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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3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1 - 2단계 연하 곤란식

2023년 4월 3일 월요일


 이제는 병실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다. 간혹 가다 간호사가 새벽에 라운딩을 돌면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검사에 대한 설명하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 잠결에 들어서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필요한 물품을 챙긴 다음 로비로 나가서 체온을 잰다. 코로나라고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체온을 체크해서 작성을 해라고 하는데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소변통은 점심에 한번 저녁에 한번 이렇게 비우고 용량을 작성한다. 이제는 이런 소소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석션하는 것도 서툴러서 동생이 컥컥거리기만 해도 무서웠는데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익숙하게 가래를 제거한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2주 만에 완벽한 적응을 하였다.


 간호사가 새벽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부터는 연하곤란식 2단계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 것 같다. 이 말은 아침에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새벽에 알려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됐다. 2단계는 1단계와 다르게 반찬가짓수도 많이 나왔다. 연하곤란식 1단계는 요플레와 점도 증진제를 넣은 주스 딱 2가지만 나왔다면 2단계에서는 미음과 갈아서 만든 반찬들까지 5가지 정도가 나왔다. 받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음식이 나와서 당황을 했다. 동생의 호전 속도가 빨라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 건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밥 먹이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한숨만 나왔다.


 동생에게 처음으로 2단계 연하곤란식을 먹여봤다. 두, 세입 정도는 잘 먹는가 싶더니 이내 오물거리기만 하고 삼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입 안은 또 커서 그런지 음식을 넣어주는 대로 다 들어간다. 옆에 앉아서 밥을 먹이다 보니 입안 깊숙이까지 확인하는 게 어렵긴 하다. 그런데 동생한테 입을 벌리라고 하면 또 벌려주니깐 한 숟갈씩 넣다 보면 어느샌가 입 속에 음식이 가득 차있다. 제발 입에 있는 것만이라도 삼켜 달라고 사정을 해야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조금씩 나눠서 삼켜준다. 얼굴을 보면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는 것 같은 표정이라서 밥 먹이기가 참 어렵다. 티비를 틀어놓으면 거기에 빠져서 밥 먹는 것에 집중을 안 하고 티비를 끄면 자꾸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수술을 하고 난 후부터 누워있을 때도 항상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재활을 받고 나서는 처음보다 나아졌지만 아직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는다. 혼자서 고개를 돌리지 않지만 휴대폰이나 티비를 보여주면 거기에 집중을 해서인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정중앙으로 향한다. 그런데 밥시간이 되면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1/3 정도 먹으면 경관유동식 400ml까지 함께 먹여 한 끼를 완성했다.


밥을 먹이고 나서는 얼굴을 닦고 면도를 해주었다. 왠지 동생의 팔자가 제일 편해 보인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누군가 전부 해주니깐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누워있고 싶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누워 있으면 간호사가 라운딩을 돌면서 들락날락거려서 신경이 쓰었다. 그리고 동생이 사고를 치지는 않는지 수시로 감시해야 한다. 특히나 동생의 손이 자유로워진 지금 어제처럼 콧줄을 뺄까 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집에서 마음 놓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 신경 쓸 게 없는 삶이 정말 행복한 것이었단 걸 여기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마치 커다란 신생아를 돌보느라 내 시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요즘 동생은 재활시간을 제일 즐기는 것 같다. 나보다 재활 치료사분의 이야기에 더 큰 반응으로 보이고 행동도 곧잘 따라 한다. 특히나 재활 시간에 많이 웃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병실에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항상 밥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기본적인 것들을 수행하기 바빠서 동생과 웃으면서 지낼 시간이 없다. 추억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내서 소재도 고갈됐다. 이제는 몇 주 동안 같이 있었다고 동생도 나를 지겨워한다. 역시나 가족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화목한 법이다. 요즘 너무 붙어있었더니 서로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힘든 내색을 비춰서 동생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오전 재활을 끝내고 기저귀를 수시로 확인해 봤지만 이상이 없었다. 내가 잘 못 먹이고 있는 건지 평상시에 그렇게 잘 나오던 대변이 왜 어제, 오늘 이틀 동안이나 소식이 없는지 불안해서 계속 기저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계속 동생 상태를 점검을 하느라 마음 편히 쉬지 못하다가 오후에 통증 재활을 하는 동안은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때는 동생도 자고 나도 잔다.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다 끝났다는 치료사의 말도 못 듣고 고개를 꺾은 채로 잠을 자다가 겨우 깨어났다. 순간 여기가 어딘지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의 인기척도 못 느끼고 깊이 자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치료사분은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둘 걸 그랬다면서 간병을 하다 보면 피곤할 거라며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러고도 아직 재활이 두 가지가 더 남았다. 그래도 자다 일어나니 정신이 살짝 깨어났다. 이제는 운동치료와 작업치료만 하면 된다. 내가 보기에는 동생이 운동 치료 시간을 힘들어하면서도 제일 즐기는 것 같다. 아마 재활 치료사분들이 친절하게 대하니 놀이시간처럼 느꼈나 보다. 치료사는 동생이 하루가 다르게 초점도 명확해지고 눈빛이 또렷해지는 게 육안으로도 관찰이 된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항상 왼쪽으로만 쏠려있던 시선이 이제는 제법 가운데를 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작업치료 시간에도 음식을 삼키는 반응이 점점 더 좋아졌다고 얘기해 주길래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은 그래도 저녁밥을 제일 많이 먹은 듯하다. 저녁밥을 먹는 도중 동생은 입으로 소리를 내려고 했다. 이제는 씹고 삼키는 작업을 계속해서 목구멍과 혀가 자극이 되었는지 그전보다 말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복부에 힘을 주게 하고 아, 에, 이 , 오, 우를 시켜보니 아주 작지만 따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조만간 아무렇지 않게  말부터 할 것 같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확인하니 언제 나온 지도 모를 만큼 적은 양의 대변이 나와있었다. 그 전과 다르게 이제는 음식을 직접 씹어 먹어서 그런지 묽은 대변이 아니라 꾸덕한 제형이었다. 냄새도 안 나서 이제는 대변이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기저귀를 아예 벗겨내고 봐야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틀 연속이 아니라 오늘은 쾌변을 해서 안도감이 들었다. 아니면 관장약을 이용해야 하기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회복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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