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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6 - 앞으로도 남은 과제들

2023년 4월 8일 토요일


 주말에는 오전에만 재활 치료가 있다. 주말 시간표는 유동적이라서 오늘은 10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기구와 운동 재활을 진행하였다. 기구재활을 막 시작할 찰나에 엄마가 도착했다. 오늘은 동생이 엄마를 확실하게 알아보는 듯하다. 말을 시켰을 때 동생의 반응을 보면 의식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전에는 엄마가 인사를 해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면 오늘은 악수도 하고 엄마를 알아보냐는 질문에 고개도 끄덕거려 주었다. 대답을 해주는 걸 보니 가족을 잊어버린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늘 운동 재활에서는 처음 보는 치료사가 동생을 맡았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치료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서 유심히 관찰을 했다. 치료사는 우선 동생의 근육부터 풀어주고 관절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그러고선 어느 부위의 근육이 짧아졌는지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엄마와 나도 따라 할 수 있는 스트레칭법을 알려주었다. 특히 발목은 굳어버리기 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루에 한 번씩은 스트레칭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손가락 마디나 발목같이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주며 방법을 알려주어서 어렵지는 않을 것 같지만 과연 바쁜 평일에 스트레칭까지 해줄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의 과제량이 더 늘어나고 있다.


 재활을 끝나고 올라가는데 동생의 바지가 심상치 않다. 분명 아침에 기저귀를 갈았는데 또 갈아야 할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대변이 묻은 바지를 벗기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단 발꿈치 쿠션을 떼어내고 동생 다리에 있는 공기압 마사지기를 푼 다음 압박 스타킹을 벗겨내야 한다. 다리는 두 개라서 한 번의 작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기저귀를 갈고 나서는 다시 입혀야 한다. 동생의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굴린 다음 뒤처리를 하고 기저귀와 깔개 패드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습진 방지를 위해 연고까지 발라야 기저귀 교체가 완전하게 끝이 났다.


 엄마는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병실에서 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네블라이저까지 하고 나서야 내려갈 수 있었다. 식당에 내려가서는 짜장면과 김치찌개 불고기 세트를 시켰는데 마냥 편안하게 먹을 수만은 없었다. 평소에 네블라이저를 하면서 동생이 하품을 자주 했다. 문제는 그때마다 산소마스크가 올라가서 입으로 들어가거나 눈을 찔렀다. 그 사태를 봤었기에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만약 산소마스크가 올라가면 어떻게 내리는지 시범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동생이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동생의 밥을 챙겨주어야 하기에 서둘러서 먹고 엄마와 몰래 병실로 올라갔다. 다행히 점심을 먹고 가보니 별 다른 문제 없이 얌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네블라이저가 끝나서 석션을 해주고 동생점심은 엄마에게 맡겼다. 그런데 커튼 너머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다가 엄마는 내 뒤에 숨었다. 커튼을 살짝 걷어서 동생의 소변량을 묻길래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냥 가길래 들키지 않고 넘어간 줄 알았는데 커튼 너머로 간호사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분은 나가셔야 해요.”


  결국 들켰다. 엄마와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모녀는 어디서 사기를 당하면 당했지 사기를 치는 건 안 되겠다. 엄마는 아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어차피 들킨 거 한 숟가락이라도 직접 먹이고 싶어서 간호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심장 졸이며 겨우 음식을 줬는데 동생이 잘 먹지를 않는다. 특히나 재활을 받고 오면 피곤해서 그런지 밥을 안 먹으려고 했다. 결국은 다섯 숟가락도 제대로 안 뜬 것 같은데 입에 있는 음식을 기침과 함께 다 뱉어버렸다. 어제처럼 입안에 있던 음식물이 사방팔방으로 다 튀었다.


  이번에도 또 내가 있는 쪽으로 재채기를 하는 걸 보고 먹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거냐고 하니 그저 웃기만 했다. 보아하니 고의성이 다분한 것 같다. 동생이 사고를 칠 때도 간호사가 라운딩을 돌길래 눈치가 보였다. 엄마는 결국 점심 먹는 걸 끝까지 못 보고 나가야 했다. 동생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졸았다. 엄마가 간다고 해도 안 일어나길래 억지로 깨우니 그제야 눈을 떴다. 엄마가 진짜 가야 한다며 손을 흔드니깐 동생이 손을 흔들었다. 평소에는 간다고 해도 재빠르게 흔들어주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반응이 빨랐다. 그 모습에 엄마보고 빨리 가라고 그러는 거냐 물으니 동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엄마가 가고 나서도 밥을 먹이기 위해 한참을 고군분투해야 했다. 결국은 동생이 입을 굳게 닫고 열지 않길래 점심 먹이는  포기했다. 점심이 끝나고 나서는 여유롭게 앉아 티비를 봤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생의 반응을 살폈더니 나랑 같은 웃음 코드를 가진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아니라 내용을  알아듣고 웃는  같아 보였다. 동생은 침대에 기대서 나는 의자에 앉아서 보고 있으니 간호사가 나를 보고 너무 불편한 자세로 보는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의식을 검사하기 위해 동생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는데 생각보다  반응해 준다. 그전에는 의식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짧았다면 요즘에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상태가 좋아지는  같아서 뿌듯했다. 그런데 자아를 되찾으면서 고집도 생기는  같아 큰일이다. 반응을 잘해주다가도    시키거나 귀찮아지면  해준다. 하기 싫은  죽어도  하는  어쩜 그렇게 나와 똑같은지  기질은 우리 집안 내력인 듯하다.


 그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동생이 티비를 보다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잠시 낮잠을 잤다. 30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동생이 먼저 일어나 있었고 내 옆은 소란스러웠다. 대화내용으로 보아 우리 옆칸에 있는 환자는 의식이 또렷하지 않아서 의사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혼자 일어서는 건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간병하기가 제일 까다로운 케이스로 보였다. 의식은 희미한데 몸은 움직이니깐 보호자 없이 멋대로 침대를 벗어난 것이다. 문제는 달고 있던 소변줄을 빼버리는 사고를 쳐서 간호사와 전문의가 달려와서 수습을 해야 했다.


 그전에도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휠체어에서 멋대로 일어나다가 넘어졌었다. 그래서 전문의가 간병인에게 항시 옆에 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줬었는데 이번에도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심각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그 자리에서 간병인은 마음이 상했는지 더 이상 못하겠다면서 다른 간병인을 구하라며 기분 나쁜 감정을 드러냈다. 일이 커질까 봐 조마조마하게 듣고 있었는데 어떻게 수습이 되면서 점차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옆에 사람을 보니 내 동생이 치는 사고는 애교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신체 움직임이 더뎌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동생도 더 활발해지면 저런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동생의 의식이 하루 중 가장 또렷해지는 시간은 저녁인 것 같다. 한 7시쯤이 되면 다른 시간대보다 월등하게 반응이 빨라진다. 그리고 자꾸 손가락 씨름을 하자고 한다. 그러고는 아픈 상태여도 나한테 지는 게 분했는지 이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와중에 나도 동생을 이겨보겠다고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동생에게 장난을 치려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아파하고 있으니 그런 나를 보며 비웃었다. 그러고 나서 동생의 등에 있는 여드름을 압출해 주니깐 굉장히 아파하며 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익숙한 고통을 느껴보니 어떻냐는 나의 말에 어이없어하면서 헛웃음을 쳤다. 이제는 웃음소리만 들어도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동생이 못 움직일 때 실컷 놀려줘야 한다. 내가 옆에서 하도 자극을 줘서 그런지 몰라도 표정이 다양해지고 있다. 오늘 낮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기저귀를 갈 때 대변을 동생의 얼굴로 갖다 대고 보여주니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은 정말 표정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길래 너무 웃겨서 소리 내어 웃었더니 동생도 같이 웃음이 터트렸다. 이 정도면 조만간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먹고 걸어 다니고 말도 할 것 같다.


 저녁을 먹이고 나서는 재활 시간에 배운 대로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동생은 어디가 불편한 건지 자꾸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나서는 표현을 하지 못해서 답답한지 끙끙거리면서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몸이 아픈 거냐고 물어보면서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허둥대고 있으니 나를 보고 헛웃음을 쳤다. 자꾸만 인상을 쓰길래 자세를 계속 바꿔주었더니 조금 나아졌는지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괜찮아 보여서  스트레칭까지 해주었다. 그러다가 팔에서 뚝하고 소리가 나길래 걱정이 되었다. 동생에게 혹시라도 뼈가 부러져서 아파하는  아니냐고 했더니 콧방귀를 뀌면서 웃어 보였다.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의사소통이  되니깐 서로 답답했다. 말이라도   있으면 서로가 조금  편해질  같은데 아쉽다. 그래도 움직임이 예전보다 유연해지고 신체 동작도 정확해지고 있으니 의사소통을 정확하게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일기를 쓰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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