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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8- 용인에서의 마지막

2023년 4월 10일 월요일


용인 세브란스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지 말아야 할 광경을 봐버렸다. 자고 일어나서 침대를 봤는데 동생이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확인하니 콧구멍부터 기다랗게 콧줄이 빠져나와있다.


 하루의 시작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콧줄을 빼면 새로운 콧줄로 교체하고 CT를 찍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우선 네블라이저부터 하고 석션을 진행했다. 먹지 않으려고 하는 아침밥을 억지로 먹이고 담당자가 콧줄을 넣으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 콧줄을 새롭게 교체하더라도 외래진료 시간과 겹쳐서 엑스레이는 대기가 있다며 9시 10분에 시작하는 언어치료를 끝내고 찍으면 된다고 했다.


 동생이 재활을 받는 사이에 나는 잠시 외출을 했다. 내일이면 부산으로 간다. 재활병원에 입원수속을 하려면 음성검사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여기와는 다르게 PCR검사가 아니어도 괜찮아서 근처에 있는데 내과를 들렸다. 혹여나 늦을까 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초조하게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검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오니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내가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이 마침 재활치료와 엑스레이 검사를 끝내고 온 것 같았다. 이송직원들이 침대로 옮겨주고 나서 이제야 영양식을 먹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송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체성분검사가 있어서 다시 내려가야 된다고 하였다. 아침부터 너무 분주해졌다. 언어치료, 엑스레이, 체성분검사가 끝나면 바로 재활 스케줄이 있다. 결국 시간이 안 돼서 동생의 아침밥과 약을 먹이 지를 못했다.


 동생은 아침부터 혼이 많이 나서인지 기운이 없었다. 심지어 어디가 불편한지 인상을 쓰며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어디가 아프냐는 나의 물음에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재활시간에도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잠을 잘 못 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졸면서 재활을 받았다. 그러다가 오전에 동생친구가 오기로 했던 걸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기구 재활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슬며시 나타났다. 친구는 먹을거리와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가지고 왔다. 동생은 자신을 만나러 온 친구와 눈을 마주치고 있기는 한데 얼굴까지 알아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직 그 진실은 동생만이 알 뿐이었다. 나중에 기억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엉망진창이었던 오전이 마무리되고 점심을 맞이했다. 밥 먹는 시간은 서로에게 공포의 순간이다. 또 실랑이를 벌일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역시나 점심도 먹이기가 힘들었다.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을 재러 오면서 밥을 잘 먹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체온을 재보더니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체온계를 보니 37. 6도 이상이었다. 아침부터 동생이 그냥 기운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열이 나고 있었다.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화를 낸 게 미안했다. 내가 옆에서 스트레스를 줘서 이렇게 된 것 같아서 괜히 죄책감이 몰려왔다. 우선은 열을 식히기 위해 얼음팩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잠시 눕혀 놓았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오후 재활을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내일 부산으로 이동하려면 동생 컨디션이 더 악화되어선 안 되는데 바쁜 스케줄로 인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오늘이 여기서의 마지막 재활이다. 그동안 동생의 재활을 도와주면서 정들었던 치료사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치료사분들은 퇴원을 하고 다시 만나자면서 동생과 술자리를 기약했다. 동생은 1년 안에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걸어오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명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했으니 반드시 지킬 것이다.


 동생은 재활이 끝나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동생이 잠든 사이에 네블라이저를 켰다. 나도 옆에서 같이 자고 싶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네블라이저를 하는 순간이 곧 나의 식사 시간이었다.


 간병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원하든 원치 않던 항상 동생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 혼자 살 때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강제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중이다. 생활습관은 올바르게 바뀌고 있는 반면에 나의 관절은 점점 퇴행하는 듯하다. 다리와 발은 항상 부어있고 손목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어깨는 뭉쳐서 저녁마다 마사지볼로 굴리는 중이다. 동생은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내가 다닐 병원과 에스테틱 결제권부터 끊어줘야 할 듯하다.


 이제는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병실에 있는 물건을 보니 도무지 짐을 챙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짐부터 싸면   같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동생 앞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 생각처럼 동생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재활치료도 골든타임이 있고 그 시기에 제대로 따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지금 한 숟갈이라도 더 뜨고, 재활시간에 졸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루라도 더 빨리 회복된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동생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참여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일 때마다 성에 차지 않아서 혼을 낼 수밖에 업었다. 지금은 동생이 남들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것이 나의 큰 바람이다. 분명 아무 문제 없이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부터 하루종일 냉랭한 분위기 탓인지 동생은 계속 시무룩해있다. 나 또한 힘이 빠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내 기분이 어떤지 살피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내 인상을 쓰며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동생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져서 이야기했다. 혹시 내가 잔소리를 심하게 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냐며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하는 듯한 코웃음을 쳤다.


 동생이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을 눈빛으로 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화나 있으면 눈치를 보면서 인상을 쓰다가 나중에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동생이 느낄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기분일 것 같아서 마음이 약해졌다. 그럴 때마다 동생에게 물론 본인이 가장 힘든 걸 알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똑같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니 서로 잘해보자며 악수를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한다. 분명 동생도 자기 딴에는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을 거다. 나도 모르게 조급해져서 동생의 모든 것을 헤아려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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