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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7-평화와 전쟁

2023년 4월 9일 일요일


 일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재활훈련이 없는 날이다. 6시 반에 일어나면 동생의 상태부터 가장 먼저 살핀다. 그때의 눈빛이 어떤지에 따라 오늘 하루의 의식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확실한 건 하루가 다르게 초점이 또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유로운 날이라고 해서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줘야 하고 산책도 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보다는 앉아있는 시간이, 앉아있는 시간보다는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의식을 차리는데 도움을 주니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요즘 제일 큰 걱정은 동생이 밥을 잘 안 먹는 것이다. 먹기가 싫은 건지 삼키기가 어려운 건지 입안에 음식을 넣어주면 몇 번 씹다가 삼키지도 않고 그대로 물고 있다. 그리고 삼키더라도 꼭 한 번씩은 기침을 하면서 뱉어버린다. 분명 삼키는 기능은 문제가 없다고 들었는데 기도로 잘못 들어가서 그런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밥시간이 되면 야단을 치게 한다. 관절은 남들이 대신 스트레칭이라도 해주면서 근육이 굳지 않게 예방을 할 수 있다지만 씹고 삼키는 건 남들이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속이 타들어갔다. TV를 켜놓으면 거기에 집중한다고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TV를 끄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멍을 때린다. 그래서 나는 밥시간이 될 때마다 항상 동생에게 협박과 애원을 해야 했다.


“너 남들이 고기 구워 먹고, 회 먹고 맛있는 거 먹을 때 너는 그 옆에서 죽만 평생 먹을래? 정신 차려."


"이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거야. 콧줄 빨리 빼고 싶지 않아? 잘 먹으면 뺄 수 있으니깐 제발 그만 씹고 삼키자.”


 동생은 내 잔소리가 듣기 싫은 건지 일부로 못 들은 척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자기도 안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며 억울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깐 무슨 마음인지 알 수는 없었다.


 먹기 싫다는 걸 억지로 더 먹일 수는 없어서 30분간 실랑이를 하다가 그만뒀다. 아침, 점심, 저녁 남들은 조용하게 식사를 하는 이 시간에 우리 자리에서는 “냠냠”, “꿀꺽”을 수 없이 외쳐대는 내 목소리만 병실을 가득 채운다. 하루 세끼마다 이 짓을 해야 하니 진이 빠졌다. 입안에 음식이 있는지 확인을 하며 먹어야 해서 의자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은 기저귀를 가는 것보다 밥 먹이는 일이 제일 힘들다. 기저귀야 동생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건 오롯이 동생의지 문제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밥 문제만 아니라면 서로 감정이 상할 일이 없는데 항상 밥시간이 끝나면 동생은 혼나서 풀이 죽어있고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동생은 쓴소리를 듣고 나면 항상 점도 증진제 스틱을 숟가락으로 생각을 하는 건지 입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한다. 화를 내고 있다가도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걸 보면 동생은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걸 내가 몰라주는 건 아닌지 괜히 미안해져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칭찬을 해줬다.


 밥을 먹고 나서는 점심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서 동생을 침대에 눕힌 채로 씻겨주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서 발부터 다리까지, 엉덩이에서 등까지 해면으로 싹싹 닦여주고 보습제를 발라주었다. 어제 배운 스트레칭도 해주었다. 발가락,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접었다 폈다 풀어주면서 상태를 살폈는데 문제는 없다.


 환복까지 완료하고 물에 젖은 침대시트들은 일단 전부 제거하고 나서 다시 새로운 시트로 교체를 했다. 화요일에 병원을 옮길 예정이었지만 며칠만이라도 깨끗하게 지내는 게 좋으니깐 말이다.


 동생의 청결관리를 신경을 써야  것들이 많았다. 구강위생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헥사이딘과 식염수를 섞은 용액에 거즈를 넣어 놓고 식사가 끝나면 이걸로 입안을 닦아준다. 거즈를 나무스틱에 말아서 혀와 입천장을 닦아내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내가 마치 악어새가  기분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삼켜도 문제없는 아기용 치약과 실리콘 칫솔도 구매했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입안에 상처가 생길 위험 없이 이를 닦일  있어서 추천한다. 병간호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아이템인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언어치료시간에 배웠던 호흡법을 시도했다. 발성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모기소리만큼 목소리가 작았다가 지금은 가끔이지만 목소리도 크게 낸다. 제일 먼저 ‘어’, ‘아니’, ‘네’, ‘아니요’부터 연습시켰다. 그래야 불편한 점이 있을 때 표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입모양을 보여주면서 따라 해보라고 하니 잘한다. 모방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소리를 내보라고 하니 두 마디 정도는 소리를 낸다.


“어 해봐. 어.”

“어”

“그럼 이번에는 아니해봐. 자, 아... “

“아니”

“뭐지 이건 왜 이렇게 잘하는 거지? “


 내가 너무 동생을 얕잡아본 것 같다. ‘아니’라는 말을 시켰을 때 연달아서 바로 말을 하지 못할 줄 알고 한 단어씩 또박또박 말해줬는데 바로 ‘아니’라고 따라 한다. 예상보다 빠른 습득에 당황을 했다. 곧바로 ‘엄마’라는 단어를 시켜보니 이것도 잘 따라 했다. 역시 그전에 엄마라고 말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이번에는 ‘누나’라고 시켜보니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입모양으로 뻥긋거렸다. 이제는 연습을 할 때 받침이 있는 단어도 한 글자씩 시도해 보는 중이다.


 동생은 점심도 먹고 말하는 연습도 하고 나니 피곤한 지 잠이 들었다. 잠깐 쉬도록 내버려 두고 나서 나도 잠시 간이침대에 누웠다. 간이침대의 폭은 배게 넓이와 똑같았다. 그래도 몸부림이 심하지 않아서 떨어진 적은 없다. 나보다 몸집이 큰 사람은 한 없이 작은 침대였지만 나에겐 딱 맞는 사이즈였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해서 열려있는 마치 관체험을 하는 기분이지만 말이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산책을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자고 있는 동생을 깨웠다. 휠체어에 태우려고 침대를 옮기려는데 동생이 갑자기 온몸에 힘을 준다. 동생의 오른손은 마비가 되어서 평소에는 움직이지 않다가 어딘가 아프면 반사적으로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 보니 손이 올라가 있었다.


 놀라서 살펴보니 소변줄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동생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소변줄을 떼어내고 잡지 못하게 막았다. 간호사에게 말하니 출혈이 생기는 원인은 두 가지라고 했다. 방광에 문제가 있거나 소변줄이 당겨지면 피가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원인인 듯해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고 다시 한번 더 소변줄을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고 경고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간호사가 휠체어는 태우지 말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여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출혈 직후 정상적으로 소변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담당의에게 보고를 하니 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며 휠체어에 태워도 된다고 했다.


 휠체어를 탄 김에 몸무게도 쟀다. 휠체어를 탄 채로 올라가니 82.85kg이 나와서 계산해 보니 동생의 몸무게는 54.6kg이었다. 많이 먹고 살이 쪄야 할 텐데 몸무게가 전혀 오를 생각을 안 한다. 내 살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쩜 살도 이렇게 빈익빈부익부인지 모르겠다. 나는 병원에서 몸이 붓고 있는데 동생은 더 빼빼 마르고 있다. 우리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듯하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추울까 봐 이불을 돌돌 감싸주었다. 오랜만에 바깥을 나오니 따뜻하면서 서늘한 봄바람이 느껴졌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벚꽃으로 새하얗던 거리는 푸릇푸릇한 나무가 되어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세상을 구경했다.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상 밖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들어가고 싶은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다가 밖에 조금 더 있을까라고 물어보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동생도 봄바람이 자기를 스쳐가는 느낌이 좋았나 보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벌써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저녁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밥을 한 두 숟갈만 먹더니 더 이상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 크게 혼쭐이 났다. 아예 먹을 생각을 안 하길래 식판을 치워버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동생도 스스로 잘못한 걸 알았는지 내 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내가 가는 곳마다 동생의 눈동자가 따라다녔다. 다음부터 잘 먹을 거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괜히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었지만 두 달 전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놀라운 변화의 연속이었다. 매 순간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때는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만 있어서 깨어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면 이제는 밥도 먹고 웃음을 짓고 말도 하려고 한다. 물론 밥시간만 되면 나를 화가 나게 만들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것을 이뤄내는 중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생을 지켜보며 회복을 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히 기다리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수님에게 동생의 의식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정도면 빠른 속도로 호전이 되는 중이니 앞으로도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항상 남들의 예상을 뛰어넘던 아이였으니깐 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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