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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pr 2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0 - 벚꽃놀이

2023년 4월 2일 일요일


 병원에서 일요일은 다른 요일보다 제일 한가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재활 훈련이 없어서 아침부터 분주할 필요가 없어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연하곤란식을 시작한 지도 벌써 6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으로 바나나 반 개와 요플레를 섞어서 먹였더니 잘 먹는다. 처음으로 망고맛 주스도 나왔는데 끈적한 식감 때문인지 주스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처음보다 먹는 양이 늘어나고 있다. 연하곤란식을 시작할 때는 기도로 넘어갈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삼키는 기능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이제는 먹기 싫은 표정을 지어도 봐주지 않는다. 항상 먹을 때마다 이걸 통과해야 일반식을 먹을 수 있다며 혼자만 빼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라는 반협박을 곁들인다. 그런데 동생은 이제 나의 잔소리에 적응이 됐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동생도 오늘은 여유로운 날이라는 걸 아는 건지 자꾸만 졸았다. 생각해 보니 원래라면 동생이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는데 오늘따라 쉽게 일어나지를 못한다. 아침밥을 먹고 나도 나른했는지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바로 재울 수는 없어서 소화를 시킨 다음 토닥이를 해주고 눕혔다. 누워서도 욕창 방지를 위해서 수시로 몸을 돌려주면 그 움직임에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보통 같았으면 11시쯤에 용변을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하루종일 대변을 한 번도 누지 않았다. 갑자기 하루에 한 번씩은 나오던 게 안 나오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먹는 양이 적어서 변비가 생기는 건 아닌지 무엇이 문제인지 되짚어 봤지만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동생이 잠든 사이에 나도 옆에 있다가 따라 잠이 들었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2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오늘이 가장 한가한 날이었다. 동생은 깨어나서 나가고 싶은 건지 벚꽃이 피어있는 창 밖만 바라봤다. 점심을 먹고 할 것도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동생한테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자고 몇 번 제안하니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기에 매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알 수 있지만 표정만 봐도 나가고 싶다는 걸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송 담당자 없이 어깨너머로 배운 요령을 살려서 동생을 혼자 휠체어로 옮겼다. 처음 해보는 거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안정적인 안착이었다. 사실은 동생이 불안했는지 평소보다 다리에 더 힘을 주긴 한 것 같았다. 동생이 전적으로 나를 못 믿고 다리에 힘을 준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옮길 수 있었다.


 병실을 나가기 전 혹여나 추울까 봐 이불도 덮어주고 천혜향도 하나 챙겨서 병원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가서 창 밖을 보는데 사람들이 따듯한 봄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니 따스한 바람이 살결을 스쳤다. 동생과 함께 벚꽃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벚꽃나무가 더 많은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는데 계단을 오를 수가 없어서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일단 경사로가 있으면 무조건 올라가 봤다. 주차장으로 가보니 엘리베이터가 있길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탔는데 원하던 통로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휠체어를 끌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팔에 근육이 생길 것 같았지만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열심히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길을 걷다가 주차가 되어 있는 차 안에 있는 강아지 두 마리를 발견하고 동생에게 보이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강아지를 보며 시선을 떼지를 못했다.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꽃잎도 만져보게 하고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산책로까지 걸었다. 바깥으로 나온 동생은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문득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져서 옆에서 캐물었다. 물론 물어본다고 바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고갯짓이라도 해주니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나름 만족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실컷 놀고 나서 벤치에 앉아 천혜향을 꺼내 들었다. 내가 먹으려고 가지고 나왔는데 동생이 눈을 떼지 못하길래 한입 줘봤다. 처음에는 과일 알맹이만 벗겨내어 즙만 짜 먹으라고 입에 넣어줬는데 그대로 반토막을 베어 물었다. 그런데 정말 야무지게 씹고 삼킨다. 내가 봤던 것 중에 입을 가장 현란하게 오물거리고 밥을 안 먹으려고 하는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 먹었다. 이 정도면 고기를 줘도 바로 씹고 삼킬 수 있을 것 같다. 또 줄까라는 말에 동생은 얌전히 입만 벌렸다. 껍질을 하나하나 발라서 알맹이만 입안으로 넣어주었더니 오랜만에 느껴지는 새콤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생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그 상큼함이 나한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동생은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느라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히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휠페어를 타고 앉아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데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왔다 갔다 했으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동생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 옆에서 잠깐 한숨을 돌렸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어 급식을 받아보니 처음으로 포도주스가 나왔다. 냄새를 맡아보니깐 달콤한 게 맛있을 것 같다. 동생의 입맛에도 맞았는지 나름 잘 먹는다. 그리고 이제 요플레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다. 이번 저녁은 나름 순조롭게 먹일 수 있었다. 오늘이 제일 많이 먹은 날일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느긋하게 흘러갔다.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말이다.


 동생에게 밥을 먹이고 나서야 내 저녁이 시작되었다. 편의점에 잠시 들러 먹거리를 구매하고 배선실에 가서 조리를 했다.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음식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향했는데 처참한 광경을 보고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잠깐의 순간동안 동생은 사고를 쳤다. 얼굴을 보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기 콧속에 있던 콧줄을 시원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미 내가 도착했을 때는 호스가 콧속에서 반쯤 이상 빠진 상태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동생은 콧줄로부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내가 있으면 얼굴에 손이 가기만 해도 제지했는데 방해꾼이 사라지니깐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여간 내가 가만히 쉬는 모습을 못 보는지 느슨해졌던 마음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줬다. 사고뭉치를 혼낸 뒤 간호사에게 이야기하여 새로운 콧줄로 교체하였다. 동생은 잠시동안 양쪽 콧구멍이 뻥 뚫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유는 얼마 못 갔지만 말이다. 그래도 자기가 사고 친 걸 아는지 호스를 다시 넣을 때 움직이지도 않고 얌전히 있다. 동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영양식을 잠시 중단했더니 저녁이 늦어졌다. 콧줄을 교체하고 엑스레이까지 찍고 나서야 다시 먹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지체돼서 11시가 넘어서야 재울 수가 있었다.


 동생도 이제 슬슬 의식이 돌아오니 갑갑함도 느끼고 불편한 게 많을 것이라는 건 이해를 한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놔둘 순 없다. 콧줄을 제거하려면 동생이 음식을 먹는 것에 문제가 없어야만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콧줄을 빼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동생을 보면서 하루하루 의지를 가지고 얼른 회복을 해서 병원을 함께 탈출하자며 다짐을 전했다. 오늘 한 가지 더 약속을 했다. 밥을 잘 먹고 콧줄에서 벗어나자고 말이다. 그전까지는 절대로 직접 빼지 말라고 강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약속을 어기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계속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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