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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1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3 - 병원에서의 주말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오늘 새벽에는 다행히 동생이 깨지 않았다. 저녁에 진통제와 정신치료약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부작용으로 졸림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 내내 졸린 상태로 보였다. 분명 아기한테 넣는 투여량 정도라고 했는데 내가 돌보고 있는 큰 아기한테도 그만큼의 효과가 있나 보다. 주말에는 평일처럼 미친듯한 스케줄이 아니라서 그나마 여유로운 병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주말 재활 시간표>


 8:30-9:00/  특수작업치료 (1층)

9:35-10:05/  자동하지 (1층)

10:05-10:35/  전기자극치료 (1층)

14:00-14:30/  전기자극치료 (6층)

14:30-15:00/  작업치료 (6층)


오늘도 내가 아침밥을 안 먹고 동생을 챙기고 있으니 옆칸 아주머니께서 먹으면서 하라고 사과를 깎아 주셨다. 매번 받기만 해서 죄송스러우면서 감사했다. 여기에서도 용인에서와 같이 6시 반에 기상을 하고 네블라이저를 먼저 시작했다. 그리고 석션을 하고 아침밥까지 먹이고 나면 거의 8시 20분 정도가 된다.


 오전이면 주치의가 회진을 도는데 약을 먹어서 저녁에 깨지는 않는데 아침에도 졸고 있다고 하니 정신약을 먹으면 졸릴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동생은 억지로라도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약을 중단할 것 같다. 분주하게 아침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이송직원이 시간에 맞춰서 휠체어를 끌고 온다. 대학병원과 다르게 여기는 이송을 도와주는 분들의 나이대가 5, 60대였다. 각 층마다 한 명씩 대기실에서 상주를 하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한 명이 층 하나를 담당하고 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찾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자리는 항상 아침에 태우러 올 때마다 바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동생이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병실로 올라가서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소변통을 비우고 의료물품들을 세척했다. 침대시트도 반듯하게 정리하고 여기저기 어질러진 것들을 치워야 했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다 돼서 다시 동생을 데리러 내려간다. 중간에 애매하게 30분이 비어서 다시 올라오자니 힘들 것 같아서 1층 창가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비 내리는 창밖을 구경했다.


 동생은 작업치료시간에도 졸았다고 하더니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밖을 보니 양산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에서 휠체어를 탄 20대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전에는 보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텐데 같은 처지가 되어보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스스로 휠체어 운전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거동이 불편한 것일 뿐 다른 건 문제가 없는 듯해 보였다. 과연 동생은 언제쯤 휠체어와 작별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동하지와 전기자극 치료 시간에는 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줘서 같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동생은 어디가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리는데 해결을 해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말부터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픈 곳이라도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알아듣고 있든 아니든 말을 걸고 관절이 굳지 않도록 마디를 풀어주며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다행히 욕창도 없고 관절이 심하게 굳지도 않아서 예방만 제대로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척추측만증처럼 허리가 굽어져 있는데 이건 교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오전 스케줄이 전부 끝나고 점심에는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지만 느긋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오후에는 6층으로 가서 재활 치료를 받는다. 항상 1층에서만 받다가 6층은 처음 가봤는데 또 다른 재활 공간이 펼쳐졌다. 입구부터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나란히 양 옆으로 앉아서 전기치료를 받고 있는데 정말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곳을 여기에서는 휠체어 주차장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을 태운 휠체어들이 마치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처럼 보였다. 물론 그중에는 동생도 섞여 있었지만 제일 젊어서 눈에 띄었다. 치료를 받고 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치료사분이 동생과 함께 있을 거면 동승장소에서 전기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하여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동생과 비슷한 환자를 만났다. 그분은 부인이 간병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앉은자리가 동생과 남편의 중간이었는데 하필 동생은 왼쪽만 볼 수 있고 남편은 오른쪽만 볼 수 있어서 서로 마주 보고 사이에 끼여있는 상황이 본인도 황당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옆에서 봤는데 마치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섬망이 있어서 자기를 모르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냐면서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며 타박을 주길래 너무 웃겼다. 하지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궁금한 걸 계속 물어봤다.


 문제는 혀가 짧아져서 그런지 어눌하게 나와서 알아들을  있는  별로 없었다. 본인도 답답해하는  느껴져서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보호자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저씨는 11월에 수술을 하고 2 동안 대학병원에 있다가 재활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의식을 찾은  수술하고 나서 일주일 정도 걸렸다고 했고 말은 언제부터 했었냐고 물었더니 처음부터 말을 했다며 입만 살았다고 말했다. 동생은 아직 말을  한다고 하니 자기가 뇌수술을  환자들을 여럿 봤지만 전부다 눈빛이 흐리멍덩했는데 동생은 눈빛이 또렷해서 금방 회복할  있을  같다고 말했다.


 오후 재활이 끝나고 동생의 기저귀를 갈았다. 이제 기저귀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시 콧줄로 영양식을 넣고 있어서 식사시간마다 싸울 일도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잠시 눈을 붙였는데 누군가 나를 깨운다. 동생이 계속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며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옆칸에 있는 간병인이 동생이랑 안면을 튼 뒤부터 모든 일에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침대 눕힌 자세부터 컨디션까지 모두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져서 조금 더 피곤해지긴 했다. 이래서 내가 서울에서 적응을 잘했나 보다.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라는 말이 있었고 지방과 다르게 정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걱정하면서 서울에 갔는데 소문이 너무 과장된 듯했다. 그냥 사람 성향차이에 따라 다른 거였고 나는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우리가 어려서 자기 가족의 먼 친척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초면인데도 마치 아는 사람처럼 대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이고 발목 스트레칭을 해주고 손가락마디도 풀어주었다. 그래도 의식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질문하니깐 반응을 보였다. 어려운 단어도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따라 할 수 있었다. 엄마라는 말도 이제 척척해서 누나라고 말해보라고 시켰더니 이건 또 어물쩡거리며 대답이 시원찮지 않다. 그래서 내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한다.


“할머니 해봐.”

“할.. 머.. 니.. “

“할아버지 해봐.”

“할.. 아.. 버.. 지..”

“엄마 해봐.”

“엄마”

“어? 엄마는 또 똑바로 말하네? 그럼 누나 해봐. 누나. ”

“느으.. 느...”

“야, 너 누나 할 수 있으면서 왜 똑바로 안 하냐? 평소에도 안 했다고 지금도 안 하겠다 이거냐?? “

 

 동생은 내 말을 듣고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서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래 그렇다면 넌 평소에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내 이름을 불렀지. 내 이름이 뭐야? 이름 말해봐.”

“이.. 유.. 이”

“와 내 이름은 또 정확하게 말하네. 이 자식 이거 누나라고 하기 싫어서 못하는 척하는 거네.”

“피식”


 자기가 평상시에 누나라고 부른 적 없다는 것도 기억하는 것 같고, 내 이름을 말하는 걸 보니 기억 상실에 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걸 보니 이제는 의식이 아주 또렷하게 돌아오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내가 어이없어하니 굉장히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선 오른쪽 손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계속 자극을 줬다. 콧줄을 건드릴 때는 물어버린다고 협박을 했는데 계속 손을 대길래 진짜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니 눈썹을 꿈틀거리며 황당한 표정으로 물린 곳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더니 동생도 어이없어하면서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에는 확실히 표정과 감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한눈으로 느껴져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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