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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1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4 - 간병 인수인계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내일은 엄마와 간병을 교대하는 날이다. 오늘 미리 짐을 놔두기 위해 병원에 들른다고 해서 간병을 바로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내일 오전에 교대를 하기로 했다. 막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었다.


 여기는 주말이라고 재활이 쉬는 날이 없다.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8시 반부터 재활치료를 진행했다. 오늘은 이송을 도와주는 직원 분이 안 계셔서 우리 앞자리에 있던 보호자와 힘을 합쳐 동생을 옮겼다. 그래도 나름 안정적으로 휠체어에 태운 것 같다.


 아침에 있는 작업 치료는 15분간 진행을 했다. 나는 그동안 대기실 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벌써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 일정은 11시 10분에 전기자극치료가 있을 예정이다. 생각보다 다음 재활을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휠체어에 계속 앉혀 놓을 수는 없었다. 병실로 올라가서 침대에 다시 옮기려고 하니 이번에는 옆에 있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도와주셨다. 병원에 온 며칠간은 텃세를 부려서 앞으로의 병실 생활이 깜깜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요즘에는 첫날보다는 호의적으로 변했다. 말투는 여전히 츤츤거리지만 원래 그런 성격이려니 하고 있다.


 두 번째 재활을 가기 전에 동생의 얼굴을 씻기고 면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산뜻하게 기저귀도 갈아줬다. 이제 기저귀를 가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뭐든 처음이 제일 힘들고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남은 시간 동안 낮잠을 살짝 재우고 아침에 어질렀던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재활시간이 다 돼서 나 혼자 동생을 휠체어에 태워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두 발이 바닥을  정확히 짚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동생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 끝에 앉힌 다음 하체를 내 다리로 지탱하고 상체를 들어서 휠체어로 옮겼다. 이번 시도는 너무나 성공적이었다. 또 하나의 능력치가 오르는 것 같아서 괜스레 뿌듯했다.


 재활치료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멀리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엄마가 보였다. 간호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주말에 함께 지내며 인수인계를 하기로 했었다. 아마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어서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서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병실로 올라가니 간병인이 짜장면을 먹으라며 시켰다. 며칠 전 간병인이 돌보는 할아버지가 기저귀를 뗐는데 재활을 받다가 한 번쯤은 실수를 한다, 안 한다로 짜장면 내기를 했었다. 재미 삼아서 그냥 해본 내기였는데 할아버지가 얘기를 듣고는 자신이 그냥 짜장면을 쏘겠다고 한 것이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실수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어부지리로 얻어먹게 되었다.


 다행히 오후에는 재활이 없어서 여유가 있었다. 엄마한테 경관유동식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전반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병원을 돌아다니며 위치도 알려주고 물품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가르쳐주었다. 엄마는 기억을 다 못할 것 같다면서 나에게 적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전날 저녁에 정리해 놓은 메모를 보내주었다. 굳이 메모를 하지 않은 잡일이 더 많긴 하지만 그것도 하다 보면 늘게 된다. 물론 익숙해질 때쯤 나랑 다시 교대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요즘 옆 칸 간병인은 우리 쪽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사실 우리뿐만 아니라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엄마와 내가 하는 얘기를 들었는지 석션용 칫솔을 갖다 주었다. 엄마가 놀란 눈을 뜨며 조용하 나에게 물었다.


“저 간병인이 그때 뭐라 했다던 사람 아니야? 갑자기 왜 친절해진 거야?”

“왠지는 모르겠는데 며칠 전부터 동생이랑 친해져서 그런 것 같아.”

“아, 그러면 처음 며칠만 텃세를 부렸나 보다.”

“그런 것 같아.”


 엄마와 나는 대화가 들릴까 봐 작게 속삭이면서 의문을 품었다. 뭐 어찌 됐든 이제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아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졌다. 나름 여기서의 생활에도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일이면 잠깐의 자유를 찾아 떠나게 된다. 간병을 한지 한 달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벌써 4월도 중반을 지나가는 중이고 곧 5월이 다가온다. 동생도 병원을 옮긴 요 며칠간은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슬슬 적응을 해가는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나름 의사소통도 하는 중이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항상 질문한다.


“응가 쌌어? 기저귀 갈아야 해?”

“아니.”

 

아직 목소리가 작고 발음이 어눌하지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치료를 받으면서 발음 교정을 하면 지금보다 더 또박또박 말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어려운 단어들도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인간의 인체가 정말 신기하다. 몇 달간 말을  안 했다고 혀가 짧아지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다. 아직까지 말하는 게 어려운 걸 알면서도 옆에서 자꾸 시킨다. 그전에는 대답을 해줄 생각도 없었다면 요즘에는 입모양이라도 해준다. 물론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안 들려서 내가 못 알아들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해하지만 말이다. 자기 생각대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짜증 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의식이 돌아올수록 표현이 확실해지고 있다.


 여유로운 주말이라 그런지 동생이 자꾸 잠을 자려고 했다. 낮에 많이 자면 새벽에 또 깰 것 같아서 일부러 깨웠다. 그래도 잘 안 일어난다. 용인 세브란스에 있을 때는 자리마다 TV가 있어서 틀어주면 잠을 안 잤는데 여기는 TV가 우리 자리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거치대를 구매해 침대 난간에 설치하고 영상을 틀어주었다. 내용을 알고 보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한참을 잘 보더니 갑자기 다리로 나를 툭 치길래 확인해 보니 영상이 끝나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다른 거 틀어달란 소리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냐고 하니깐 웃기만 한다. 어쨌든 제대로 보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 바로 영상을 보는 순간이라서 잠을 안 재우려면 이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었다.


 그리거 어제는 대변을 누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대변까지 누고 요도로 나오는 출혈도 거의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건강이 악화되지 않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었다. 이제는 재활을 열심히 받으면서 몸을 움직이고 의식을 회복할 일만 남았다. 병실 사람들도 동생이 첫날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며 빨리 회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은 금방 일어난다며 희망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동생도 분명 듣고 있을 것이다. 문득 동생이 보란 듯이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날이 곧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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