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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4 - 동생의 지인들

2023년 4월 6일 목요일


 오늘은 언어검사를 받는 날이다. 하루를 준비하던  9 반쯤에 검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잠깐의 여유조차 없다. 나중에는 동생의 여자친구와 친구들이 방문하기로 해서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아침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 부리나케 세수를 시키고 몸을 닦은 다음 환복을 하고 양치와 면도를 해주었다. 역시 사람이 급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모든 것이 15분도   걸린  같다. 물론 뒷마무리까지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급하게   치고는 친구맞이 준비가    같아 나름 만족스러웠다.


 언어 검사는 개인마다 하는 방식이 차이가 있는 듯하다. 동생은 글을 쓸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기에 의사소통 수단으로 고갯짓이나 눈깜박임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카드를 보며 지시한 것을 손가락을 가리키거나 입모양을 모방하도록 하며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 내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동생이 힘든 눈치였다. 신체적인 운동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지만 생각이 필요한 질문은 듣고 행동하는 것은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단어를 전부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의식적으로 외운 것보다 무의식 중에 학습된 게 더 많을 것이다. 신생아처럼 0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학습만 잘 시킨다면 빠른 시일 내에 복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남은 과제들은 앞으로도 굉장히 많은 듯하다.


 오후 재활 시간에 맞춰서 동생의 여자친구와 과동기 3명이 면회를 왔다. 친구들은 동생을 보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늘은 자기 여자친구한테도 별 반응을 안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요즘에는 사람 만나는 게 귀찮은가 보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사람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시키고 떠들어대니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늘은 인지치료까지 추가가 되어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는 못했다. 동생을 보러 온 것만 해도 고마운데 여자친구는 내 건강도 챙기라며 비타민을 사 오고 친구들은 도넛과 텀블러, 핸드크림까지 간병을 하면서 요긴하게 쓸 것 같은 선물들을 주고 갔다. 그 마음들이 예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당장 보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했다.


 재활 치료실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 친구들은 동생이 잠깐 나올 때만 얼굴을 볼 뿐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한 번 더 와도 되냐고 묻길래 흔쾌히 그래도 된다고 했다. 사실 오늘 와준 것만으로도 감동이라서 고맙다는 인사 밖에 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대신 전해주라며 사진을 건네고 떠났다.


 그 후에는 처음으로 인지치료가 있었다. 아쉽게도 재활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자리가 협소해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 시간 동안 동생의 여자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 끝나고 치료사분이 말하길 30% 정도는 동생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시선처리가 원활하지 않아서 제약이 많았지만 처음치고는 잘했다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며 기대를 했다. 그래도 마이너스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서 희망이 생겼다.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해져서 오전에 토닥이를 못했다. 결국 저녁에 대신하느라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 늦어졌다. 가뜩이나 밥 먹는데만 1시간가량이 소요되는데 늦어지니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네블라이저와 토닥이를 하고 나서 석션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고를 쳤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또 콧줄을 뺐다. 이 정도면 정말 손을 묶어놓던가 움직임 방지용 장갑을 착용해야 할 듯하다.


 콧줄 교체를 해주는 담당자가 1시간 후에 올 수 있다고 해서 우선 밥부터 먼저 먹였다. 사고까지 쳐놓고 밥은 제대로 안 먹길래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잔소리를 계속 해댔다. 오늘 하루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탄식이 나왔다. 애를 키워본 적도 없지만 세 살짜리 애를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밥을 겨우겨우 몇 숟갈 먹이고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콧줄을 교체하러 오셨다.


 몇 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콧줄을 뺐지만 자유의 대가는 엄청났다. 70cm의 호스를 콧속으로 다시 넣어야 했다.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코를 깊숙이 찌르는 것 만으로 찡한 고통이 몰려오는데 나 같으면 이런 고통을 또 겪고 싶지 않아서 손을 안 댈 것 같은데 자꾸 사고를 친다. 한번 더 빼면 장갑을 끼우겠다는 나의 말에 동생은 인상 찌푸렸다. 간호사는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장갑을 착용하는 것도 환자 인권 문제로 치부되어서 원한다면 동의서 작성을 도와준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하고 기회를 딱 한 번만 더 주기로 했다. 한번 더 콧줄을 뺀다면 그때는 얄짤없이 왼손의 자유를 빼앗을 것이다. 동생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침대에 가만히 기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엄청 혼이 났으니 당연하다. 협박까지 당하니깐 더 시무룩해졌다. 본인이 자처한 일이니 나 잘못은 아니지만 제발 내일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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