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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5 - 모든 게 뒤죽박죽

2023년 4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역대급으로 바쁜 하루였다. 오전에는 심전도 검사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시티촬영을 했다. 4월부터는 오전 재활에 작업치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오전 스케줄은 11시부터 시작해서 12시 반에 끝나는데 30분 간격으로 운동, 작업과 통증치료, 갈릴레오 기구 치료가 진행된다. 오후에는 3시부터 5시까지 재활을 하는데 갑자기 추가된 언어치료로 30분이 더 연장됐다. 오후 재활치료 일정은 경사 침대, 인지재활과 통증치료, 운동, 작업 연하치료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간에 심리검사까지 하고 나서 언어치료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은 대변을 3번이나 눠서 오전에 2번 오후에 1번 기저귀를 가느라 더 바빴다. 요즘에 항문에 변이 들어차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닦으면 닦을수록 계속 묻어 나와서 이상했는데 미처 못 나온 것들이 이제야 전부 배출된 것 같다. 오늘 대변 상태는 단단하고 억지로 밀려 나온 듯한 모양이라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정상변으로 보여서 문제 될 건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하루에 세 번은 정말이지 너무했다.


 재활을 하러 가서는 동생이 인지치료를 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제대로 알고 누르는 건지 헷갈렸다. 흰 토끼 3 마리 사이에서 검은 토끼 1 마리를 찾는 거였는데 정답률이 50%도 안 된다. 옆에서 치료사분이 모니터에 동생의 손을 잡고 직접 모니터에 가져다대니 검지로 겨우 화면을 눌렀다. 팔을 움직일 수 있으면서 이럴 때는 왜 가만히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재활을 열심히 받기로 나랑 약속했는데 치료만 했다 하면 맥을 못 추스른다. 물론 오늘 일정이 빠듯하긴 했으나 소화를 하니깐 계속 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빨리 회복하고 병원을 나가는 게 목표니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나도 지금 일정이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젊은 나이라서 그런지 너무 과도하게 진행시키는 것 같긴 하다.


 심지어 오전 작업치료는 하면서도 졸고 있어서 재활을 받는 내내 동생을 깨우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작업 재활에서는 링 넘기기를 진행하는데 동생은 흥미가 없는지 제대로 참여를 안 한다. 어쩌면 통증 치료 시간에 항상 자던 습관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4월이 되면서 통증 치료 시간에 작업치료도 병행하게 되었는데 몸은 3월을 기억하나 보다. 언어치료실에서는 성대 마사지와 호흡치료를 진행했다. 과제도 생겼다. 월요일까지 휴지를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흔들리게 하는 것이었다. 주말에 연습을 힘들게 시켜야겠다. 그리고 성대를 닫고 여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호흡법도 알려주었다. 동생이 배운 대로 따라 하니 목소리가 미세하게 나왔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불편한 걸 이야기할 수 있어서 서로가 편할 것 같은데 어느 세월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동생의 성격상 얼마 안 걸릴 거라고 예상해 본다.   


 하루 세끼 밥을 먹여야 할 때는 여전히 투닥거린다. 동생은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으니 나의 잔소리를 피할 수도 없었다. 밥시간마다 전쟁이다. 먹는 양이 늘어야 콧줄을 제거할 텐데 입맛만 까탈스러워지고 먹는 양은 늘지가 않았다. 밥이라도 혼자 먹을 줄 안다면 그나마 여유가 생길 텐데 말이다. 오늘은 아침, 점심, 저녁 전부 먹는 게 부진했다. 먹는 양이 1/3 정도에서 늘지가 않는다.


 심지어 점심에는 마치 만화 장면처럼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간호사가 소변양을 물어보며 커튼을 치는  순간 동생이 재채기를 하면서 안에 있던 음식들이  옷으로  어버렸.  장면을 목격한 간호사도 당황을 하고, 위아래로 음식물이 뒤덮인 나도 당황을 하고, 이렇게   몰랐던 동생도 당황을 했다.   정지화면처럼 멈춰있다가 간호사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겼다. 먹기 싫어서 일부러 뱉은 거냐고 물으니 웃기만 한다. 내가 있는 쪽을 정확하게 노린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도 웃는 걸 보니 고의성이 다분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저녁에는 회를 시켜 먹었는데 동생의 밥과 너무 대조되어 보였다. 차마 동생에게 회를 먹일 수는 없어서 같이 온 초장과 쌈장을 맛 보여 줬더니 입맛을 다셨다. 역시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라고 했다. 맨날 간이 싱거운 병원밥만 먹다가 나트륨 덩어리들을 먹으니 신세계일 것이다. 밥을 제대로 안 먹고 있으면 옆에서 협박을 했다. 이렇게 먹다가는 나중에 나가서도 남들은 고기 먹고 회 먹을 때 너는 혼자 죽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내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느낀 게 있다. 동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활 치료실에는 거의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고 동생이 유일한 20대처럼 보였다. 간혹 가다 사복을 입은 20대들이 보였지만 20대 뇌출혈 환자는 동생이 유일했다. 저녁에 시티를 찍으러 갈 때 이송을 하러 온 분이 동생을 보더니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할 때 도와주신 분이었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은 확실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아무래도 동생이 젊다 보니깐 사람들이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병실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도 동생을 보며 잘생긴 청년이라며 좋아하고 재활치료사분들도 동생의 눈이 예쁘다면서 칭찬을 한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병원 사람들의 이쁨을 받고 있다. 마치 내가 연예인을 모시고 다니는 매니저가 된 기분이다. 동생도 은근히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참 알다가도 모를 애다. 아무튼 이러한 사랑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동생은 돌아가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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