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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1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79 - 거제도

2023년 4월 21일 금요일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거제도로 여행을 떠났다. 몇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었고 나는 간병을 해야 하니 가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엄마가 교대를 해줘서 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병원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여행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이 순간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방을 싸면서도 빠진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집 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더니 저 멀리서부터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이내 친구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자주 봤던 얼굴들이 오늘따라 더욱 반갑게만 느껴졌다. 그동안의 안부는 가는 길에 묻기로 하고 일단 트렁크에 가방을 실었다. 조수석에 올라타 출발을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벌써 마음이 설렜다. 내가 들뜬 기분으로 신나게 있으니 친구들이 고생했다며 나와있는 동안은 마음껏 즐기라고 말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가는 것만으로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렸다. 지금은 오롯이 이 순간만을 즐기고 싶었다.


 엄마와 교대하는 날 도움이 필요하면 간호사에게 물어보고 나에게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2주간의 황금 같은 휴식기간만큼은 병실생활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하루마다 동생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락을 했다. 나는 지금 궁금하지 않으니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내가 아니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했다. 할머니도 하루마다 전화가 와서 무엇을 하는지 물어댔다. 나는 지금 가족의 관심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 싶은 바람이었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분명 휴가를 받았는데 직장에서 연락이 오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더니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다며 공감을 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거제도에 도착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가량을 쉴 틈 없이 서로 떠들어댔던 것 같다. 숙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친구 한 명이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맞이했다. 이로써 5명이 모였다. 하지만 9명 전원이 다 모이려면 한참 남았다. 그래서 우선 도착한 사람들끼리 숙소로 올라갔다.


 료칸호텔은 처음 와보는데 입구부터 일본식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펜트 하우스 열쇠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평소였다면 비싸서 꿈도 못 꿨을 숙소에 들어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달에 3만 원씩 소소하게 푼돈을 모아서 여행을 온 거라서 그리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인원이 많다 보니 티끌 같아 보이던 액수는 금방 불어나 여행까지 올 정도가 되었다. 방으로 들어서니 통유리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구조는 거실 2개, 방 3개, 화장실 2개, 히노끼탕 2개가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너무 커서 놀랐다.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곳저곳 신나게 돌아다니며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 무렵 친구 한 명이 더 도착했다. 친구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광기 어린 눈빛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숙소를 둘려보며 남자친구에게 자랑을 해야겠다면서 영상통화를 했다. 그렇게 이 친구는 자기가 한 짓이 굉장한 실수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뿔뿔이 흩어져서 구경을 하던 아이들이 ‘자기’라는 한 마디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이 후다닥 달려가 커플인 친구를 골려줄 생각을 하며 즐거워했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영상 너머로 소리를 지르며 돌진하는 우리의 모습 보더니 기겁을 하며 숨었다. 우리들이 시끄럽게 인사를 건네니 그제야 머리만 빼꼼히 내밀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선 전화하는 것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서 총총 사라졌다. 아주 장난기가 넘치는 친구들로 분명히 개로 태어났다면 비글이었을 것이다.


 숙소에 짐을 다 풀고 근처에 있는 카페를 갔다.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어디를 가면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6명이 우르르 카페로 한꺼번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메뉴 주문을 하는 것도 시끌벅적하였다. 보다 못한 친구 하나가 우리를 조용히 시키며 무슨 메뉴를 선택할지 가만히 손을 들라고 했다. 사장님은 주문을 받기 위해 지켜보다가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의 지휘 아래에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얘기하는 유치원생 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친구 덕분에 무사히 메뉴 선정을 끝내고 나서는 야외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맞았다. 음료가 나올 때까지도 쉴 틈 없이 떠들고 있었더니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도착을 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서 밑에서부터 우리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면서 놀라워했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찾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모여서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어디를 내놔도 부끄러운 내 친구들이다. 친구는 오자마자 역시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다며 놀려댔다. 그 말에 아무 타격 없이 수긍하는 것도 웃겼다. 우리끼리 모여 있으면 특별하게 무언가를 안 해도 신이 났다. 다만 한 마디를 하면 여덟 마디가 돌아와서 정신이 혼미해질 뿐이었다.


  카페에서 놀다가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장을 보고 한 팀은 히노끼탕에 물을 받아놓기로 했다. 우선은 숙소에 올라가기 전에 프런트에서 일본의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받았다. 탕에 물을 받아놓고 유카타로 갈아입으려는데 처음 보는 옷에 당황을 했지만 설명서를 차근히 읽어보고 따라서 입었더니 그럴싸해 보였다. 친구도 내가 입은 걸 보더니 자기도 옷 입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옷을 다 갈아입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 장을 본 팀이 돌아왔다. 나머지 친구들도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고선 단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친구들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청순한 여인이 아니라 용맹한 무사 같다면서 놀려대느라 바빴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나머지 2명도 도착을 했다. 이로써 드디어 9명이 다 모였다. 다행히 저녁 시간 전에 도착하여 함께 모인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석식으로는 제철 해산물이 들어있는 편백찜과 일본 가정식 그리고 한우 화로구이가 나왔다. 다 함께 모여서 함께 하는 것도 좋았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이 느껴졌다. 풍족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다 같이 히노끼탕을 들어가서 몸을 뜨끈하게 녹였다.


 탕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 깜짝할 새에 20대 후반이 된 친구들을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18살에 만나서 서로 알고 지낸 지 9년이 흘렀다. 분명 우리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이만 먹는 기분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대 초반 때처럼 객기를 부리며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제는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돼서 그런지 몸을 사리는 게 보였다. 또 하나 슬픈 점은 친구들의 체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 그래도 입만큼은 예전 그대로다. 분명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 녀석들이다.  


 여기 있는 친구 대부분이 고향에서 살고 있다 보니 동네 소식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9명 중 나 포함 3명만이 서울로 갔고 나머지는 양산에 살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잊고 있던 동창들의 소식이 들려와서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다 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나누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많이 달라졌고 친구들도 나도 모두 달라진 점이 있었다.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점은 다 같이 모였을 때만큼은 사회에서의 가면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서로를 대한다는 것이다. 굳이 좋은 모습만 보일 필요도, 가식적으로 행동할 필요도 없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많은 힘을 들이 않고도 이해가 가능했다.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인생의 1/3 함께 지냈다. 원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편하게 서로를 불러내어 고민을 나눴는데 요즘은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여전히 변치 않고 함께   있어서 기뻤고 같이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사람들이  곁에 많은  보니 나는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힘이 되는 만큼 나도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오늘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있었다. 이런 평온함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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