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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3 - 치킨과 함께 깨어난 날

2023년 4월 5일 수요일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진 날이다. 7년 전 봉사활동에서 만난 친구와 연락이 되어서 조만간 만나기로 했고 때 아니게 병실도 이동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디어 동생이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한꺼번에 상상만 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동생은 뇌경색으로 인해 현재는 오른쪽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왼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시선도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져서 물체를 따라 시선이 중앙까지 오지만 아무 대상 없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옮기는 것을 힘겨워했다. 오른손은 마비가 와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담당 교수님은 동생 회복을 위해서 오른쪽에서 자극을 많이 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른쪽에 창문이 있는 자리였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스쳐 지나가듯이 말했는데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오늘 교수님이 말했던 병실자리가 비워지자 바로 우리를 이동시켰다. 원래 머무르고 있던 자리는 창가가 왼쪽이었는데 이왕이면 고개 돌리는 연습을 하면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수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오후에 동생이 재활 치료를 받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병실을 이동하라는 전화가 와서 당황했다. 심지어 짐도 상당히 많고 다음 주면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할 거라서 처음에는 번거롭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병실을 쓰면서 나를 많이 도와줬던 간병인분이 호실을 옮기냐고 물어봐서 옆방으로 옮긴다고 얘기했더니 간호사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러고선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얘기했다. 원래는 다인실에서 1, 2인실로는 이동이 가능하지만 다인실끼리는 이동이 불가능한데 교수님께서 특별히 따로 부탁한 사안이라서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다른 환자분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기에 웬만하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기껏 동생을 생각해서 내린 결단이었는데 그 뜻도 모르고 교수님의 배려를 귀찮다고만 생각해서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이 글을 본 사람들도 비밀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게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상황이다.


 짐을 옮기고 있다 보니 새롭게 옮긴 병실에서 우리 앞자리에 있던 간병인분이 조언을 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그 조언이 감사했지만 차근히 정리를 하고 있는데 마구 어질러진 짐 사이에서 계속 물건을 어디 둬야 하는지 위치까지 멋대로 정하고 옮기려고 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오히려 그 친절이 부담스러워졌다. 조금 이따 정리하려고 놔둔 물건을 계속 옮기시길래 직접 하면 되니깐 안 도와주셔도 된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계속 도와주겠다고 하는 걸 한사코 사양하고 혼자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내 나름대로 물건을 정리하는 방식이 있는데 자꾸만 본인의 방식을 강요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물품을 정리하는데 모든 위치가 반대 방향으로 바뀌어서 낯설었다. 한창 물건을 정리하고 있으니 이송 담당자가 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동생도 갑자기 바뀐 병실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게 짐을 다 정리하고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오랜만에 지코바 양념 치킨을 선물했다. 항상 병원에서 나온 밥을 맛없게 먹고 있는 동생을 보며 치킨을 먹을 거라고 자랑을 했다. 나에게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엄청 얄미웠을 거다. 저녁을 잘 먹으면 맛이라도 보여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동생이 저녁밥을 다 먹었을 때쯤 마침 1층에 배달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갔다. 치킨을 가지고 올라와 식판 위에다 올려두니 동생이 침을 홍수처럼 질질 흘렸다. 동생을 보고 그 정도로 침을 흘리냐고 놀리니깐 피식하고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옆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치킨을 보며 계속 침을 흘리길래 제일 야들야들한 부위를 으깨서 양념과 함께 맛 보여줬다.


 항상 싱거운 병원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자극적인 속세의 맛을 느껴서인지 둔했던 입술과 혀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입을 다물고 먹지를 못해서 침을 질질 흘렸는데 치킨을 넣어주니 양념 한 방울도 아까웠는지 아주 야무지게 입을 다물고 꼭꼭 씹는다. 심지어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삼키라는 말을 다섯 번은 넘게 해야 겨우 삼켜주는데 이번에는 ‘꼴깍’이라는 구령을 외치지 않아도 스스로 잘 삼킨다. 이렇게 잘 먹는 애가 매 끼니마다 속을 썩이니 답답할 노름이라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치킨을 맛 보여주고 경관유동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는지 동생이 사례가 들린 것처럼 컥컥거렸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걱정이 되어 잠시 영양식을 중단하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말을 하려고 하는데 콧줄로 영양식이 들어오니 그런 증상을 보였던 것 같다. 동생은 스스로 소리를 내려고 용을 썼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어서 영상을 찍으며 단어를 이야기해 보라고 시켰다. 누나라고 불러보라고 했는데 동생이 제일 먼저 꺼낸 단어는 다름이 아닌 ‘엄마’였다. 일단 처음에는 제일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ㅇ’ 이 들어가는 단어부터 시켜보았다.


“우해봐 우.”

“우”

“유해봐 유.”

“유”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아무 단어를 시켜보았다. “아”는 할 줄 아니깐 그나마 쉬워 보이는 ‘마’를 시켜보았더니 이번에는 내가 말하는 단어를 따라한 게 아니라 동생이 스스로 단어를 말했다.


“그럼 이번엔 마해봐. 마.”

“엄... 마..”


 단어를 말할 거라고 생각도 않아서 너무 놀란 나머지 다시 확인을 했다.


“지금 엄마라고 한 거야? 아기들이 맨 처음에 엄마라고 말할 때 이런 기분인 건가?”


 내가 저 말을 하니 동생은 피식 웃었다. 이번엔 다른 걸 시켜보았다.


“그런데 나는 네 엄마가 아닌데. 누나 해 봐 누나.”


 그런데 이 자식 의식이 확실히 돌아왔나 보다. 평소처럼 절대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건 잘 따라 하면서 누나라는 말은 입모양을 뻥긋거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괘씸해하니 아주 즐겁게 웃는다. 오늘은 심지어 소리 내어 크게 웃기까지 했다. 너무 어이가 없다. 치킨의 힘이 이렇게 컸었던가. 타이밍 좋게 먹자마자 말이 트였다.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식이 또렷하다는 게 느껴졌다. 쓰러진 당시가 기억이 나냐고 물으니 기억이 잘 안나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충격받지 말라고 미리 밑밥을 깔아놓고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주었다. 중간에 듣고 있는지 확인을 하며 더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물으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더니 충격을 받은 듯 입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놀리면서 장난을 쳤더니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다. 확실히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선처리도 빨라지고 명확해졌다. 갑자기 한 순간에 바뀐 동생의 의식 상태를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변화가 한눈으로 확인이 되니 병간호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 같다. 이 모습을 보니 병원에서 예견했던 재활 기간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떠올려보니 오늘 벌어진 광경을 항상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오른쪽에 창문이 있고 침대가 놓인 공간까지 동생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혼자 상상했던 병실구조였다. 그리고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즉시 단어를 내뱉는 것도 상상을 해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진짜 현실에서 일어났다. 역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이왕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미래를 그리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왠지 더 나은 삶으로 가는 방향을 나에게 안내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동생도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서 그 누구보다 지금 상황을 잘 이겨낼 것이고 분명히 일상적인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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