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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0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0 - 고단한 하루

2023년 4월 12일 수요일


 부산에서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재활병원인 만큼 재활치료만 하루에 5시간이 진행된다. 스케줄은 무려 오전 8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어젯밤에 시끄럽다고 눈치를 줬던 간병인이 6시도 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병실 불까지 켜버렸다. 그 덕에 맞춰왔던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자리를 정리다가 가운데 공간이 유독 좁아서 침대를 조금 이동시키는데  옆칸에서  미냐며 역정을 냈다.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차분하게 침대를 정리하는 중이라고 말하니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여전히 아침은 네블라이저로 시작하고 여기서는 경관유동식과 연하곤란식  중에 하나만 선택이 가능하다고 해서 경관유동식을 선택했다. 음식을 먹이고 싶은 경우에는 개인이 직접 음식을 구매해서 먹여야 한다고 한다. 어찌  것이 날이 갈수록 모든 것들이  너머 산이다.


 대학병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재활병원에서 적응을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은 어떤 식으로 일과가 진행되는지 알아가는 날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겪어본 결과 대학병원에서의 병실생활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여기는 재활이 목적인 곳이라서 그런지 없는 것이 많았다. 동생이 지금까지 해왔던 심장 토닥이나 공기압 마사지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기계를 대여를 해서 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했던 이유는 동생이 침대에 누워만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였지만 여기에서는 재활훈련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많으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늘 하던 것을 갑자기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끊으니까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도 의심을 접고 그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임시 시간표>


[오전]

8:30 - 물리치료평가

9:00 - 작업치료평가

9:35 - 작업치료

10:05 - FES 전기치료

10:40 -  기구치료

11:10 - 1:1 운동치료


[오후]

1:20 - 1:1 매트치료

2:00 - 기구치료

4:00 - 작업치료

4:30 - 1:1 치료


 첫날은 임시 시간표대로 진행을 하였다. 평가를 하고 나서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에 따라 재활 치료가 달라졌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뀌어버린 환경이 낯설었는데 동생의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어느 장소에서 진행을 하는지도 몰라서 치료사분들에게 계속 물어가면서 위치를 파악했다. 확실히 물리 치료사분들이 많았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과 차이점이 있다면 여자 물리치료사가 굉장히 많았다. 항상 남자 물리 치료사들이 휠체어에 탄 동생을 매트로 옮기는 것만 보다가 나보다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동생을 옮기는 것을 보고 요령만 잘 배우면 앞으로는 이송 직원의 도움 없이 나 혼자서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두 명이 모여서 옮기긴 했지만 다리로 버틸 힘이 생기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용인과는 재활시간이 다를 뿐 치료 과정은 비슷한 것 같다. 경사 침대를 할 때 보호자가 옆에서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도 똑같았다. 매트 치료를 받을 때는 옆에서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작업치료를 할 때는 30분 뒤에 오면 된다고 해서 그 사이에 약국을 들러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멸균용 생리 식염수를 사들고 병실에 올라가 정리를 했다.


 정리를 다 끝내고 작업치료실로 향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같은 병실을 쓰는 분을 만났다. 이내 혼자 있는 나를 보더니 보호자는 항상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며 말했고 그 이후로도 나를 볼 때마다 몇 번씩 이야기했다. 계속 옆에 있다가 작업치료를 할 때는 함께 있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하기 지쳐서 그냥 알겠다고만 했다.


 전기치료를 하러 갔는데 그전 병원과는 다르게 개인용 패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또 약국을 들렀다. 심지어 약국이 병원건물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있어서 필요한 게 있으면 계속 구매를 하러 나가야 했다. 오늘은 틈나는 시간에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필요한 것들이나 병원에서 제공되는 물품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우선은 간호사실에서 받아서 쓰고 나중에 구매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대학병원과는 다르게 여기는 개인이 물품을 구비해야 하는 게 너무 불편했다. 하물며 소변 고정줄부터 석션 카테터까지도 개인적으로 구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그런 의료물품들은 사용하고 나서 나중에 결제를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다른 시스템이라서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장기로 입원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의료 물품 구매항목>

알코올솜

거즈

멸균용 생리 식염수

나무 설압자

석션용 카테터

소변기

압박 스타킹

욕창 방지용 방석

스페시맨컵(미니 계량컵으로 대체, 가루약 제조용)

의료기구용 클립(소변줄 고정가이드)

의료용 엉덩이 패치

전기치료용 패드


<그 외 소모품>

대형 기저귀

기저귀 패드

깔개 패드

비닐장갑

라텍스 장갑

물티슈

마스크


 점심에는 역시나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바쁜 와중에 동생이 콧줄을 또 빼버리는 바람에 밥시간까지 늦어졌다. 그리고 소변줄을 교체할 시기가 되어 기존줄을 빼냈는데 요도에 상처가 있었는지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새로운 소변줄을 삽입하고 있을 때 소변이 나와서 불과 몇 분 전에 갈았던 새 기저귀가 다시 소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옷도 다 젖는 바람에 환복도 해야만 했다.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하루다. 결국은 네블라이저를 하지 못해서 간호사에게 점심은 안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앞으로도 네블라이저 횟수를 4번에서 2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사실 동생이 가래가 심하게 끓는 편이 아니라서 4번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도 상태를 보더니 줄여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어야만 했다. 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사람이 많은 만큼 다양한 관심이 쏟아졌다. 심지어 다른 병실 사람들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훈수를 뒀다. 재활 치료실을 내려갈 때 양말이라도 하나 안 신겨놓고 있으면 춥다면서 이야기하고, 소변 주머니를 투명한 지퍼백에 넣고 다니고 있으니깐 남들이 보기도 그렇고 불편할 수 있다며 보관주머니를 마련하라고 말한다.


 소변 주머니가 조금이라도 차있으면 비우라고 하고 비우면 배출구는 소독하라고 한다. 이미 하고 있던 것들도 다시 한번  들어야 했다. 사람들은 욕창예방을 위해 자세도 자주 변경해 주라며 입을 댔다. 대학병원과는 다른 의미로 피곤했다. 거기서는 아침마다 체온체크를 하고 소변량, 대변 상태를 작성하고 뭐든지 정석으로 진행하는 느낌이라 피곤했는데 여기는 거기보다 느슨해서 편했지만 옆에서  놔라  놔라 하는 들이 많아서 피곤함이 몰려왔다. 좋게 말하면 부산의 정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라고 느껴졌다.


 우리 자리를 중심으로 옆칸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다. 한분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누구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슬리퍼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잠을 못 자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아침과 점심도 못 먹고 동생을 챙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먹고 해야 한다며 간식을 챙겨주었다. 감사하게도 어제는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 옷걸이를 주시더니 오늘은 멀티탭까지 주셨다. 너무 받기만 해서 죄송할 정도로 많이 챙겨주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것에 한 마디씩 할 때 옆에서 알아서 다 잘할 거라며 나를 옹호해 주셨다. 남들처럼 말로만 조언을 하는 대신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조용히 건네주시면서 간병인이 눈치를 줘도 신경을 쓰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마침 소변 주머니를 넣기에 딱 좋은 사이즈의 보관주머니도 있다면서 나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동생과 아들이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를 더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간호사분들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보호자도 혜택이 있으니 함께 진료를 받고 치료도 할 수 있다며 이야기해 주셨다.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걱정까지 해주는 것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동생의 저녁을 챙겨주고는 다이소를 들려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공간이 협소해서 정리할 만한 수납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병원을 이동하면서 세숫대야가 없어져서 다시 샀다. 분명 구급차까지는 싣고 왔는데 어디로 사라져 버린지 모르겠다. 삼촌이 용돈을 보내왔길래 전화를 했다. 힘든 건 없냐고 물어서 하소연을 하니 주변에 시어머니가 많이 생겼다며 시집살이를 하는 것 아니냐며 놀려댔다. 결혼도 안 했는데 내 눈앞에 말로만 듣던 시월드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외출도 여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또 네블라이저를 하면 뭐라고 할까 봐 시간을 확인하며 물건을 고르고 서둘러서 들어가야 했다.


 오늘은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나 했더니 나에게 휴식 따위는 없었다. 자기 전에 동생의 기저귀를 확인하는데 요도에 피가 나고 있었다. 놀라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하니 일단 소변줄로 나오는 출혈은 없는 것 같다며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생리식염수로 방광을 세척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옆에서 지켜보라고 하였다.


 표시선까지 식염수가 들어가면 호스를 닫고 소변줄을 풀면 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용액이 들어가지 않고 멈춰있다.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 기저귀를 봤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간호사를 불러서 문제를 해결하고 몇 번의 세척 작업 끝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바람 잘 날이 없는 하루였다. 자기 전까지 너무나도 고된 일정이었다. 부디 내일은 아무 일이 없길 바라며 글을 쓰는데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거워졌다. 정말 너무 힘든 날이었지만 이 생활도 금방 적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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