병원 생활이 언제쯤 마무리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여자친구가 자기를 보러 왔는데도 처음보다 반응이 시큰둥했다. 며칠 전에 엄마가 아들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니 대꾸를 안 한다. 설마 나를 비서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웃기만 한다. 이런 걸 보면 또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알고 웃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장 운동이라도 활발해서 다행이었다. 오후 재활을 갔다 와서 기저귀를 보니 성공적인 배변을 했다. 병실에 있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똥 냄새를 맡아야 한다. 꼭 동생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가 4명이나 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들 병실 안에서 배변을 처리하다 보니 냄새가 수시로 진동했다. 더욱이나 배변활동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함께 해야 했다. 이제는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어디에서 기저귀를 교체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신기한 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똥냄새는 하나같이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것만의 묵직한 독가스 느낌이 있다. 그렇게 병실은 화생방을 능가하는 곳이 된다. 농담이 아니라 밥을 먹고 있을 때 냄새를 맡고 있으면 내가 밥을 먹는 건지 똥을 먹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냄새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들의 배려를 많이 받은 날이기도 했다. 재활을 오며 가며 마주쳤던 아주머니가 깔개패드를 대량으로 구매했다며 나에게 나눠주었다.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어차피 오며 가며 마주칠 건데 그때 줘도 된다고 말하며 거절을 했다. 결국은 나중에 만났을 때도 돈 받는 걸 한사코 거부하면서 그냥 주는 거라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동생 저녁밥을 먹이고 영양식을 넣는 동안 알람을 맞춰놓고 잠시 잠이 들었다. 저녁에는 소변 주머니를 비워야 했는데 자고 일어나서 하려고 보니 내가 잠든 사이에 간호사분이 대신 비워주고 가셨다. 나중에 동생의 하루 소변량을 물어보면서 저녁에는 자신이 비웠으니 용량은 따로 적을 필요가 없다며 말해주었다. 나를 깨워도 되는데 괜히 내가 해야 될 일을 대신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서 네블라이저와 석션을 하면서 오늘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 이후에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정이 빨리 끝났다. 저녁을 먹이고 오후 9시에 네블라이저를 시작해서 석션까지 하면 보통은 9시 50분쯤 끝나는데 오늘은 9시 30분에 모든 걸 마쳤다. 모처럼 일찍 씻을까 싶어서 샤워실을 갔더니 누군가 사용 중이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수시로 샤워실이 비었는지 확인을 했지만 10시가 넘어서까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시가 되면 소등을 하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병실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 창 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창가 자리라서 바깥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었다. 물론 아파트뷰이긴 하지만 창문 밖을 볼 수 없는 자리보다는 나은 것 같다.


 갑자기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생각이 많아졌다. 남들은 전부 잠들어 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 혼자 깨어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책임감이 무겁고 어려운 일이었다. 동생이 좋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만 내 인생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침울해졌다. 일상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기에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인 것 같다. 심지어 그 터널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가족을 위해 희생 중인 상황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어서 더 괴로운 것 같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씩 자신만의 영역을 굳혀가는 것을 보니 병원에서 똥 냄새만 맡고 있는 나와 비교가 되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금이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1평 남짓한 병실 공간과 몸을 하나 겨우 가눌 수 있는 간이침대가 전부였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다양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답답함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동생이 호전되고 있는 건 분명 기쁜 일인데 무엇이 나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여 벚꽃놀이를 즐기는 사진을 올리고, 티비를 틀면 자기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나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살아가면서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보다는 상황이 좋아 보인다.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성장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게 보이는데 나만 멈춰버린 기분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보다 더한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봐 두렵고 무서워졌다. 간이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꿈꾸는 것들에 한 발짝 다가가는 중일까 아니면 멀어지는 중일까. 분명 이 시련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오늘따라 유독 마음이 흔들리는 밤이었다. 내 인생은 어디로 항해 중인 걸까. 아직까지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지만 언젠가는 깨닫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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