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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69 - 이사하는 날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오늘은 부산에 있는 재활병원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혼자서 이사 준비를 하려고 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은 눈에 보이는 짐부터 정리하기 위해 서 캐리어를 열었다. 아침 일찍부터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는 그 와중에도 동생의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었다. 퇴원 수속을 밟기 위해 안내를 듣고 필요한 서류들도 챙겼다. 이럴 땐 정말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싶다.


 간호사가 아침에 몇 시쯤 출발하냐고 묻길래 11시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부산에 있다 보니 용인까지 외래진료를 받으러 다시 오기는 힘들 테니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소견서를 끊어주겠다고 하였다. 신경외과 소견서는 어제 받았고 심장내과 소견서만 받으면 끝이 나는데 문제가 생겼다.


 10시 반이 넘어가도 소견서가 나오지 않아서 수납을 할 수가 없었다. 부산까지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할 예정이라서 10시쯤부터 언제쯤 출발하면 되는지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4통 이상이 걸려왔다. 엄마까지 아직 출발을 하지 않았냐고 연락을 하는 바람에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부산 재활병원에는 3시 반까지 도착해서 진료를 보고 입원을 해야 되는데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구급차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나 수납 전에 동생부터 구급차에 이동을 시킬 수 없냐 물었더니 수납이 완료되어야 출발을 할 수가 있단다. 그래서 간호사한테 소견서가 언제쯤 나오냐고 재촉을 하니 11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30분을 더 기다려달라는 말에 짜증이 났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까지 느껴졌다. 서로 짜증이 잔뜩 난 상태로 전화를 받다 보니 정신이 더 산만해졌다. 나는 지금 속이 타들어가다 못해 사라져 가고 있는데 동생은 속도 모르고 옆에서 잠만 자고 있다. 미리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견서 하나 때문에 퇴원이 미뤄지고 있으니 나중에는 화가 났다.

 

 시간이 다 되어가서 계속 재촉을 하니 11시가 조금 넘어서야 수납을 마칠 수 있었다. 수납을 하러 내려갔더니 대기도 길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는 수납을 할 때 구급차 기사님에게 연락을 하니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정말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수납을 끝내놓고도 바로 가지 못하고 병실에서 20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더니 간호사가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왜 아직도 병실에 있냐고 묻길래 구급차가 늦게 온다고 말했더니 간호사도 어쩔 줄을 몰라하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달이 나는 걸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옆에서 걱정을 해주었다. 그러게 말이다. 정말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구급차 기사님은 12시 반이 되어서야 병실에 도착을 하였다. 재빨리 동생을 이동식 베드로 옮기고 짐도 실었다. 이삿짐이 너무 많아서 양손으로 지고 가도 손이 모자랐다. 아무래도 간병에 필요한 물품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물건들을 겨우 옮기고 구급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제는 구급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게 신기하지도 않다. 엄마는 뭐가 좋은 경험이라고 본인은 구급차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며 흔치 않은 기회를 부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제발 이 차를 두 번 다시 타고 싶지는 않았다. 출발을 하기 전 간단한 인적사항과 도착해야 하는 시간을 작성했다. 적어도 4시 전까지는 부산에 도착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얼마나 밟았는지 용인에서 12시 반이 넘어서 출발을 했는데도 다행히 제 시간 안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부산으로 가는 내내 동생과 나는 쫄쫄 굶으며 후텁지근한 구급차 안에서 3시간을 견뎌야 했다. 날씨가 추운 탓에 히터를 틀어놨는지 자다가 너무 더워서 일어났다. 심지어 두꺼운 이불까지 덮고 있는 동생이 생각나서 바로 이불을 걷어주었다. 역시나 몸에 땀이 송골솔골 맺혀있다. 더워서 종이 가방으로 부채질을 하니 기사님이 그 모습을 보고 조치를 취해주셨다. 선풍기를 담아놓은 가방을 찾으려고 보니 운이 좋게도 좌석 뒤에 바로 있어서 쉽게 꺼낼 수가 있었다. 선풍기가 필요하게 될지는 몰랐었는데 캐리어에 넣지 않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사이렌을 켜고 도로를 달리는데 모세의 기적처럼 차들이 양갈래로 나누어졌다. 정지신호에도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는 건 이 순간뿐일 것이다. 오늘만큼은 교통체증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부산까지는 3시 40분에 도착을 했다. 재활병원 정문에 들어서니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할머니와 삼촌이 입구에 서있었다. 2개월이 넘도록 손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할머니는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선 입원 수속부터 밟았고 병원직원이 가지고 온 짐을 병실로 옮겨줘서 진료를 받고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동생의 인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을 하더니 일반적인 양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는 오른쪽 뇌가 다치면 왼쪽이 마비가 되는데 동생은 이상하게도 오른쪽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의사도 동생의 상태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의 걱정 속에서 모든 진료가 끝이 나고 병실로 이동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작은 병실에 창문을 불투명한 시트로 전부 막아놓으니 너무 갑갑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가운데 자리여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일단 병실로 가자마자 동생의 기저귀부터 교체하였다. 할머니는 본인의 손으로 한 번은 직접 갈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옆에서 도와주었다.


 하나를 해결하고 이제는 정리하기 위해서 짐을 푸는데 할머니가 옆에서 도와준다며 나섰다. 그런데 옆에서 돕는 게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짐을 푸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할머니는 동생에게 뭐라도 먹여야 한다며 요플레를 입속으로 퍼넣었다. 결국은 삼키지를 않아서 뒷수습은 내 몫이 되었다. 많던 짐을 풀고 나니 엄마가 도착했다. 문제는 그 사이에 또 대변을 눠서 부산으로 오자마자 기저귀를 두 번이나 갈아야 했다.


 이사를 한다고 병실이 떠들썩해졌다. 우리 옆칸에 있는 할아버지는 섬망이 있었는데 요란한 소음 때문인지 잠에서 깨어나 엉뚱한 말을 하셨다. 아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병원생활이 될 듯하다. 부산으로 오니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건 남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부산의 특징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초면인데 어느샌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가 쪽에 위치한 자리에는 동생보다 또래인 21살 남자아이와 그를 간병하는 엄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감사하게도 옷걸이와 필요한 물품들을 나눠주셨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입원 서류까지 작성하느라 너무 바빴다. 해당되는 서류와 정보를 제공하고 각종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정신없는 상황을 정리를 하고 동생의 저녁만 챙겨준 뒤 오랜만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깊은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자리를 오래 비운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며 물어볼 것이 있는데 언제쯤 올 수 있냐 물었다. 일단 20분 안으로 간다고 말해놓고 남김없이 먹고 나왔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나를 애타게 찾는 걸보고 고생이 많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병실로 올라갔는데 앞으로의 난관이 예상되는 일이 벌어졌다.


 8시 반이 조금 넘어서 병실에 도착하니 이미 소등을 한 상태였다. 너무 어두컴컴해서 후레시를 켜고 뒤적거리고 있으니 오른쪽 옆칸에서 살며시 커튼을 걷으며 보조등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런데 자기 전에 네블라이저 하려고 보니 기계가 없다. 대학병원과는 다르게 석션과 네블라이저 기계가 개인 자리마다 구비되어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돌아가면서 사용했다. 사용을 할 때마다 가지고 와야 한다니 너무 불편하다. 심지어 원래 쓰던 것과는 다른 기계라서 낯설기도 했고 거즈나, 카테터 같은 의료 물품을 전부다 개인이 구매를 해야 한다고 해서 당황했다.


일단은 9시쯤이 되어 네블라이저를 하려고 기계를 켰더니 왼쪽 옆칸에 있던 간병인이 짜증을 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그걸 하면 어떡하냐면서 역정을 내길래 간호사에게 소등시간이 언젠지, 네블라이저를 지금 하면 안 되는지 물었다. 소등시간은 정해진 게 없어서 방마다 다르고 네블라이저는 호흡기 치료 목적이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해도 된다고 했다. 혹시라도 그것 때문에 눈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여서 그런 사람이 있다고 대답하니 단번에 누군지를 알아챘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닌 듯했다. 간호사는 해결을 하겠다면서 옆자리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를 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15분이 지났는데 왜 기계를 끄지 않냐며 짜증을 내길래 40분 동안 해야 한다고 하니 너무 오래 하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주었다. 환자마다 각자의 사정이 다른데 초면에 무례하게 구는 걸 보니 굉장히 불쾌했다. 아무래도 처음 온 사람이라 텃세를 부리는 것 같다. 앞으로의 병실생활이 험난할 것 같다.


  


 


   


    


소견서 소동과 구급차


 삼촌과 할머니, 엄마


옆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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